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2026년 미국 중간선거, 도전 받는 투표권
2026년 11월 미국 중간선거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다. 이번 중간선거의 핵심 쟁점은 작년부터 진행된 무차별적 관세 부과와 올 2월 이란 침공 등으로 비롯된 경제 영역에서의 불확실성이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일 것이다.
현재 연방 상하원에서 다수당인 공화당이 그 지위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민주당이 상하원 중에 적어도 한 군데에서 다수당 지위를 되찾을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투표권 확대 역사 뒤집으려는 트럼프
미국 정치사에서 투표권은 오랜 갈등의 대상이었다. 미국에서 투표권이 비약적으로 확장된 계기는 남북전쟁이다. 전쟁의 결과 노예제가 폐지됨에 따라 1870년 비준된 수정헌법 제15조는 인종이나 피부색, 또는 과거 노예신분을 이유로 투표권을 제한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한편 여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때는 수정헌법 제19조가 비준된 1920년이다.) 이러한 헌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노예제를 운영했던 남부 주들은 문해력 시험, 인두세(poll tax), 복잡한 유권자 등록 절차 등을 통해 흑인들의 정치참여를 의도적으로 제한했다.
흑인 투표권을 둘러싼 연방헌법과 현실 간 괴리는 1960년대 민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의 요구를 정치권에서 수용해 해소된다. 1965년 존슨행정부 시절 초당적인 지지를 업고 제정된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은 흑인 유권자의 투표를 방해하는 주 정부의 조치를 금지하고, 인종차별의 역사가 있는 주에 대해서 연방정부가 주 선거법을 직접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원래 수정헌법 제10조에 의거하여 선거법 및 선거 운영은 주 정부가 맡아서 했기 때문에 투표권법이 연방정부에게 부여한 권한은 연방제의 기본틀을 흔드는 것이었다.
이후 투표권법은 미국 시민의 투표권을 더욱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여러번 갱신, 개정된다. 1970년에는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10대 말 군인들을 위해 투표연령을 21세에서 18세로 낮췄고, 이것은 이듬해인 1971년 수정헌법 제26조의 제정으로 이어졌다. 1975년에는 영어가 서툰 소수인종 유권자를 위해 다국어 선거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법이 확대되었다.
이처럼 미국 시민의 기본권인 투표권은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트럼프행정부는 노골적으로 투표권을 제한하는 조치들을 취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트럼프행정부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투표권이 없는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선거에 참여해 왔다고 주장하면서, 선거 관리의 주도권을 연방정부가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방정부가 시민권자 명부(citizenship list)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선거를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운다. 얼핏 들으면 반박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시민권자만 투표해야 하고 시민권이 없는 사람은 투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 자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권자 명부작성이 어려운 이유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트럼프 이전의 대통령들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부정선거(투표권이 없는 사람의 투표참여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조치를 왜 취하지 않았을까? 답은 간단하다. 이러한 조치를 생각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실행하기가 극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처럼 전국민에게 부여되는 주민등록번호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연방정부가 전국 단위의 시민권자 명부를 만들어 선거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는 유권자 정보를 모아야 한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자료는 여권 발급 기록이다. 여권은 연방정부가 발급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시민권 확인 수단이다. 그러나 미국인의 약 절반 정도만 여권을 소지하고 있다는 문제에 봉착한다. 사회보장번호 역시 연방정부가 관리하는 자료다. 하지만 이것도 완벽한 대안은 아니다. 사회보장번호는 세금 관리를 위해 사용되기 때문에 미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비시민권자들에게도 발급될 수 있다.
출생기록은 시민권 확인에 매우 유용한 자료다. 다만 미국의 출생기록은 연방정부가 아니라 주정부가 관리한다. 그런데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귀화한 시민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출생기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귀화 시민권 취득기록은 연방법원 차원에서 관리되지만 전국 단위로 통합된 데이터베이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운전면허증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주정부가 발급하기 때문에 기록이 흩어져 있을 뿐 아니라 비시민권자에게도 발급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연방정부가 이 모든 자료(여권 출생증명 귀화시민권 사회보장번호 운전면허증 등)를 수집해 시민권자 명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법적 장벽에 부딪힐 수 있다. 1974년 제정된 개인정보보호법(Privacy Act)에 따르면 한 정부기관이 보유한 개인정보를 다른 정부기관과 공유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범죄수사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연방정부가 마음대로 개인정보를 수합할 수 없는 구조다. 연방정부의 사생활 간섭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미국의 문화를 생각한다면 시민권자 명부 작성은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이다.
권리 박탈이 더 큰 위험이다
미국의 선거관리 체계는 한국 기준에서 보면 상당히 복잡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부정선거의 위험도 큰 것일까? 미국에는 부정선거 사례를 추적하는 단체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곳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청사진으로 알려진 ‘프로젝트 2025’ 작성을 주도한 헤리티지 재단이다. 그런데 이 자료는 부정선거가 널리 퍼져있다는 인상을 주지 못한다.
예를 들어 가장 많은 적발 사례를 기록한 미네소타주의 경우 확인된 부정선거 사례가 138건이다. 언뜻 많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 수치는 1982년부터 2025년까지, 무려 43년 동안 누적된 기록이다.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3건 남짓한 수준이다.
물론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적발되지 않은 사례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부정선거의 규모가 선거 결과를 뒤집을 정도로 컸다면 수십 년 동안 구체적인 증거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일련의 재검표 작업을 거치고, 연방대법원까지 개입하면서 불과 537표 차이로 공화당 부시 후보가 민주당 고어 후보를 꺾은 결과가 비교적 깔끔하게 수용되었던 나라가 미국이다.
완전무결한 선거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선거제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만들면 투표할 수 있는 유권자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반면 선거제도는 지나치게 느슨하게 적용하면 투표권이 없는 사람이 투표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 원칙에 따르면 투표권을 합법적으로 얻은 유권자 1인이 투표를 못하는 경우(부실선거)를 투표권이 없는 유권자 1인이 불법적으로 투표하는 경우(부정선거)보다 심각하다고 여겨야 한다. 이미 부여받은 권리를 제한하거나 박탈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미국 정치인들은 부정선거의 가능성에 불구하고 부실선거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거법을 엄격하게 만들지 않았다. 트럼프행정부가 바라는 바는 부실선거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부정선거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거법을 엄격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을 뒷받침하기에는 확인된 부정선거의 사례수가 너무도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권을 제한할 위험이 있는 조치를 강행한다면 가까이는 1965년 투표권법, 멀리는 남북전쟁 이후 지속되어왔던 미국 연방정부의 기본권에 대한 인식이 변했음을 시사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