내일시론
치솟는 물가, 재정지출에 더 신중해야
물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3.1% 상승하며 2년 2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중동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석유 가스 등 관련품목뿐 아니라 쌀 달걀 등 장바구니 품목과 컴퓨터 가전제품 여행비 등도 일제히 올랐다.
그나마 정부가 재정을 동원해 억누른 물가가 이 정도다. 재정경제부는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도와 유류세 인하 등의 조치를 통해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6%포인트 낮췄다고 밝혔다. 그렇지 않았다면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 가까이로 더 치솟았을 것이란 얘기다.
치솟는 물가 상승, 가계 실질소득은 제자리 걸음
물가급등의 최대 원인을 제공한 중동사태 영향이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이어서 더 걱정스럽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유전과 가스전 파괴 등으로 인해 붕괴된 공급망이 예전 상태를 회복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원달러환율의 고공행진도 물가에 큰 악재다. 유가와 환율 상승 영향을 동시에 받는 국제항공료의 급등세가 그걸 보여준다. 5월 중에만 33.5% 올라 1995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나타냈다.
이런 터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들의 성과급 지급까지 더해지면서 물가 급등 우려가 한층 높아졌다. 엄청난 규모의 성과급이 시중에 풀리면 물가를 더 자극할 게 뻔하다. 이런 성과급 잔치는 극히 일부의 얘기일 뿐 대다수 국민의 삶은 팍팍하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48만1000원으로 1년 전보다 2.4% 늘었지만, 물가상승분을 뺀 실질소득 증가율은 0.4%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치솟는 물가가 상승분을 고스란히 집어삼키면서 가계의 실질소득을 제자리걸음으로 돌려놓았다.
반면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1년 전보다 5.3% 증가했다. 소득이 사실상 그대로인데 지출은 소득보다 더 많이 늘었다는 얘기다. 씀씀이가 헤퍼져서가 아니라, 식료품 등 생활필수품 가격이 급등한 탓이다. “높은 물가는 소득이 낮은 계층의 지갑부터 먼저 얇게 만드는 잔인한 역진세(逆進稅)”라는 경제학계의 금언이 통계로 확인된다.
물가가 오르면 생활비 부담이 그만큼 늘어나 국민 삶을 압박하며, 빈곤층 등 취약계층일수록 그 피해는 더 커지게 마련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일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소집해 ‘물가안정’에 범정부적으로 나설 것을 지시한 배경이다.
이 대통령은 “물가상승으로 취약계층 실질소득이 감소하면 양극화가 그만큼 확대되고 경제 활력도 뒷걸음칠 수밖에 없다”며 “물가안정 없이는 경제성장도, 양극화 개선도, 국가의 지속적 발전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급한 장바구니 물가안정을 위해 정부 비축분 선제 공급, 할인 지원 강화, 할당관세 물량 추가 확대 등 필요한 대책을 각 부처에서 신속하게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런 응급처방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의 통제범위 안에서 물가불안을 부추기는 요인들을 찾아내 제거하는 일을 병행해야 한다. 당장 6.3 지방선거 때 쏟아진 선거공약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재점검해 이행계획을 다듬는 일이 시급하다. 정책효과를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채 ‘보여주기’ 식으로 내놓은 공약, ‘다른 지자체에 있으니까 우리도…’라는 식의 불요불급한 사회간접자본시설(SOC) 개발 공약 등을 냉정하게 돌아보는 일은 특히 중요하다.
중앙정부의 재정지출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여당은 중동사태로 인한 민생피해 지원 등을 위한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최근 확정했는데 물가 상황을 봐가며 집행시기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통화관리를 책임진 한국은행도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최근 취임한 신현송 총재는 커지는 물가압력 등을 환기시키며 연내 기준금리 인상을 공식화했지만 그 정도로 충분할지 더 살펴봐야 한다.
정부는 재정지출 집행시기 조절, 한은은 적극적인 통화관리 나설 필요
무엇보다도 증시 활황에 편승한 ‘빚투(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 열풍이 걱정스럽다.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개 시중은행의 개인 신용대출이 마이너스통장(신용한도대출)을 중심으로 5월 한달 새 2조6500억원 가까이 늘어났고, 한도의 40%를 넘어섰다는 소식이다. 이들 은행의 마이너스통장 대출금리가 최고 6% 중후반대로까지 올랐는데도 ‘빚투’ 열풍이 식기는커녕 되레 달아오르는 현상은 정상이 아니다.
반도체 발(發) 호황에 힘입어 증권시장이 유례없는 상승세를 보이면서 온 나라가 들떠 있다. 급등한 물가지수는 그런 우리들에게 보낸 경고신호일 것이다.
이학영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