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미 조선협력의 새 항로를 열며
아침 햇살이 바다의 짙은 푸른빛을 깨우면 조선소의 거대한 크레인들이 골리앗처럼 웅장한 실루엣을 드러내며 기지개를 켠다. 도크를 가득 채운 초대형 선박들의 위용을 바라보는 현장방문은 가슴 벅찬 자부심을 안겨준다. 반세기 전, 황량한 모래사장 사진 한 장에서 시작했던 대한민국 조선업이 세계 바다의 중심에 우뚝 서 있다는 사실은 언제 보아도 기적에 가깝다.
숱한 불황과 모진 구조조정의 칼바람 속에서도 뜨거운 땀방울로 기술의 뼈대를 세운 우리 장인들과 엔지니어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허락되지 않았을 풍경이다.
현재 대한민국 조선산업은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의 압도적 점유율과 친환경·스마트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의 정점에 서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감지되는 미래의 공기는 마냥 따스하지만은 않다. 중국의 추격은 이미 턱밑을 넘기 시작했으며, 글로벌 해양 공급망의 재편 속도는 매서울 만치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향후 3년 동안은 이미 확보한 수주잔량 덕분에 순항할 수 있으나 이후 도래할 불황 주기와 거시경제적 불확실성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우리는 지금 잘하고 있는가’라는 현재형 질문에 안주하기 보다는 ‘우리는 미래의 파도를 넘을 준비가 되었는가’라는 거시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에 답해야 할 때다.
태평양에 그리는 거대한 궤적
이 엄중한 도약의 기로에서 대한민국 조선업이 찾아낸 새로운 기회의 영토는 바로 태평양 건너 미국이다. 최근 미국은 자국 조선산업 생태계의 복원과 해군력 재건을 위해, 해양 안보와 선박 건조 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 한국에 강력한 러브콜을 보내왔다.
한·미 간 전략적 합의에 따라 추진되는 마스가(MASGA, 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 조선협력 프로젝트는 단순한 비즈니스 기회를 넘어선다. 이는 한·미, 나아가 한·미·일의 긴밀한 해양 안보 및 산업 동맹을 의미하며, 글로벌 조선시장의 균형을 비(非)중국 안보 가치사슬 중심으로 재정렬하는 거대한 축의 이동이다. 친환경·디지털 선박 분야에서 초격차 기술을 가진 한국과 글로벌 안보 및 무역의 중심인 미국이 손을 잡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는 세계 해양 산업의 판도를 바꿀 것이다.
이 동반 항해의 실질적인 네비게이터가 마침내 닻을 올렸다. 지난 7월 23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양국 정·관계 및 조선업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미 조선협력센터(KUSPC:Korea-US Shipbuilding Partnership Center)’가 역사적인 첫걸음을 내디뎠다.
센터는 개소와 동시에 전문인력양성 및 교류 등 미래기술 협력을 골자로 하는 전략적 업무협약들을 체결하며 동맹의 전초기지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센터는 향후 국내 조선업계의 미국 프로젝트 수주 확대와 국내 기자재 업계의 글로벌 진출을 돕는 밀착형 거점이자, 핵심엔진이 될 것이다.
고전에 이르기를, “병수전진(竝水前進, 물길을 나란히 하여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이라 했다. 글로벌 해양 패권의 재편이라는 거친 풍랑 속에서, 한·미 양국은 이제 단순히 같은 배에 탄 관계를 넘어 하나의 지향점을 공유하며 움직이는 동반자다.
조선의 초격차 동맹으로 이어가야
새로이 출항한 마스가호가 태평양을 향해 거침없이 나갈 수 있도록 국민의 뜨거운 성원과 정부 및 산업계의 유기적인 협력을 기대한다. 우리의 기술력이 미국의 안보 생태계와 만나 전 세계 바다 위에 새로운 번영의 이정표를 세울 그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