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경쟁 다크호스 된 애플 음성비서 '시리'
구글 AI 빌려 새 시리 재도전
모델보다 ‘관문’을 노린다
이코노미스트는 9일(현지시간) 애플의 새 시리를 AI 경쟁의 “다크호스”로 평가했다. 애플은 2년 전 ‘애플 인텔리전스’를 공개하며 시리를 똑똑한 개인 비서로 바꾸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 성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이번에는 전략을 바꿨다. 자체 모델에만 의존하지 않고 구글의 AI 모델을 활용해 음성, 검색창, 챗봇형 앱으로 작동하는 새 시리를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애플의 강점은 모델 성능 자체보다 이용자 접점에 있다. 시리가 아이폰 안의 메시지, 일정, 사진, 앱 사용 기록을 이해할 수 있다면 단순한 챗봇보다 훨씬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예컨대 사용자가 “지난주 회의에서 받은 자료를 찾아서 오늘 일정에 맞춰 정리해줘”라고 요청하면, 기기 안에 저장된 정보와 앱을 연결해 처리하는 방식이다. AI가 범용 지식 경쟁에서 개인 업무 대행 경쟁으로 이동할수록 애플의 기기 장악력은 더 중요해진다.
또 다른 무기는 하드웨어와 반도체다. 애플은 자체 설계 칩을 통해 많은 AI 기능을 기기 안에서 처리할 수 있다. 서버를 거치지 않으면 반응 속도가 빨라지고 인터넷 연결이 없어도 일부 기능을 쓸 수 있다.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무엇보다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처럼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지 않아도 된다. AI 투자 부담이 주가와 수익성을 압박하는 다른 빅테크와 다른 지점이다.
비용 구조도 애플에 유리하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애플은 구글 기술 사용 대가로 연간 10억달러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체 최첨단 모델을 개발하는 비용과 비교하면 작은 금액이다. 애플 입장에서는 구글 모델을 쓰더라도 소비자와의 관계는 시리가 가져간다. 이용자가 시리에 익숙해지면 향후 다른 모델로 바꾸거나 여러 모델을 경쟁시킬 수 있다. AI 모델 업체에는 애플 생태계에 들어가기 위한 협상 비용이 생기는 셈이다.
물론 위험도 적지 않다. 새 시리는 미국에서 가을에나 제공될 예정이고, 초기에는 영어만 지원된다. 유럽연합(EU)과 중국에서는 규제 문제로 출시가 제한될 수 있다. 애플 주가가 발표 당일 약 2% 하락한 것도 투자자들이 지연과 실행 리스크를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오픈AI는 애플의 전설적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와 AI 기기를 개발하고 있고, 구글과 메타는 스마트 안경에 투자하고 있다. 아마존도 알렉사에 AI 기능을 더하고 있다.
그럼에도 새 시리가 실제로 약속한 기능을 구현한다면 애플은 AI 모델 경쟁의 선두는 아니어도, AI를 돈으로 바꾸는 가장 강력한 플랫폼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