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 자체 추론용 AI칩 개발
엔비디아·화웨이 의존 낮추기 … 칩 설계해도 생산·HBM 장벽 높아
소식통들에 따르면 딥시크가 개발 중인 칩은 새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훈련용이 아니라, 이미 훈련된 모델이 이용자에게 답변을 생성하는 추론용으로 설계되고 있다. 딥시크는 최근 몇 달 사이 칩 설계 엔지니어 채용을 늘렸고, 칩 설계 업체와 파운드리, 메모리 업체 등 외부 협력사들과도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 작업은 아직 초기 단계다. 한 소식통은 개발 작업이 약 1년 전 시작됐다고 전했다.
딥시크가 자체 칩 개발에 성공할 경우 중국 AI 산업의 경쟁 구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현재 중국 AI 칩 시장은 미국의 대중국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 이후 화웨이가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화웨이 칩은 여전히 엔비디아 최첨단 제품과 격차가 크지만,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 AI 칩 시장에서 약 절반을 차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딥시크는 그동안 AI 모델 성능 혁신에 집중해온 회사로 알려져 있다. 1년여 전 고효율 AI 모델 2개를 공개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고, 2025년 1월에는 저비용 고성능 추론 모델 R1으로 미국 기술주 급락을 촉발했다. 딥시크는 R1의 기반 모델을 엔비디아 H800으로 훈련했다고 밝힌 바 있다. H800은 중국 시장용으로 설계됐지만, 미국 정부는 2023년 말 이 칩의 대중국 수출도 금지했다.
이후 딥시크는 화웨이 칩 의존도를 높여왔다. 지난 4월에는 화웨이 어센드 칩에 맞춘 V4 모델을 공개했다. 화웨이는 V4의 경량 버전인 V4-플래시 훈련 일부에 자사 프로세서가 쓰였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이 모델 출시 뒤 중국 기술 대기업들의 화웨이 어센드 950 칩 주문이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딥시크의 자체 칩 개발은 세계 AI 기업들이 하드웨어 통제력을 높이려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오픈AI는 지난달 브로드컴과 함께 개발한 첫 맞춤형 추론 칩 ‘할라페뇨’를 공개했고, 앤스로픽도 자체 AI 칩 개발을 검토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지난 4월 보도한 바 있다. AI 활용이 확산되면서 컴퓨팅 수요는 모델을 학습시키는 훈련에서 실제 서비스를 구동하는 추론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다만 딥시크가 경쟁력 있는 칩을 실제 양산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장벽이 크다. AI 칩 설계에는 통상 수년의 시간과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미국 규제로 중국 반도체 설계 기업들은 해외 최첨단 파운드리 접근에 제약을 받고 있고, AI 추론 칩에 핵심적인 고대역폭메모리, HBM 확보도 쉽지 않다.
시장에서는 엔비디아에 대한 단기 충격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리처드 윈저 라디오프리모바일 애널리스트는 “엔비디아는 중국에서 이미 사실상 제로 상태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딥시크가 최첨단 제조 공정에 접근하지 못한다면 성능이 떨어지게 돼 중국 밖에서 자체 반도체를 판매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지 배런스도 중국 매출 비중이 줄어든 엔비디아에 당장 큰 매출 충격을 주지는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ING의 얀 프레데릭 슬레이커만은 맞춤형 칩과 신규 경쟁자가 늘어나면 엔비디아의 높은 이익률이 점차 도전을 받을 수 있다고 봤다.
딥시크의 반도체 개발은 첫 외부 투자 유치와도 맞물려 있다. 로이터는 지난 6월 딥시크가 기업가치 520억~590억달러로 평가받는 투자 첫 회차에서 70억달러를 조달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수년간 외부 투자를 거부해온 기존 전략을 뒤집은 것으로, 자체 칩 개발을 포함한 장기 생존 전략에 필요한 자금 확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