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많은 친족 특례, 다시 시험대에
장윤기 사건 계기 폐지론 확산
가족 보호와 실체적 진실 충돌
친족이라는 이유로 범죄 증거를 없애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형법상 ‘친족 특례’가 장윤기 사건으로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현직 경찰관인 장윤기의 아버지가 핵심 증거를 폐기한 정황에도 친족 특례 적용으로 형사처벌이 어렵다는 해석이 나오면서다. 국회와 법조계에서는 제도 개선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10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현행 형법 제151조(범인은닉)와 제155조(증거인멸)는 친족이나 동거 가족이 본인 또는 친족을 위해 범인을 숨기거나 증거를 인멸한 경우 처벌하지 않는 예외를 두고 있다.
가족에게 범죄 신고나 수사 협조를 강요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 규정으로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유지돼 왔다. 그러나 중대 강력범죄에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둘러싼 논란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장윤기 사건은 잠복해 있던 논란거리에 다시 불을 붙였다. 검찰은 장씨 아버지가 사건 이후 아들의 자취방에서 리얼돌과 휴대전화를 폐기하고 차량에서 나온 케이블타이를 보관한 정황 등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버지는 친족 특례 적용 대상이라 증거인멸죄로 형사처벌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경찰청은 형사처벌 대상에서는 제외되더라도 감찰 결과에 따라 국가공무원법과 경찰공무원 징계령에 따른 징계는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입법 논의에도 불을 붙였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일 범인은닉죄와 증거인멸죄에 적용되는 친족 특례를 삭제하는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홍석기 국가수사본부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국회에서 입법적으로 잘 정리해주면 좋겠다”며 제도 정비 필요성을 언급했다. 재산범죄 분야에서는 친족상도례가 이미 개정된 만큼 형사절차에서도 친족 면책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가 새로운 입법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친족 특례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경기북부경찰청은 지난 4월 캄보디아에서 국내로 송환된 직후 도주한 20대 남성 A씨를 5개월 만에 재검거했다. A씨는 도피 과정에서 가족으로부터 은신처 마련, 금전적 지원 등의 도움을 받아 경찰 추적을 피했다. 하지만 경찰은 가족에게 형사책임을 묻지 못했다.
앞서 2011년 전주 일가족 살해 사건에서는 현직 경찰관이던 피의자의 외삼촌이 증거인멸을 교사한 혐의를 받았지만 친족 특례가 적용돼 처벌받지 않았다. 또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과 가족이 도피 피의자를 숨겨준 사건 등에서도 친족 특례가 적용되면서 제도 개선 요구가 이어졌다.
법조계에서는 변화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방향을 놓고는 의견이 갈린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과거와 같은 혈연 중심의 가족문화가 유효하지 않은 만큼 동거 가족으로 범위를 좁히거나 특례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친족 면책을 악용해 가족이 범행 은폐에 동원되는 사례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친족 특례는 가족에게 범죄 신고나 증거 제출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적법행위의 기대가능성’에 근거한 제도라는 반론도 있다. 가족을 감싸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문제라 친족 범위를 조정하거나 직권남용 등 다른 법률을 통한 제재를 검토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일본은 친족의 범인도피나 증거인멸에 대해 법원이 사안에 따라 형을 면제할 수 있다. 독일은 친족 면책을 인정하면서도 검사·경찰 등 공무원의 직무상 처벌 방해는 별도 규정으로 다룬다. 프랑스는 친족의 범인도피는 면책하지만 증거인멸은 친족이라도 처벌한다.
우리나라는 친족이면 원칙적으로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구조여서 적용 범위가 상대적으로 넓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윤기 사건은 특정 사건의 처벌 여부를 넘어 친족 특례를 둘러싼 오래된 논쟁을 다시 불러냈다. 가족 보호라는 전통적 가치와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공익 사이에서 형법이 어떤 균형점을 선택할 것인지, 친족 특례를 폐지할지 또는 적용 범위를 조정할지가 새로운 입법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