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가전산업은 위기인가
지난달 한국의 수출은 작년 같은 달보다 53% 늘어난 877억달러에 이르렀다. 월간 기준 최대기록을 세웠다. 가장 큰 요인은 역시 반도체이다. 이에 정부는 내친 김에 연간 1조달러 수출도 노려보자며 기세등등하다.
그런데 그 뒤안길에는 걱정되는 일이 하나 있다. 가전제품 수출이 갈수록 쪼그라든다는 것이다. 지난달 가전제품 수출은 4억8000만달러에 그쳤다. 전년 동월보다 21.7%나 줄어든 것이다. 산업자원부가 설정한 20대 주요 수출품 가운데 가장 적다. 그러고 보면 가전제품의 수출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지 오래된 것 같다. 실제로 지난해 전체 수출이 72억7000만달러로 8.8% 감소했고, 올해도 달마다 감소행진이 이어졌다.
중국의 가전 굴기에 맞선 슬기로운 대응책 요구돼
이렇게 난관에 부딪힌 것은 중동전쟁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수요가 위축되고, 중국산 저가제품의 공세가 갈수록 가중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 요인이 무엇이든 국내외에서 한국의 가전산업이 위기에 빠져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테면 TV의 경우 지난해 12월에는 삼성전자가 세계1위 자리를 중국 업체에 빼앗기기도 했다. 올 들어 다시 되찾기는 했지만 점유율 격차는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작년 세계 TV 시장에서 중국 업체의 합산 점유율은 25%로 삼성전자(15%), LG전자(9%)의 합산 점유율(24%)을 웃돌았다. 출하물량 기준이기는 하지만 2년 연속 추월한 것이다. 그러자 삼성전자는 중국에서 TV를 비롯한 주요 가전사업을 사실상 접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내 업체들의 각별한 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중국의 ‘가전굴기’에 대한 슬기로운 대응책이 요구된다. 우선 국내 제품의 원가경쟁력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 중국이 싼값에 치고들어오니 국내 제품의 원가를 가능한 한 낮춰야 하는 것이다. 동시에 남다른 고품질로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국내 대형 가전업체들이 잘 생각해볼 문제가 하나 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가전제품을 스스로 다 하려고 하지만 앞으로도 가능할까 판단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부담스러운 것은 정리하고 부가가치 높은 제품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하던 사업을 무조건 그만두고 중국 등 외국에 팔아넘기라는 것은 아니다. 국내 실력있는 중견중소기업을 찾아서 협업하거나 아예 이양하는 방법도 있다. 원가 등의 요인 때문에 계속 끌고가기는 부담스럽지만 중견중소기업에게는 훌륭한 먹거리가 될 만한 품목들이 있을 것이다.
이양된 제품도 적절한 기술지도와 정부의 지원이 있으면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밥솥이나 보일러, 선풍기 등 몇몇 제품은 국내의 중견중소기업들이 나름대로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다. OEM이나 ODM 같은 방식을 활용하는 것도 대안일 것이다. 화장품의 경우 적지 않은 기업들이 ODM 생산을 통해 성장하면서 전체 산업의 발전을 추동했다. 그런 방식을 통해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들이 경쟁하면서도 서로 협업한다.
정부와 업계의 진지한 의논과 협력 필요
가전제품은 한국의 수출과 경제성장의 상징적인 제품이다. 그런 자랑스런 역사를 가진 가전산업이 요즘 다소 위축된 것 같아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TV의 경우 매출기준 삼성과 LG의 점유율이 중국에 비해 훨씬 높다. 고품질의 제품으로 제값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인공지능 시대라는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면서 가전산업 재도약을 위해 정부와 업계의 진지한 의논과 협력이 필요하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