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인간 색상인식의 분자적 기원

2026-07-28 13:00:05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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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매 학기 디스플레이공학 관련 과목을 가르치는 필자는 눈의 구조와 시각에 관심이 많다. 디스플레이가 가시광선의 형태로 제공하는 시각적 정보를 사람은 눈을 통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빛을 감지하는 시각세포가 자리잡은 망막의 구조와 작동 방식은 강의에서 빠지지 않는 중요한 내용이다. 이런 맥락에서 디스플레이는 인간의 시각체계를 제대로 반영하고 최적화해 우수한 화질의 영상을 구현하는 소자로 볼 수 있다.

사람이 색상을 구분할 수 있는 이유는 밝은 환경에서 주로 작동하는 망막 속 원추세포에 세 종류가 있어서 이들의 상대적 반응을 뇌가 종합해 판단하기 때문이다. 장파장의 황록색, 중간 파장의 녹색, 단파장의 파란색 대역에서 최대 감도를 갖는 이들을 순서대로 L, M, S 원추세포라 부른다.

원추세포 속에서 광센서의 역할을 하는 옵신이란 단백질은 자신이 감싸는 레티날이란 분자와 함께 시각색소를 이룬다. 흔히 발색단이라 불리는 레티날은 빛을 흡수면서 구부러진 결합 부위가 펴져 옵신을 활성화하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시신경의 전기 신호 형성을 유도한다.

밤처럼 어두운 환경에서 작동하는 간상세포 속 색소 단백질인 로돕신의 고해상도 구조가 2000년에 보고된 데 비해, 원추세포 속 옵신의 구조가 최근에 이르러서야 밝혀진 것은 제법 놀라운 일로 느껴진다.

지난 6월 과학저널 ‘사이언스’의 표지에 소개된 세 편의 논문은 사람 및 사람과 비슷한 영장류의 원추세포가 작동하는 미시적 원리에 관한 최신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과학자들의 관심은 특히 완벽히 동일한 레티날 분자가 세 종류의 원추세포의 옵신 속에서 왜 빛의 서로 다른 파장 대역에 반응하는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물체가 색상 나타내는 이유, 과학적으로 규명

물체가 색상을 나타내는 주된 이유는 물체 속 색소 분자의 에너지 준위로 형성된는 흡수 대역과 관련된다. 가령 가을철 단풍의 색이 빨간 이유는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 분자의 흡수 대역이 녹색과 파랑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즉 단풍에 입사하는 백색광의 스펙트럼 중에서 흡수되지 못하고 남은 빨간색 빛이 반사되어 단풍잎이 빨강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사물의 색이란 해당 물체가 흡수하지 않고 버린 빛의 흔적인 셈이다. 이런 색소분자의 흡수 공명 대역은 분자 구조에 바탕을 둔 양자역학적 계산을 통해 분석하고 설명할 수 있다.

옵신 속 레티널 분자의 흡수 대역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된다. 가령 L과 M 세포 속 옵신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은 95% 이상 동일하다고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L과 M 속 옵신이 보이는 아미노산 배열의 미세한 차이가 레티날 주변의 전기적 환경을 바꾸고, 그 결과 레티날의 전자 들뜸 에너지가 바뀌어 흡수 파장이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즉 레티날 분자가 느끼는 정전기적 미세환경의 차이가 시각색소의 파장을 조율하는 핵심 요인인 셈이다.

반면에 S 원추세포의 옵신에 놓인 레티날의 국소적 환경은 다른 두 세포에 비해 비교적 더 좁고 전기적 극성도 강해 파란색 대역에서 흡수가 생기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번 연구에서 원인이 밝혀진 또 하나의 현상은 원추세포의 빠른 반응속도였다. 낮에 보이는 주변 환경의 정보를 재빨리 업데이트해야 하는 시각 기능의 입장에선 빛을 흡수해 구조가 변한 레티날을 속히 내보내고 회복된 레티날을 받아들이는 기능은 원추세포에 꼭 필요하다. 이번 연구가 밝힌 옵신의 3차원 구조에는 레티날과의 결합 부위에 더 높은 유연성이 존재한다는 점 및 레티날의 출입이 가능한 개구부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다양한 기초과학 융합한 연구 시너지 결과물

필자와 같은 비전문가에게도 시각에 대한 이해을 심화시키는 이런 연구 결과는 무척 흥미롭게 다가온다. 인간의 색상 인식이 분자 수준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가 축적이 되면 결국 나름의 시각기능을 갖는 각종 동물들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깊어질 것이고 시각세포의 비정상적 변이에 따른 각종 질환들을 치료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될 수 있다.

인상적인 점은 이번 연구에 활용된 다양한 방법들이었다. 저온 전자현미경, 적외선 분광법, 펨토초 시분해 흡수분광법, 인공지능, 양자계산/분자동역학 계산 등이 동원된 이 연구의 성격은 구조생물학을 넘어 생리학 물리학 화학 인공지능의 공통분모에서 이루어진 기초연구로 보인다.

결국 오늘날 지식의 최전선을 확장하는 치열한 연구 현장은 다른 면에서 본다면 다양한 기초과학의 지식을 융합하며 연구 시너지를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고재현 한림대학교 교수 반도체·디스플레이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