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법왜곡죄 100일 기대·우려 교차
재판소원 접수 877건 중 8건 전원재판부로
‘기본권 구제’ 역할 … ‘사실상 4심제’ 지적
법왜곡죄 접수 5800여건, 법관 242명 고발
오늘 정부·여당이 사법개혁 정책의 하나로 도입한 재판소원 제도와 법왜곡죄가 시행된 지 100일이 됐다. ‘기본권 구제’라는 성과와 함께 일부 우려도 여전하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지난 8일까지 총 877건의 재판소원 사건을 접수했으며, 이 가운데 누적 8건이 전원재판부에 회부됐다.
지난 3월 12일 재판소원 제도 시행으로 기존 헌법소원 심판 대상에서 제외됐던 ‘법원의 재판’도 심판 대상이 됐다. 헌법재판소 심리 결과 법원의 재판이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재판을 취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초 법원 안팎에선 재판소원 제도가 사실상 ‘4심제’로 기능해 사법 체계에 큰 혼란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나왔으나, 일단 접수된 사건 대부분이 사전심사 단계에서 각하되면서 우려했던 수준의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본안 회부율은 1%에 못 미치지만 재판 결과에 대해 다시 사건을 심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기본권 구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법원의 심리불속행 제도 운용 문제뿐 아니라 법률 해석의 적절성을 따져보는 사건도 전원부에 회부되면서 사실상의 4심제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실제 재판 과정에서도 당사자들이 재판소원을 염두에 두고 재판 절차의 적법성을 더 꼼꼼히 따지게 됐다는 반응이 나오는 한편 아직 인용 사건이 나오지 않아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단 평가도 있다.
헌재가 법원의 재판을 취소할 경우 후속 절차를 어떻게 진행할지도 불명확하다.
법원행정처는 법원 내부 재판소원 후속 조치 연구반 등과 함께 관련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손인혁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은 이날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4심제의 우려도 있고 해서 중요한 사건을 신중하게 선별해서 본안으로 올리고 있다”며 “현재 본안 회부 등 통계치가 적정하지 않나 생각한다. 앞으로는 헌법적 주장이 많이 나올거고 (재판소원제가) 좀 더 활성화돼 본안 회부율도 올라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법왜곡죄 도입 이후 관련 사건 접수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절반 이상이 고발 대상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법왜곡죄는 형사법관, 검사, 경찰 등이 타인에게 위법·부당하게 이익을 주거나 권익을 해할 목적으로 법을 왜곡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경찰에는 지난달 6일 기준으로 327건, 5805명에 대한 고발이 접수됐다. 경찰이 1566명(27.0%)으로 가장 많았고, 검사 376명(6.5%), 판사 242명(4.2%), 검찰수사관 및 특별사법경찰관 157명(2.7%)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3464명은 고발 대상이 아니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는 지난 15일까지 총 69건의 관련 사건이 들어왔다.
법조계에서는 사법 제도에 대한 불복 수단으로 남용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시행 전부터 잇따라 제기됐다. 특히 주요 정치인이 당사자인 사건의 경우 정치권의 지형 논리에 따라 재판 자체가 ‘형사사건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면서 법관의 업무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뒤따랐다.
실제 조희대 대법원장도 지난해 5월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파기환송 판결을 이유로 경찰과 공수처에 각각 고발됐다.
사법부에선 형사법관의 위축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결국 법관이 소신껏 재판을 못 하게 된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고법부장 판사는 “이른바 사법개혁 3법이 도입될 당시 법원 판사들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재판소원제 보다 법왜곡죄 도입이었다”며 “실제 해당 범죄 혐의로 고소·고발되면 수사나 재판을 받을 수도 있어서 재판 진행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에 법원행정처는 법왜곡죄 대응을 위해 기존의 ‘법관 및 법원공무원에 대한 부당소송 등에 관한 지원 내규’를 ‘법관 및 법원공무원에 대한 직무관련 소송 등에 관한 지원 내규’로 전부 개정했다. 법원은 개정 내규에 따라 법관이나 법원공무원이 직무 관련 고소·고발을 당하면 수사를 받는 단계(기소 이전)에서 1000만원, 1·2·3심 재판 과정(기소 이후)에서 각각 2000만원의 한도 내에서 변호사 비용을 지원한다. 개정 전에는 수사 단계에서 최대 500만원까지 지원이 가능했다.
대검찰청도 ‘검찰공무원 직무보호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해 고소·고발이 접수된 검찰 구성원을 위한 변호사단을 꾸려 수사·재판 단계에서 법률지원을 하기로 했다.
다만 법왜곡죄가 ‘고의로’ 법을 왜곡한 경우 처벌하는 조항인 만큼 명백한 사례가 아닌 이상 실제 법관에 대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로펌들이 재판소원과 법왜곡죄를 도맡을 TF를 잇달아 꾸리는 등 변호사업계에 ‘새 시장’이 열렸단 평가도 나온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