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책 읽던 도서관의 변신, ‘도시 혁신’의 심장이 되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도시는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기후변화와 양극화, 급격한 인구 고령화와 디지털 격차는 어느 한 기관이나 기술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이다. 그동안 정부는 대규모 과학단지나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해 혁신을 이끌어왔지만, 거대한 담론 중심의 정책은 정작 시민들이 숨 쉬고 살아가는 일상 공간과의 괴리를 낳았고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부작용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최근 세계적인 혁신의 중심축이 ‘시민의 일상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주거와 업무, 문화가 어우러진 도시 한복판에서 주민과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는 ‘도시 혁신 공간(Innovation District)’이 주목받는 이유다. 그리고 이 거대한 전환의 최전선에 뜻밖에도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공공 공간인 ‘공공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
도서관, 생존 위해 다양한 체질 개선 중
전통적인 도서관은 정적이고 엄숙한 공간이었다. 책을 보존하고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자료 보관소에 가까웠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으로 이용자가 줄고 예산이 축소되는 구조적 위기 속에서, 도서관은 생존을 위한 다양한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곳을 넘어, 시민이 직접 기술을 체험하고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개방형 실험 공간’이자 ‘도시 혁신 거점’으로 재구조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외 선진 사례 속 도서관은 3D 프린터와 AI 기술을 갖춘 ‘메이커스페이스’를 도입하며 포용적 기술 실험실로 진화 중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시민의 역할 변화다. 과거의 시민이 도서관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소비하는 ‘이용자’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공동 창조(Co-creation)의 주체’로 거듭나고 있다.
이른바 ‘도서관 리빙랩(Living Lab·일상생활 실험실)’을 통해 주민들은 마을 단위의 돌봄, 건강, 지역 재생 등 삶과 밀접한 현안을 직접 발굴하고, 대학·연구기관·지자체와 협력해 해결책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정보통신기술(ICT)과 인공지능(AI)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며 사회적 역량을 키운다. 도서관이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실험하는 ‘전환랩(Transition Lab)’이자,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의 가치를 실현하는 실증 장소가 된 셈이다.
시민의 열띤 토론과 도전의 장으로 전환
이러한 공공도서관의 실험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 전반의 공공 혁신으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정책적 전환이 시급하다.
첫째, 단발성 사업 위주의 혁신을 넘어 장기적인 ‘임무 설정’이 필요하다. 도서관의 혁신 활동은 단순히 예산을 타내기 위한 몇 개월짜리 프로그램이어서는 안 된다. 기후위기나 디지털 전환 같은 거대한 사회 문제와 연계되어, 단계적으로 규모를 키우고 눈덩이를 굴리듯 확산(Snowballing)해 나가는 장기적 비전 속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둘째,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참여 구조를 제도화해야 한다. 연구실 안의 기술이 시민의 삶을 바꾸려면,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체력이 길러져야 한다. 리빙랩 기반의 주민 교육을 확대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를 조율할 퍼실리테이터와 코디네이터를 적극적으로 양성하여 시민 중심의 혁신 생태계를 단단히 다져야 한다.
셋째, 지속 가능한 ‘전환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도서관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은 언제나 문이 열려 있는 ‘물리적 공간’과 오랜 ‘운영 경험’이다. 이를 활용해 민·관·학·연·관이 상시 협력할 수 있는 네트워크 거점을 만들어야 한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일회성 실험으로 소멸하지 않도록 다양한 자원과 주체를 끈끈하게 조직화하는 플랫폼 역할이 공공기관에 요구된다.
도서관의 변신은 단순히 한 기관의 생존 전략을 넘어, 도시와 사회를 바꾸는 임무지향적 혁신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조용히 책장 넘기는 소리만 가득하던 도서관이 이제 시민들의 열띤 토론과 도전으로 활력을 띠고 있다. 일상에서 시작되는 이 작은 실험들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앞당기는 거대한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