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곳간 열어보니 재원부족·채무 심각

2026-06-24 13:00:01 게재

경기·인천·대전 등 재정난 공개

사업 재검토·신구 공방으로 확산

광역단체장 인수위원회들이 민선 9기 출범을 앞두고 재정 현황을 잇따라 공개하면서 ‘빈 곳간’ 논쟁이 불거졌다. 부족재원과 채무 증가, 기금 소진, 지방채 발행 여력이 동시에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민선 9기 지방정부의 첫번째 과제가 재정 정상화로 모아지는 분위기다.

◆필수지출도 빠듯한 하반기 = 24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방정부 재정위기 문제가 여러 시·도 인수위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기에서는 추미애 당선인이 직접 재정위기 문제를 꺼내 들었다. 추 당선인은 23일 도지사직 인수위원회 도정 현안 회의에서 재정상황을 고려한 조직개편을 주문했다. 앞서 22일에는 “경기도의 재정 상황이 파탄 지경”이라며 현실성 있는 공약 추진계획 수립과 사업 우선순위 조정을 요구했다. 경기 인수위는 경기도 채무가 7조원에 달하고,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잔액은 1300억원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올해 지방채도 발행한도의 77%인 7200억원 가량을 이미 쓴 상태로, 추가 발행 여력은 2000억원 안팎이라고 설명했다.

23일 도정현안회의에서 발언하는 추미애 경기지사 당선인. 사진 경기준비위 제공

인천시장직 인수위는 하반기 재정 공백을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했다. 인수위가 인천시로부터 예산 현황을 보고받은 결과 하반기 추가 지출 소요는 6441억원인 반면 가용재원은 1856억원에 그쳤다. 부족 재원은 4585억원이다. 법정·경직성 경비와 결산에 따른 의무부담, 국비 매칭과 사업량 증가분을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 인수위 설명이다. 인수위는 통합관리기금 3300억원이 이미 활용됐고, 하반기 재정 소요에 대비해 마련된 교부세 1100억원도 1차 추경에 쓰였다고 지적했다.

대전에서는 ‘파산 위기’라는 경고등까지 켜졌다. 박정현 대전시장직 인수위원장은 22일 “대전시 재정이 사실상 파산 위기에 직면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대규모 사업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대전시 채무는 2022년 말 1조원에서 2025년 말 1조5800억원으로 늘었다. 인수위는 현재 계획된 사업을 그대로 추진하면 올해만 5482억원의 재원이 부족하고, 2027년부터는 연평균 6955억원의 세출 초과가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100억원 이상 대규모 투자사업 원점 재검토와 행사성·경직성 경비 조정도 요구했다.

오는 7월 새로 출범하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도 재정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남광주대전환기획위원회는 지난 18일 재정 현황 브리핑에서 통합특별시 예산 규모가 19조4000억원으로 전국 3위 수준이지만 재정자립도는 27.3%에 그친다고 밝혔다. 광주와 전남의 채무는 지난해 결산 기준 모두 3조6514억원으로 집계됐다. 하반기 세입은 1030억원 수준인 반면 의무지출은 5030억원 규모에 달해 연말까지 4000억원 안팎의 재원 부족도 예상됐다.

◆전임 사업 손질 불가피 = 일부 지역에서는 인수위의 재정 현황 공개가 신·구 지방정부 간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충남에서는 이재관 충남지사직 인수위원장이 “올해 1조304억원 이상의 예산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주장하자 김태흠 충남지사가 직접 나서 “조정·관리해야 할 재정수요까지 모두 예산구멍으로 포장하는 것은 재정진단이 아니라 정치적 과장”이라고 반박했다. 세종에서도 인수위가 세입 과다 추계와 법정 필수경비 축소·누락을 지적하자 집행부는 세수 둔화와 세출 수요 증가에 따른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해명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민선 9기 출범과 함께 재정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나선 곳도 있다. 충북 인수위는 22일 재정정상화위원회와 재정전략운영단 태스크포스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충북도는 2024년부터 올해까지 436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했고, 누적 채무는 지난해 말 1조2000억원대에서 올해 1조3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인수위는 일부 사업성 예산과 주요 투자사업을 점검하겠다는 입장이다.

인수위들이 공개한 재정 현황은 새 지방정부가 쓸 수 있는 재정 여력이 크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법정경비와 국비 매칭 부담은 줄이기 어렵고, 지방채 발행 여력은 이미 상당 부분 소진된 곳이 많다. 이 때문에 전임 단체장 대표 사업은 중단·축소·수정 검토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행사성 사업이나 중복 투자사업, 성과가 낮은 보조사업이 우선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

당선인 공약도 재정 상황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 재정 상황에 따라 추진 여부를 재검토하고 우선순위도 조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각에서 인수위의 재정위기 제기가 선거 때 내놓은 공약을 조정하기 위한 명분 아니냐고 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편 민선 8기 지방재정 악화에는 중앙정부 재정운용의 영향도 있다. 윤석열정부 시기 대규모 세수결손과 긴축재정 기조는 지방교부세 감소로 이어졌고,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정부에는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했다. 충북도 인수위 관계자는 “결국 민선 9기 지방정부의 첫 시험대는 비어 있는 곳간을 어떻게 메우고, 무엇을 줄이며, 어떤 사업을 살릴지 정하는 재정운용 능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신일·곽태영·윤여운·홍범택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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