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AI 시대가 요구하는 빛의 기술들
인공지능(AI) 서비스를 하드웨어 수직 스택의 관점에서 보면 최근 부각되는 광 기술은 단순한 주변 기술이 아니라 구리 배선과 실리콘 트랜지스터가 마주한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는 핵심 인프라로 이해해야 한다. AI 모델이 커질수록 병목은 연산 성능 자체보다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고 적은 전력으로 이동시키는가에 집중된다. GPU, HBM, 스위치, 랙, 데이터센터를 잇는 경로에서 전력 소모와 지연이 급증하고, 이른바 ‘전력의 벽’과 ‘메모리의 벽’이 시스템 확장의 한계로 작동한다.
데이터 등 이동병목 푸는 광 기술
광 기술은 이 한계를 빛의 고대역폭, 저손실, 병렬성으로 돌파하려는 시도이며 연산 코어에서 클러스터 네트워크, 그리고 제조·계측 장비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위에서 전개되고 있다. 특히 AI 인프라가 단일 서버의 성능 경쟁에서 수만 개 가속기를 묶는 시스템 경쟁으로 이동하면서, 광 기술은 선택적 혁신이 아니라 확장성을 좌우하는 물리적 필수 조건으로 바뀌고 있다.
가장 하단의 연산 레이어에서는 빛의 간섭, 변조, 파장 병렬성을 이용해 행렬곱 연산을 처리하려는 광컴퓨팅이 연구되고 있다. 현재 자본과 수요는 데이터 이동을 해결하는 인터커넥트에 더 강하게 집중되어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광 연산 가속기가 AI 추론과 특정 선형대수 연산에서 에너지 효율을 크게 높일 가능성이 있다.
라이트인텔리전스는 광 연산 가속기와 CXL(CPU, GPU, 메모리, 저장장치 등 다양한 컴퓨팅 자원을 고속으로 직접 연결하여 데이터를 처리하는 차세대 인터페이스 기술) 호환 하드웨어를 실제 제품으로 제시하며 상용화에 가장 앞선 기업으로 평가된다. 뉴로포스, 루마이 옵탈리시스, 큐앤트 등은 메타표면, 공간 광학, 광 텐서 코어를 활용한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고 있다. 사이퀀텀, 재너두 같은 광자 기반 양자컴퓨팅 기업도 같은 장기 레이어에 포함된다. 다만 이 영역은 아직 범용 GPU를 대체한다기보다 특정 연산에서 보조적 효율을 제공하는 단계에 가깝다. 즉 단기 매출보다는 미래 컴퓨팅 구조를 가늠하는 탐색 영역으로 보아야 한다.
보다 현실적인 주전장은 패키지 및 상호연결 레이어다. 이 레이어는 칩과 HBM 메모리 사이, 혹은 칩과 칩 사이의 구리 배선을 실리콘 포토닉스 기반 광신호로 대체해 메모리 병목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벨과 브로드컴은 광모듈의 핵심인 초고속 광 DSP, PAM4, coherent-lite, 아날로그 프론트엔드 칩셋을 대량 공급하며 ‘이미 상용 시장의 중심’에 있다. 라이트매터는 3D 광학 인터커넥트 플랫폼인 Passage를 통해 칩 간 연결 구조를 바꾸려 하고, 셀레스티얼AI는 칩과 메모리를 빛으로 묶는 포토닉 패브릭 기술을 인정받아 마벨에 인수되었다. 아야르랩스와 인텔은 패키지 내부용 광 칩렛과 Optical Compute Interconnect(광컴퓨팅 상호연결) 실증을 통해 빅테크 공급망과 양산 규격을 맞추는 단계에 있다. 이 영역은 AI 하드웨어의 성능이 개별 칩의 속도보다 전체 시스템의 데이터 흐름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광학 인터커넥트가 승부처
한편 클러스터 및 네트워크 레이어는 현재 광 기술이 가장 큰 매출을 만들고 있는 구간이다. 수만 개의 GPU를 하나의 학습 시스템으로 묶기 위해서는 400G, 800G를 넘어 1.6T급 광트랜시버와 레이저 모듈이 필요하다. 코히런트, 루멘텀,이노라이트, 이옵토링크 같은 업체들은 광모듈과 광원 공급망의 중심에 있으며, 엔비디아가 이 생태계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글은 자체 TPU 클러스터에 광회선 스위칭 기술을 적용해 전기 패킷 스위치의 지연과 전력 부담을 줄이고 있다. 브로드컴은 광엔진을 스위치 칩과 결합한 CPO 이더넷 스위치로 대규모 AI 클러스터의 표준을 선점하려 한다. 엔비디아 역시 ‘Spectrum-X(이더넷 네트워킹 플랫폼)’와 ‘Quantum-X Photonics’(광섬유 기반 네트워킹 시스템)를 통해 스위치 IC 패키지에 실리콘 포토닉스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아이프로닉스와 루멘텀의 MEMS(미세전자기계시스템) 기반 OCS(처방전달시 스템) 플랫폼은 패킷 지연을 줄이는 차세대 광회선 스위칭 기술로 ‘초기 채택 단계’에 있다. 이 레이어의 특징은 ‘기술적 검증보다 공급 안정성과 설치 규모’가 더 중요해진다는 점이다. 광모듈, 레이저, 커넥터, 케이블은 AI 클러스터 증설 속도와 직접 연동되며, 특정 부품의 부족은 전체 GPU 팜의 가동 시점을 늦출 수 있다. 따라서 이 구간에서는 반도체 설계 경쟁 못지않게 광원과 모듈, 케이블 공급망을 누가 안정적으로 확보하는지가 전략적 우위로 전환된다.
그러나 광 AI 하드웨어의 핵심은 전방의 칩 설계 기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양산 단계에서는 제조·계측·패키징 생태계가 공급망의 병목’을 쥔다. 광섬유와 광회로는 나노미터 또는 마이크론 단위로 정렬되어야 하며, 작은 손실도 전체 시스템의 수율과 전력 효율을 무너뜨린다. 이 때문에 산텍 키사이트 어드반테스 폼펙터 테라다인 엑스포 비아이 안리츠 같은 테스트·계측 기업이 필수적이다. 산텍은 초고출력 가변 레이저와 OFDR(광섬유 반사 측정) 기반 분석 장비를 통해 CPO의 다채널 광파워 측정과 결함 검출을 담당한다. 키사이트 어드반테스트 폼펙터는 웨이퍼 프로버와 자동화 테스트 장비를 결합해 실리콘 포토닉스 웨이퍼 단계에서 전기적·광학적 특성을 동시에 검사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테라다인은 콴티파이 포토닉스를 인수하며 CPO 고속 테스트 자동화 역량을 강화했다.
양산은 후방공정이 좌우
능동 정렬과 광패키징도 같은 이유로 중요하다. 피콘텍은 실리콘 포토닉스와 CPO 조립·테스트 자동화 라인을 연구개발부터 대량 양산까지 공급하는 핵심 장비사로 평가된다. 에어로테크와 피지크인스트루먼트는 나노미터급 모션 제어와 6축 능동 정렬 스테이지를 제공하고, ‘MRSI(엠알에스아이)/Mycronic(마이크로닉)’과 ‘ASMPT(에이에스엠피티)’는 초고속 광모듈 및 CPO용 고정밀 다이본더를 공급한다.
커넥터 영역에서는 센코가 착탈식 PIC 커넥터와 SN-MT 계열 기술로 CPO의 서비스성과 수리 가능성을 높이고 있으며, US 코넥은 초고밀도 MMC (최대 실체 조건)커넥터 표준을 제시한다. 코닝과 후지쿠라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용 광섬유 케이블과 융착 접속 공급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이스트론과 비코는 InP, GaAs 계열 레이저 소자 제조에 필요한 MOCVD (유기금속 화학기상증착) 장비를 공급하고, TSMC와 글로벌파운드리스는 실리콘 포토닉스 다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이들 기업은 화려한 AI 모델이나 GPU 브랜드 뒤에 가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수율과 원가, 납기, 유지보수 가능성을 결정하는 기반’을 제공한다.
숨은 승자는 계측장비 업체들
AI 광학 테마를 분석할 때는 엔비디아 브로트컴 마벨 라이트매터 같은 전방 기업의 내러티브만 따라가서는 부족하다. ‘실제 병목은 빛을 만들고, 나누고, 정렬하고, 측정하고, 패키징하는 후방 공정’에서 발생한다. ‘광컴퓨팅은 장기 옵션’이고, ‘CPO와 광인터커넥트는 중기 구조 변화’이며, ‘광트랜시버와 계측·패키징 장비는 현재 매출과 수율을 좌우하는 현실적 구간’이다.
결국 ‘투자와 산업 분석의 핵심’은 “누가 더 빠른 칩을 설계하는가”뿐 아니라 “누구의 장비와 부품이 없으면 양산이 멈추는가”를 식별하는 데 있다. 이 관점에서 ‘산텍(일본)’, ‘피콘텍(독일)’, ‘센코(일본)’, ‘키사이트(미국)’, ‘어드반테스트(일본)’, ‘아이스트론(독일)’ 같은 기업은 AI 광 하드웨어 스택의 보이지 않는 초크포인트로 평가할 수 있다.
내일e비즈 C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