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 밖으로 나온 불교
대중 곁으로 다가선 조계종, 불교의 문턱을 낮추다
선명상·로봇 스님·반려동물·굿즈까지 … 청년과 무종교인 품는 대중화 실험
“불교는 원래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지, 불자만 구제하는 종교가 아니다.”
불교 대중화와 선명상 확산을 추진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불교계에서는 젊은 세대와 무종교인을 향한 새로운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조계종은 이를 단순한 흥행이나 유행이 아니라 불교가 시민들의 삶 가까이 스며드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종교 인구 감소 시대에 법당 안에서 기다리기보다 먼저 사회와 연결되고 일상 속으로 들어가려는 시도다. 특히 종교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명상과 성찰, 생명존중 같은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내일신문은 선명상과 문화 콘텐츠를 매개로 불교가 어떻게 법당의 문턱을 낮추고 시민들 곁으로 다가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한국 불교의 새로운 대중화 모델이 될 수 있을지 살펴봤다. <편집자 주>편집자>
오는 7월 7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는 조금 특별한 음악회가 열린다. 재즈 보컬리스트 웅산이 총연출을 맡고 재즈와 국악, 선명상이 결합한 치유 음악회다. 군인과 경찰, 소방관, 교사 등 높은 스트레스에 노출된 직업군은 물론 마음의 쉼이 필요한 시민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불교 행사이지만 법문도, 설법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음악과 명상, 치유를 내세운다. 대한불교조계종 혜광사와 선명상 중앙본부가 마련한 이 음악회는 최근 조계종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사찰과 법당 중심이던 불교가 이제는 음악과 명상, 문화예술, 첨단기술을 매개로 시민들 곁으로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서울 연등회에서 승복을 입고 행렬에 참여한 인공지능(AI) 로봇 스님 ‘가비’, 이달 대구에서 열린 대한민국불교문화엑스포의 반려동물 친화 운영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조계종이 종교 인구 감소 시대를 맞아 선택한 해법은 ‘포교’보다 ‘공감’, ‘설명’보다 ‘체험’이다. 한국 사회 전반에서 종교 인구 감소가 이어지고 젊은 세대의 종교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불교 역시 새로운 만남의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법당을 찾는 신도를 기다리기보다 시민들이 있는 곳으로 먼저 다가가려는 시도가 본격화된 배경이다.
불교계 안팎에서는 이를 단순한 홍보 전략 변화로 보지 않는다. 법당을 찾는 신도가 줄어드는 시대에 먼저 중생의 삶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방향 전환으로 해석한다. 선명상과 음악회, 로봇 스님과 반려동물 친화 박람회는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결국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오늘의 시민들은 어디에서 불교를 만나는가.’
●“음악은 설명보다 먼저 마음에 닿는다” = 이번 선명상 음악회를 기획한 조계종 미디어홍보실장 덕안 스님은 음악회를 소개하며 한 일화를 들려줬다. 몇 해 전 전남 담양 용흥사에서 열린 웅산의 재즈 공연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공연이 무르익자 객석에 앉아 있던 한 비구니 스님이 눈물을 흘렸다. 공연이 끝난 뒤 이유를 묻자 스님은 “평생 수행자로 살며 수많은 법문을 들었지만 오늘처럼 눈물이 난 적은 없었다”고 답했다.
덕안 스님은 이 경험을 통해 한 가지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음악은 설명이 필요 없다. 소리는 말보다 먼저 마음에 도착한다.”
그는 선명상 역시 이런 방식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불교를 모르는 사람에게 교리를 설명하기보다 음악과 치유, 문화예술을 통해 먼저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계종은 최근 몇 년간 선명상을 핵심 사업으로 육성해 왔다. 수행을 법당 안의 전문 영역에 머물게 하지 않고 누구나 일상에서 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선명상 대중화와 함께 명상 프로그램과 치유 콘텐츠, 문화행사도 확대되고 있다.
덕안 스님은 “선명상은 깨달음을 이미 얻은 사람의 언어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중생의 자리에서 시작하는 수행”이라고 설명했다. 불교를 잘 알지 못해도 괜찮다. 먼저 멈추고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조계종은 선명상을 누구나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생활 수행으로 설명한다. 전통 간화선 수행이 깨달음을 향한 길이라면 선명상은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데서 출발하는 수행에 가깝다.
●전국으로 확산되는 선명상 = 이처럼 수행의 문턱을 낮추려는 조계종의 시도는 서울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조계종은 지난해 서울 봉은사에서 열린 국제선명상대회를 계기로 선명상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확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는 국제선명상대회와 선명상 축제를 전국 9개 지역으로 확대했다. 지난 6월 전남 영암 도갑사에서 열린 선명상 축제를 시작으로 7월 세종, 8월 부산 등에서도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대구와 울산, 공주, 영덕, 장성 등에서도 지역 특성에 맞춘 선명상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실제로 지난해 국제선명상대회 참가자 가운데 20~30대 비중은 55.9%에 달했다. 선명상이 특정 수행자만의 영역을 넘어 청년층과 일반 시민에게도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명상 중앙본부 관계자는 “선명상을 일회성 체험이 아니라 일상 속 수행 문화로 정착시키는 것이 목표”라며 “지역별 프로그램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이 선명상을 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출발점은 하나가 아니다” = 조계종의 변화는 여기서 출발한다. 과거 불교는 수행과 교리, 법문 중심이었다. 출가와 참선, 경전 공부가 불교를 만나는 대표적 경로였다. 그러나 최근 조계종은 접근 방식을 바꾸고 있다. 명상으로 시작할 수도 있고 음악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사찰음식으로 시작할 수도 있고 반려동물과 함께 박람회를 찾는 일도 가능하다.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호기심이 불교와의 첫 만남이 될 수도 있다.
덕안 스님은 “음악이 될 수도 있고, 호흡이 될 수도 있고, 걷기가 될 수도 있으며, 한 순간의 울림이 될 수도 있다”며 “중요한 것은 출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인식 변화는 문화행사와 청년 콘텐츠 확대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단순히 프로그램을 늘리는 차원이 아니다. 불교를 만나는 문턱을 낮추고 사회와의 연결을 넓히려는 시도다. 선명상이 수행의 문턱을 낮췄다면 음악회와 박람회, 인공지능 로봇과 반려동물 친화 프로그램은 불교를 만나는 통로를 넓히는 실험들이다.
●‘오픈 불교’가 시작됐다 = 최근 조계종 변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오픈 불교’다. 과거 법당 안에 머물렀던 수행과 명상, 문화 활동을 사회와 공유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조계종 문화부장 성원 스님은 이러한 변화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진우 스님이 강조해 온 선명상 중심의 ‘오픈 불교’ 기조를 꼽는다.
그는 “문화만 개방된 것이 아니라 수행과 명상까지 사회와 공유하기 시작했다”며 “수행 체계까지 사회에 열어놓겠다는 발상이 문화와 행사, 소통 방식의 변화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의 고리가 풀리니 문화도, 행사도, 소통 방식도 함께 변화하기 시작했다”며 “최근 불교계 변화의 본질은 개방성 확대에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누구 한 사람의 성과라기보다 시대 변화와 여러 인연이 함께 만든 결과”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개방성 확대는 수행과 문화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조계종은 첨단기술과의 접점까지 넓히며 새로운 대중과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로봇 스님이 던진 질문 =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인공지능 로봇 스님 ‘가비’다. 지난 5월 조계사에서는 전례 없는 장면이 연출됐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수계식을 통해 법명 ‘가비’를 받고 불자로서 계를 받았다. 가비는 “부처님께 귀의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예, 귀의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생명을 존중할 것’ ‘기만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것’ ‘에너지를 아끼고 과충전하지 않을 것’ 등의 ‘로봇 오계’를 받았다.
가비 프로젝트를 기획한 성원 스님은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불교를 낯설지 않게 경험할 수 있도록 문을 여는 것”이라며 “로봇 스님도 그런 시도의 하나”라고 말했다.
불교가 시대의 기술과 만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직지심체요절 역시 불교문화의 산물이다. 성원 스님은 “젊은 세대가 관심을 갖는 기술과 불교의 접점을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로봇 오계는 인공지능 윤리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성원 스님은 “로봇 오계는 사실 로봇보다 로봇을 만드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계율”이라고 말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공감 능력과 윤리 의식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청년과 무종교인이 몰려온 이유 =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한민국불교문화엑스포는 국내 최초의 반려동물 친화 불교박람회를 표방했다. 불교계는 이를 생명존중과 공존의 가치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시도로 설명한다. 불교박람회의 변화는 이런 흐름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과거 사찰과 신도 중심 행사였던 박람회는 온라인 홍보와 생활문화 콘텐츠 확대를 통해 젊은 세대가 찾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성원 스님은 “인플루언서 협업에 집중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큰 반응이 나왔다”고 말했다.
대표 사례가 지난 4월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불교박람회다. 행사에는 25만명이 방문했다. 관람객 가운데 2030세대 비중은 73%, 무종교인은 48%에 달했다.
성원 스님은 “박람회와 사찰음식, 연등회, 가비에 열광한 사람들 가운데는 무종교인은 물론 다른 종교를 가진 청년들도 적지 않았다”며 “종교를 넘어 불교문화와 가치에 공감하고 참여한 것 자체가 의미 있는 변화”라고 말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도 최근 인터뷰에서 “불교는 원래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지, 불자만 구제하는 종교가 아니다”라며 “종교가 없더라도 명상과 성찰, 생명존중의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조계종은 이러한 관심이 당장 불자 증가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불교가 시민들과 새로운 방식으로 만나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불교 관련 도서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 증가했다. 불교 입문서 판매량은 264%, 사찰음식 관련 도서 판매량은 801% 늘었다. 조계종은 문화상품 공모전 등을 통해 이러한 관심을 생활문화 영역으로 확장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대중화와 본질 사이 = 물론 과제도 남아 있다. 일각에서는 종교가 지나치게 대중성과 흥행을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청년층과 무종교인 유입이 실제 신행 활동과 불자 증가로 이어질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조계종이 풀어야 할 과제는 대중성과 전통성, 문화와 수행, 체험과 신행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에 있다. 그러나 분명한 변화도 보인다. 과거 불교가 사람들에게 절을 찾으라고 말했다면 최근 조계종은 명상과 음악, 기술과 문화, 반려동물과 일상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먼저 다가가고 있다.
성원 스님은 “불교가 법당 밖으로 나온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며 “학교와 지역사회, 다양한 교육기관과 연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생이 있는 곳으로 먼저 찾아가는 불교, 법당 안에서 기다리기보다 사회 속으로 들어가려는 조계종의 실험은 이제 종교의 대중화를 넘어 수행과 문화를 잇는 새로운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그 변화가 일시적 유행을 넘어 한국 불교의 새로운 신행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