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권한 줘야 시공 노하우 ‘발휘’, 팀·반장 땐 ‘무시’
하자·부실 막고 품질·안전 확보, 공기·비용 절감하려면 숙련 기능인 활용해야 … 기능등급제 활용방안 법제화 절실
기능등급제는 건설기능인의 ‘시공경험 활용’과 ‘직업전망 제시’를 위해 2021년 5월에 도입됐다. 목적대로 안착됐더라면 지금쯤 건설생산의 품질과 안전이 개선되고 청년층 진입과 숙련인력 육성의 인프라가 구축됐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정부를 거치면서 퇴보해 아직도 ‘쓸모’ 없는 상태에 멈춰 있다.
두가지 요소가 기능등급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하나는 3월 27일자 본지의 기사에서 지적한 ‘기능등급 산정기준의 부당한 개정’이다. ‘경력연수 산식’에 비상식적인 요소를 반영함으로써 다수 직종의 고급 및 특급 인원에 대한 충분한 공급이 불가능해졌다. 개정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 다른 하나는 기능등급 보유자에 대한 ‘활용방안의 부재’다. 장기간 체화한 노하우와 숙련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품질과 안전 개선에 한계가 있고 직업전망을 보여줄 수 없다. 기능등급제 무용론이 대두되는 이유다.
오죽하면 ‘밥그릇’을 침해당할까 우려하는 기술인이 활용방안 법제화의 ‘발목잡기’를 한다는 억측까지 나돌까. 가당치 않다. ‘어느 자리를 누구에게 맡길지’는 ‘누구의 힘이 센지’가 아니라 오로지 ‘그 자리에 누가 있어야 품질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걸어온 길이 다른 기술인과 기능인은 쌓아온 역량과 수행할 수 있는 업무가 다르다. 요컨대 건설사업자가 해당 목적에 맞게 기술인과 기능인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현행 기술인 위주의 제도에 기능인 활용방안을 추가해야 한다. 기능인에게 ‘지위’를 부여해 시공경험(숙련)을 활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효과와 법제화 필요성 그리고 추진방향에 대해 살펴보자.
#. S건설 기능마스터의 시공지도를 받은 아파트 신축현장의 골조공사 소장은 “일반 관리자는 알 수 없는 디테일한 것까지 요구해 처음엔 ‘시어머니 더럽게 걸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좋은 시공방법을 알게 돼 끝날 땐 한수 잘 배우고 간다고 감사인사를 했다”며 기능마스터에 대한 경외감을 나타냈다.
#. S건설 과장으로 채용된 기능인은 “기능마스터가 되고 나서 특허를 여러 건 출원했다. 사실 그 아이디어는 팀·반장 시절에 터득한 것이었다. 당시 전문업체 소장에게 제안도 했지만 묵살 당했다. 힘 있는 지위가 있어야 그 생각도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기능마스터와 협업한 S건설 현장소장은 “비로소 전문공종의 팀·반장 이하까지 현장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게 됐다. 엔지니어는 도면을 보고 시공방향을 제시할 수 있지만 정작 품질과 안전은 기능인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이들에 대한 지도감독은 시공경험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기능마스터의 역할과 효과에 놀라워했다.
통상 건설생산은 옥외에서 이뤄진다. 수평·수직적 공간에서 외부에 노출된 채 현장마다 제각각이다. 온갖 기후의 영향을 받고 표준화가 어렵다. 다양한 시공경험을 거쳐야 온전한 숙련을 터득할 수 있어 장기간이 소요된다. 기능인의 암묵지와 손끝기술이 건설업의 재산인 이유다.
또한 숙련 기능인은 기술인과 기능인 간의 단절을 연결해 줄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기술인과 기능인의 지식기술과 손끝기술을 함께 보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일인이 두가지 길을 모두 경험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어느 나라에서나 양자의 간격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가 오래된 숙제다. 독일은 숙련 기능인인 폴리어와 마이스터에게 그 역할을 부여했다.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체화해야 하는 숙련 축적에 상대적으로 장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대신 공정관리와 구조역학 등에 대한 교육도 이수하도록 했다. 우리나라의 기능장도 축적된 시공경험·손끝기술과 함께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숙련 기능인이다
기술인이 공법과 도면을 통해 시공방향을 제시하지만 아직 실체는 없다. 기능인의 숙련된 손끝기술을 거쳐야 비로소 물리적 실체가 형성된다. 이때 기능인들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품질과 안전을 확보하려면 그들보다 많은 시공경험과 권한 있는 지위가 필요하다. S건설과 L공사의 사례를 통해 숙련 기능인에게 관리자 지위를 부여할 경우의 효과를 엿볼 수 있다.
◆‘고숙련+관리자 지위’로 현장을 장악 = S건설의 기능마스터는 2006년에 2명으로 시작해 2014년에는 218명에 달했다. 현재는 규모와 역할이 달라졌으나 숙련 기능인의 노하우를 활용하는 본질은 유지되고 있다. 초기엔 하자 다발 공종(공사 종류) 중심으로 운영하다가 2009년에는 품질 고급화 및 아파트 차별화 전략의 일환으로서 규모를 확대했다.
이들은 입직 이전에 장기간의 시공경험을 축적한 기능인 출신 협력업체 소장 또는 팀·반장이었다. ‘실기+관리+경력’ 등을 체화한 숙련 기능인에게 ‘원수급자 관리자’라는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그 결과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숙련 보유 관리자로서 복합적 능력을 발휘했다.
당시 현장의 전문업체 소장은 “대졸 기사 등이 작업지시를 하면 ‘예’하고 시늉만 내면 되는데 기능마스터의 지시와 감독은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기능마스터는 △공종별 시공계획 및 도면 검토 △자재 검수 △샘플 시공 지시 및 검토 △작업순서 결정 △협력업체 기술지도 △시공방법에 대한 시범 및 기능지도 △신공법 제안 등을 수행했다.
또한 다양한 생산 참여자간의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고 제각각이던 작업방법을 표준화함으로써 ‘현장의 시공’을 장악했다. 품질·안전의 확보와 공기·비용 절감의 효과가 점차 입증되자 현장에서는 ‘우리 아파트에 하자 없다’를 선언했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L공사에서도 2017년에 ‘건설품질명장제’를 도입했다. 지위와 역할이 약간 달랐지만 숙련 기능인에게 지위를 부여해 이들의 시공경험을 활용하려는 시도의 본질과 그로 인한 성과는 유사했다.
◆‘지위’ 부여 필수, 하지만 개별업체 차원에선 불안정 = S건설의 기능마스터와 L공사의 품질명장이 한목소리로 강조한 것은 ‘반드시 지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장기간의 시공경험을 축적해 높은 수준의 노하우와 식견에 도달하더라도 상급자의 지시 없이는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능마스터와 품질명장은 여러 신공법을 제안했고 그중 일부는 특허로 등록했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방법을 터득한 것은 팀·반장 시절이었다. 당시 현장소장에게 제안했지만 묵살 당했고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기능마스터로 입직한 이후 달라진 점을 묻는 설문에 ‘생각만 하던 창의적 기법을 실제 시공에 관철시킨다’는 응답이 많았다(4.28/5점).
즉 품질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고숙련자의 능력을 활용하려면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 하지만 개별업체 차원의 지위는 각 업체의 상황만큼 불안정하다. 기능마스터는 규모가 축소됐고 품질명장은 2024년 이후 폐지됐다.
◆기능등급제 활용방안 법제화 시급 = 국가 차원에서 지위와 권한을 부여해 고숙련자의 능력을 체계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러한 목적으로 2021년 5월에 기능등급제가 도입됐으나 아직도 활용방안은 마련되지 못했다.
이것은 숙련의 활용을 통한 품질·안전 확보 방안이자, 직업전망 제시를 통한 청년층의 진입 촉진 및 육성 방안이기도 하다. 주요 활용방안은 △전문건설공사 현장대리인 배치기준과 건설업체 설립요건에 선택적 반영 △시공능력평가요소에 반영 △등급별 임금 차등화 등이다.
심규범
현 건설고용컨설팅 대표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실장
건설근로자공제회 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