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회생, 공은 다시 MBK·메리츠로
회생 절차 멈추자 거래망도 흔들렸다
카드사·납품업체 위험관리 돌입 … 청문회 추진에도 자금조달이 관건
서울회생법원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 이후 홈플러스 거래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카드사는 위험 관리에 나섰고 일부 납품업체는 공급을 조정했다. 정부는 협력업체 지원을 확대하고 국회는 청문회 추진에 나섰지만 시장은 이미 회생 실패 가능성을 반영하는 모습이다.
7일 법조계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 회생4부는 지난 3일 홈플러스 회생절차를 직권으로 폐지했다. 재판부는 최소 2000억원의 외부 운영자금 확보를 전제로 한 회생계획안에 대해 이를 뒷받침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자금조달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운영자금을 확보해 14일 안에 즉시항고하면 회생절차를 다시 진행할 가능성은 열어뒀다. 결국 법원이 문제 삼은 것은 자금 규모가 아니라 회생계획을 실제 이행할 수 있는 실행 가능성이었다는 분석이다.
최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이 운영자금 조달 책임을 놓고 평행선을 이어가는 사이 거래 상대방들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회생절차는 법적으로 종료되지 않았지만 시장은 이미 거래 위험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 부담은 노동자와 협력업체, 입점 점주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시장이 먼저 움직였다 = 회생절차 폐지 결정 이후 가장 먼저 나타난 변화는 거래망의 위축이다.
온라인 고객센터 운영이 중단됐고 신선식품 당일배송 서비스도 멈췄다. 일부 상품은 납품 차질로 매대가 비는 현상이 나타났고 거래처들은 공급을 조정하거나 상황을 관망하기 시작했다.
금융권도 위험 관리에 들어갔다.
삼성카드는 회생절차 폐지 결정 직후 홈플러스 가맹점 대금 지급을 일시 보류한다고 통보했다가 매출 취소 추이가 안정되자 지급을 재개했다. 현대카드는 포인트 결제 서비스를 중단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홈플러스는 회생절차 폐지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거래를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발했지만 카드사들은 고객 보호와 거래 위험 관리 차원의 조치라고 설명했다.
회생절차는 아직 유지되고 있지만 시장은 이미 거래 상대방의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회생 막은 ‘실행 가능성’ = 법조계는 이번 결정을 회생 의지보다 회생계획의 실행 가능성을 판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홈플러스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으로 확보한 1206억원만으로는 운영자금이 부족하다며 최소 2000억원의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수정 회생계획안에는 적자 점포 37곳의 영업을 종료하고 핵심 점포 67곳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는 방안도 담겼다.
그러나 법원은 구조조정의 강도보다 이를 실제 이행할 수 있는 자금조달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결정문에 따르면 MBK는 메리츠가 2000억원 전액을 대출하면 그 가운데 1000억원에 대해 MBK와 김병주 회장이 공동 연대보증을 제공하겠다는 의견을 냈다. 반면 메리츠는 연대보증이 제공되더라도 지원 가능한 DIP(회생채무자대출) 금융은 최대 1000억원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법조계는 이번 결정이 회생계획의 수행 가능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투자확약서나 대출확약서처럼 실제 자금 집행을 담보할 수 있는 구속력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한다.
◆지원과 회생은 별개 = 거래망 불안이 커지면서 정부와 정치권도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여야 협의를 거쳐 홈플러스 사태 청문회를 추진하기로 했다. 청문회에서는 MBK와 메리츠의 자금조달 과정과 경영 책임 등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홍익표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MBK의 부도덕한 인수·합병(M&A) 방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대규모 실업과 협력업체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금융당국이 제도 개선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와 금융당국도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지원을 확대했다. 신용보증기금은 홈플러스 협력 중소·중견기업에 최대 3000억원 규모의 특례보증을 공급하기로 했고 은행권은 회생절차 개시 이후 약 5조원 규모의 만기연장과 상환유예 등을 지원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 같은 지원은 협력업체와 근로자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안전망이다. 청문회 역시 책임 규명과 제도 개선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회생을 위한 운영자금을 대신할 수는 없다.
◆남은 건 책임 = 회생절차 폐지가 곧바로 파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운영자금이 확보될 경우 즉시항고를 통해 회생절차를 다시 진행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결국 남은 2주 안에 실행 가능한 자금조달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느냐가 회생 여부를 가를 변수다.
문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거래망의 신뢰가 흔들릴수록 영업 정상화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와 유통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정부의 금융지원과 국회의 청문회 추진도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다. 협력업체의 유동성을 지원하고 책임을 규명하는 데 의미는 있지만, 회생계획을 다시 움직일 운영자금을 대신할 수는 없다.
결국 공은 다시 MBK와 메리츠로 돌아왔다. 법원이 요구한 것도, 시장이 확인하려는 것도 새로운 회생계획이 아니다. 책임 있는 주체가 실제 집행 가능한 자금조달 방안을 내놓느냐다. 앞으로 남은 2주는 홈플러스의 존속 여부뿐 아니라 흔들리기 시작한 거래망을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될 전망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