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공기업 통합 ‘답 보이지만 해법은 남았다’
삼일회계법인 “1개 법인으로 통합이 최적안”으로 제시
지역갈등·인사문제·노사관계·재생에너지 전략이 성패
기후부, 7월 중 발전공기업 기능 재편 및 구조조정 방안 수립
정부가 발전공기업 통합을 검토하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에너지전환이다. 현재 발전 5사는 석탄발전을 중심으로 성장했지만 정부의 2040년 탈석탄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기존 사업모델만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실제로 발전공기업의 국내 발전설비 비중은 한전 분사 당시 60%를 넘었지만 현재는 3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민간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면서 발전공기업의 영향력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은 18일 기후에너지한경부가 의뢰한 연구용역 중간보고회에서 “단일법인 체제가 되면 재생에너지와 대규모 전력망 연계사업, 에너지저장장치(ESS), 해상풍력 등 대규모 투자사업을 보다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노동계 역시 발전공기업이 단순한 화력발전 운영기관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전환을 주도하는 공적 플랫폼으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장 큰 뇌관은 ‘지역 갈등’…태안군, 서부발전이 지방세수 30% 차지 = 통합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갈등이 예고되는 문제는 본사 입지다.
현재 남동발전은 진주, 남부발전은 부산, 동서발전은 울산, 서부발전은 태안, 중부발전은 보령에 각각 본사를 두고 있다. 통합법인 출범 시 어느 지역에 본사를 둘 것인지는 단순한 경영 문제가 아니라 지역경제와 지방재정이 걸린 정치적 사안이 된다.
특히 태안군의 경우 서부발전이 납부하는 지방세가 전체 지방세 수입의 약 3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사 기능이 축소되거나 이전될 경우 세수 감소와 지역 상권 위축이 현실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삼일회계법인은 기존 5개 본사를 모두 활용하는 다거점 체제를 제안했지만 실제 의사결정 권한과 핵심 인력이 특정 지역에 집중될 경우 지역 간 갈등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통합보다 어려운 ‘화학적 결합’…“현실적으로 자녀교육과 주거문제 등 걱정” =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부분은 조직 통합 자체보다 조직 융합이다.
발전 5사는 분사 이후 25년 동안 각기 다른 기업문화와 인사제도, 보수체계, 의사결정 구조를 형성해 왔다. 단순히 법인을 합친다고 해서 조직이 하나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과거 공공기관 통합 사례를 보면 물리적 통합은 이뤄졌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별도 조직처럼 운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아울러 통합 이후 상위 직급이 줄어들면서 승진 적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임원, 본부장, 처장급 자리는 대폭 감소할 수밖에 없다. 직원 입장에서는 조직 효율화보다 개인의 일자리 유지와 삶의 질, 생계 문제가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발전공기업 한 관계자는 “사실 개인적으로는 회사통합보다 자녀교육과 주거문제, 배우자 직장 문제 등이 훨씬 현실적인 고민”이라며 “현장직은 물론 사무직까지 고용안전과 인사원칙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통합과 노조 통합은 또 다른 문제 = 흥미로운 점은 전국전력노동조합연맹,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등 노동계가 통합 논이에 비교적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발전공기업 통합의 목적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 공공성 강화”라는 비슷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통합이 구체화될 경우 노사관계는 예상보다 복잡할 수 있다. 현재 발전사별로 노동조합이 각각 존재하고 있으며, 상급단체도 다르다. 기업 통합이 곧 노조 통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향후 임금체계와 복지제도, 인력 재배치 문제를 놓고 노조 간 이해관계가 충돌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석탄발전소 폐쇄와 인력 전환 과정에서 협력업체 노동자와 지역사회까지 포함한 ‘정의로운 전환’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갈등은 커질 수 있다.
◆재생에너지 투자부진, 통합하면 해결될까 = 하윤희 고려대 교수는 18일 토론회에서 신중한 입장을 제시했다.
그는 “현재 제기되는 문제들이 과연 5사 체제 때문에 발생한 것이냐는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부진한 이유를 발전사 분산 구조에서 찾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규제와 제도적 한계가 더 큰 원인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재생에너지 투자 부진이 조직 구조 때문인지, 정책과 시장 제도 때문인지는 별도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허 교수는 또 “본사 위치를 둘러싼 지자체간 경쟁과 갈등 가능성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 정부가 반드시 점검해야 할 5가지 = 전문가와 노동계, 현장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정부가 최종안 마련 전 반드시 검토해야 할 과제는 크게 다섯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통합 법인의 역할과 목표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안보, 전력 공공성 확보라는 존재 이유를 구체화해야 한다.
둘째 지역경제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본사 이전과 지방세 감소 우려에 대한 대책 없이 통합을 추진할 경우 지역 반발은 불가피하다.
셋째 인사·고용 로드맵을 사전에 공개해야 한다. 승진 체계와 직무 전환, 고용 안정 방안을 명확히 제시해야 조직 불안을 최소화할 수 있다.
넷째 노동조합과의 상설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 통합 과정의 이해관계 조정은 노사 협의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섯째 재생에너지 투자 재원과 경영 자율성 확보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단순 통합만으로는 에너지전환을 추진할 수 없으며, 공기업 규제 개선과 투자 재원 확보 전략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발전공기업 관계자는 “정부 최종안은 ‘5개사를 1개사로 합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또 ‘통합한다면 발전공기업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날 발표한 중간보고를 바탕으로 전문가,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렵해 7월 중 발전공기업 기능 재편 및 구조조정 방안을 수립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