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릴 땐 버티고, 올릴 땐 신속하게”…전분당 업계의 ‘담합 7년’

2026-07-07 13:00:24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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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식품 필수 원재료 전분당 제조사 ‘짬짜미’

신규진입 어려운 장치산업, 4개사가 시장독점

정부 세금혜택 받으면서도 뒤에선 ‘가격담합’

과자, 빵, 음료, 주류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거의 모든 식품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원재료가 있다. 옥수수를 가공해 만드는 ‘전분’과 ‘전분당(물엿, 올리고당, 액상과당 등)’이다. 식료품 가격에 전방위적 연쇄 효과를 미치는 이 시장에서 국내 공급을 독점해 온 대기업 제조사들이 장기간 치밀하게 가격을 담합해 온 사실이 적발됐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5월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태스크포스(TF) 및 제268차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밀가루 담합 조사결과 및 대응방안을 보고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20년 과점 체제가 낳은 ‘독과점의 횡포’ =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B2B(기업간 거래) 전분당 시장의 과점 사업자인 대상, 사조씨피케이, 삼양사, 씨제이제일제당 4개사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역대 최대 규모인 총 747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7일 밝혔다.

국민의 기본 먹거리 물가를 뒤흔들고 부당 이득을 극대화한 이들의 담합 전말을 공정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국내 전분당 시장은 신규 사업자의 진입이 어려운 대규모 장치 산업이다. 대상, 사조씨피케이, 삼양사, 씨제이제일제당 등 4개사의 시장 점유율은 전분 95.7%, 전분당 86.4%로 사실상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주원료인 가공용 옥수수를 해외에서 ‘공동구매’해 운송하기 때문에 제조원가 구조가 거의 같다. 제품의 품질이나 규격도 표준화돼 있어 ‘가격’ 외에는 차별화 요인이 없다. 담합을 모의하기에 최적의 구조였던 셈이다.

◆전쟁 위기마저 부당이득 기회로 활용 = 정부는 전분당이 국민 물가와 산업 경쟁력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고려해 2021년 4월부터 매년 200만톤 안팎의 가공용 옥수수에 할당관세 0%를 적용해 주며 부담을 덜어줬다. 그러나 4대 제조사는 이러한 정부의 물가안정 노력과 세제 혜택을 비웃듯,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가격 담합에 나섰다.

이들의 담합 행위는 2018년 5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7년 5개월간 무려 13차례에 걸쳐 실행됐다. 이들의 범행 수법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더욱 악랄하게 작용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전분당의 원료인 국제 옥수수 가격이 급등했다. 전분당 4사는 원가 상승 부담을 B2B 거래처에 전가하기 위해 판매가격 인상을 전격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판매가격은 담합 시작 시점인 2018년에 비해 최대 73%까지 폭등했다.

반대로 국제 옥수수 가격이 안정세로 돌아서자 거래처들의 가격 인하 요구를 방어하기 위해 인하 폭을 최소화하고 인하 시기를 최대한 늦추기로 모의했다.

특히 이들은 대형 식품 대기업 등 힘 있는 실수요처가 압박할 때는 가격을 깎아주는 척하면서도, 협상력이 약한 소규모 실수요처와 대리점 등에는 높은 가격을 그대로 유지해 마진을 짜냈다. 결국 대기업 제조사들이 담합으로 영업이익을 방어하고 개선하는 동안, 그 원가 부담은 고스란히 최종 소비자인 국민들의 물가 부담으로 전가됐다.

◆영화 방불케 한 치밀한 범행 = 이들의 담합은 단순한 구두 합의에 그치지 않고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실행됐다. 임원급 모임에서 큰 틀의 목표 가격과 적용 시기를 정하면 팀장급 실무 모임에서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수립했다. 거래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인상 근거(환율, 원료가격 등)를 통일하는 것은 물론, 공문 발송 순서와 일자까지 조율했다. 한 업체가 먼저 가격을 올리면 나머지 업체들이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올려 거래처가 시장 가격 자체를 수용하도록 압박하는 일명 ‘순차 통보’ 전략을 썼다.

합의 이행을 감시하는 과정은 첩보 영화를 방불케 했다. 각사 실무자들은 거래처에 공문을 발송하기로 한 날 경쟁사 사무실을 서로 방문해 공문 내용을 확인한 후, 우체국까지 동행해 공문이 실제로 발송되는지 눈으로 검증하기까지 했다.

거래처와의 가격 협상 때는 가장 거래 비중이 높은 ‘주관사’가 협상을 주도하고, 나머지 ‘비주관사’들이 일부러 주관사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해 거래처가 주관사의 인상안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품앗이 설득’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도 = 공정위는 이 같은 행위가 공정거래법 제40조 제1항 제1호(가격담합) 등을 위반한 중대한 위법행위로 판단하고 엄중 조치를 내렸다. 이번에 부과된 총 7475억7800만원의 과징금은 공정위 담합 사건 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업체별 과징금 부과내역은 △대상 2341억4100만원 △삼양사 2103억4000만원 △사조씨피케이 2001억3200만원 △씨제이제일제당 1029억6500만원이다.

과징금 폭탄과 더불어 공정위는 네 번째로 ‘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이라는 강력한 시정조치를 부과했다. 오랜 과점 관행으로 인해 과징금 부과만으로는 담합의 영향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4개사는 현재의 담합 가격을 폐지하고 경쟁 상황을 반영해 가격을 독자적으로 다시 정해야 하며, 향후 3년간 반기마다 그 변경 내역을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은 “이번 조치는 최근 제당, 제분 업계에 이어 국민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식료품 물가를 안정시키고 독과점 대기업들의 부당한 폭리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앞으로도 민생을 위협하는 카르텔 행위를 집중 감시하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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