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이야기
임금체불 대지급금 제도, 사후 수습 넘어 예방으로
몇 해 전 인테리어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10명의 임금체불과 간이대지급금 사건을 대리한 적이 있다. 두 달 치 임금이 밀렸는데 사업주는 연락조차 받지 않아 답답했던 노동자에게 대지급금 제도를 설명하고 임금체불 진정제기, 사업주 체불확인서 발급, 그리고 근로복지공단에 간이대지급금 신청·지급까지 사건을 처리했다.
요즘 들어 부쩍 직원의 임금과 퇴직금을 주지 못하는 사업주의 상담이 늘고 있다. 그만큼 경기가 좋지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임금과 퇴직금 체불 상담을 하다 보면 노무사로서 자연스럽게 대지급금 제도와 체불청산지원 사업주 융자 제도를 설명하게 된다.
임금을 줄 의사는 있지만 당장 지불능력이 없는 사업주에게는 이러한 제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폐업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인다. 필자는 이를 설명하면서 국가가 체불임금 사업주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대지급금을 어떻게 회수하는지 자연스럽게 궁금해졌다.
대지급금과 체불청산 사업주 융자 제도
대지급금 제도는 도산이나 임금 체불로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에게 국가가 사업주를 대신해 체불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도산·폐업 사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도산대지급금과 체불 확인만으로 지급되는 간이대지급금(퇴직자 최대 1000만원, 재직자 700만원)으로 나뉜다.
체불청산지원 사업주 융자제도는 체불청산 의지가 있는 사업주에게 융자를 지원하는 제도로 지급 후 국가는 사업주에게 변제금을 청구한다. 그러나 변제금 누적회수율은 2019년 34.3%에서 2024년 30.0%로 계속 감소세다. 1998년부터 2024년까지 누적 지급액은 총 8조3328억원인데, 정부가 회수한 누적액은 2조4768억원에 그쳐 미회수 잔액이 5조8560억원에 달한다.
지난 5월 12일부터 시행된 개정 임금채권보장법에는 세가지 핵심 변화가 담겼다. 첫째, 변제금 징수에 기존 민사 집행 대신 국세 체납처분 절차를 도입해 징수 속도를 높였다. 둘째, 하청 체불에 대해 직상수급인까지 변제금 납부 연대책임을 지도록 해 원청의 책임 회피를 차단했다. 셋째, 대지급금을 변제하지 않는 사업주에 대한 신용제재가 강화됐다. 또한 내년부터 부정수급 신고 포상금 상한도 1억원에서 2억원으로 높이는 시행령도 예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행 제도의 한계
징수 절차가 빨라져도 체불 사업주 상당수는 이미 자산을 분산하거나 재산을 숨겨둔 상태다. 폐업 후 배우자나 자녀 명의로 재창업하거나 법인을 해산하고 개인 사업자로 전환해 사실상 같은 사업을 이어가는 방식이 반복된다. 연대책임 역시 원청이 체불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길어지고, 신용제재 역시 미리 재산을 처분한 사업주에게는 실효성이 낮다. 체불 전력이 있어도 아무런 제약 없이 신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현행 구조에서는 이런 순환이 끊어지지 않는다.
체불청산 융자 역시 3단계 절차 자체가 영세 사업주에게 높은 벽이다. 제도가 있어도 몰라서, 중간에 포기해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취지가 좋아도 접근성이 낮으면 없는 것과 다름없다. 신청 창구를 일원화하고 체불 확인부터 융자 실행까지 한곳에서 마칠 수 있는 원스톱 구조로 바꾸는 게 시급하다. 필요한 사람에게 제때 닿을 수 있도록 현장 안내와 홍보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 체불임금에 대한 인식변화가 시급하다. 사업이 어려워지면 임금부터 미루는 관행, 체불해도 버티다 보면 합의로 끝나는 경험이 반복되는 한 제도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임금체불은 재산권 침해이자 형사 범죄다. 실질적인 형사 제재와 사회 전반의 강한 인식이 함께 뒷받침돼야 비로소 제도도 힘을 얻는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근본부터 다시 설계해야
앞으로의 정책은 사후 수습이 아닌 사전 예방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장의 임금 보증보험 의무화, 반복 체불 사업주의 공공 입찰 제한 강화, 체불 전력자의 재창업 이력 연동 모니터링, 체불청산 융자의 원스톱 신청체계 정비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체불 고위험 업종 맞춤형 감독과 체불 조기경보 체계도 논의의 테이블에 올라와야 한다.
임금채권보장기금이 반토막이 난 지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대지급금 제도가 노동자의 실질적 안전망으로 작동하려면 수습이 아니라 예방을 중심으로 제도 전체를 근본부터 다시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이윤정
노무법인 런 인사컨설팅
서울본사 대표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