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이끄는 사람들 ⑮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
공정여행에서 AI 관광소통망으로 새로운 길 찾다
사람과 지역을 연결하는 기술 … 지속가능 관광생태계 도전
17년간 쌓은 여행산업의 경험… 지역에서 소비활성화 유도
AI로 상품기획·상담·홍보 자동화 … 과잉관광 해소에 도움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강력한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세계는 불확실성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한국은 지속되는 저성장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 사상 최대 수출을 기록하고 있지만 극히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수출경쟁력이 추락하고 있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했다. 한국경제 성장은 혁신정신이 일궈 온 성과다. 내일신문은 기업가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혁신가들을 연재한다. 그들의 고민과 행보가 한국경제와 중소기업이 나아갈 방향에 좋은 지침을 담고 있어서다.
공정여행이라는 개념조차 낯설던 시절 지역주민과 여행자가 함께 이익을 나누는 여행모델을 시작한 기업이 있다. 지난 16일 마포 본사에서 만난 변형석 대표는 2009년 트래블러스맵을 시작했다. 기존 지역관광은 관광객이 지역을 스쳐 지나가는 대형관광 방식이었다. 트러블러스맵은 지역주민이 운영하는 숙소와 식당, 체험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공정여행 모델을 선보이며 새로운 여행문화를 제안했다.
그러나 코로나19와 여행산업 환경변화로 인해 사업의 방향을 다시 설정했다. 변 대표는 새로운 돌파구를 인공지능(AI)에서 찾았다. 공정여행으로 시작한 17년의 경험을 AI기술과 결합해 지역관광 활성화와 지속가능한 관광생태계 구축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공정여행의 시작 = 변 대표의 출발점은 여행업이 아니었다. 그는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인 하자센터에서 대안학교 교사로 활동하며 청소년들과 다양한 여행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여행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점과 동시에 관광산업이 지역사회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점을 주목했다.
트래블러스맵은 지역주민이 운영하는 민박과 식당, 마을 해설사 등을 여행 프로그램에 적극 연결했다. 관광객이 단순히 관광지를 둘러보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숙박하고 식사하며 주민들과 교류하도록 설계했다. 지금은 익숙한 방식이지만 당시에는 매우 새로운 시도였다.
대표 사례가 지리산 둘레길과 농가민박 프로그램이다. 여행객들은 마을주민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함께 식사하며 지역 이야기를 경험했다. 관광소비가 지역 안에서 순환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변 대표는 “관광의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공정여행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이후 방향은 인공지능 = 트래블러스맵은 한때 연매출 60억원 규모로 성장했지만 코로나19는 여행업계 전체를 뒤흔들었다. 수년간 매출이 사실상 중단됐다. 이후 여행수요가 일부 회복됐지만 기존 사업모델만로는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변 대표는 여기서 과거 자신의 개발자 경험을 떠올렸다. 웹개발과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기술을 관광산업에 접목하기 시작했다. 변 대표는 “과거 같으면 시스템 개발기간과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AI를 활용하는 순간 상황은 달라졌다”고 말했다.
현재 트래블러스맵은 AI 기반 홈페이지와 여행사 전용 ERP(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 구축을 완료했다. 여행상품 기획부터 이미지 제작, 콘텐츠 작성, 일정 설계, 지도생성, 고객상담까지 대부분의 과정을 AI가 지원한다.
여행객은 챗봇을 통해 상담을 받고 예약까지 진행할 수 있다. 여행사는 복잡한 상품운영과 콘텐츠제작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다. 변 대표는 “이제 중요한 것은 코딩능력보다 업종에 대한 경험과 문제해결 능력”이라며 “AI는 관광산업 내 수많은 비효율을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AI 기반 콘텐츠제작 자동화기술인 ‘마케팅스튜디오’도 개발했다. 기업명만 입력하면 온라인에 공개된 정보를 수집·분석해 이미지와 영상, 홍보 콘텐츠를 자동생성하고 배포하는 서비스다. 소규모 기업이나 사회적기업도 전문 마케팅인력 없이 홍보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외국인 관광객을 지역으로 = 변 대표가 가장 주목하는 분야는 외국인 국내관광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과 일부 유명 관광지에 집중되는 현상을 완화하고 지역관광을 활성화하는 데 AI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지방 소도시나 농촌지역에 가고 싶어도 정보부족과 언어장벽 때문에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며 “AI가 여행일정 설계부터 통역, 교통안내, 현지정보 제공까지 지원한다면 관광객의 이동 범위를 크게 넓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AI는 여행목적에 맞춰 관광지를 추천하고 혼잡도를 분석해 대체 여행지를 안내할 수 있다.
변 대표는 지역주민만 알고 있는 숨은 명소와 마을 이야기를 AI가 여행자에게 제공하는 플랫폼도 구상하고 있다. 이를 통해 관광객은 보다 깊이 있는 여행경험을 얻고 지역은 새로운 관광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장애인과 고령자를 위한 무장애관광서비스도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다. AI를 활용해 이동경로와 시설 접근성 정보를 분석해 보다 정확한 관광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 개발도 검토하고 있다.
변 대표는 “과거 공정여행이 관광소비가 지역사회에 머물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AI가 그 역할을 더 넓고 정교하게 수행할 수 있다”며 “지역경제가 함께 성장하는 관광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17년 전 공정여행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던 변형석 대표는 지금 AI를 통해 관광산업의 또 다른 전환점을 만들고 있다. 기술의 목적은 결국 사람과 지역을 연결하는 것이라는 그의 철학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AI와 공정여행의 결합이 국내관광의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창배 기자 goldw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