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에 임원배상책임보험 관심 후끈

2026-07-13 13:00:06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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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연구원 “최근 10년새 연평균 15.5% 성장”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보잉 737 MAX 기종이 잇달아 추락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전 세계적으로 동일 기종의 운항이 전면 중단됐고 사고 원인으로 조종특성보정시스템(MCAS) 오작동과 센서 오류 등이 지목되면서 보잉의 주가 폭락은 물론 기업 신뢰도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미국 뉴욕주 연금기금과 콜로라도주 경찰·소방관 연금기금 등은 보잉 이사회 및 전·현직 임직원들을 상대로 델라웨어주 형평법원(민사전문법원)에 대규모 소송을 제기했다. 경영진이 경영 감시 및 감독 의무를 심각하게 위반해 주주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에서다.

2021년 11월 델라웨어 주법원은 보잉이 주주들에게 합의금 2억2750만달러(3000억원)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사건을 종결지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합의금에도 불구하고 보잉사에게 재무적 타격은 없었다. 합의금은 물론 수천만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고액의 변호사 선임 비용 등 제반 법률 비용 일체를 보잉이 가입해 둔 ‘임원배상책임보험(Directors and Officers Liability Insurance)’ 주관 보험사인 악사 엑셀(AXA XL)이 전액 해결했기 때문이다.

◆상법 개정 후 문의·가입 몰려= 임원배상책임보험은 기업의 이사나 집행임원 등이 업무 수행 중 발생한 부주의나 과실로 인해 주주 또는 제3자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 이로 인해 발생하는 법률 비용과 손해배상금 합의금 등을 폭넓게 보장하는 핵심 기업 보험 상품이다.

13일 보험연구원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임원배상책임보험 시장은 2023년 수입보험료 기준 572억원 규모로 집계됐으며 최근 10년간 연평균 15.5%의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기준 임원배상책임보험 계약 건수는 1712건으로 2014년 대비 5배가량 폭증했다. 비록 전체 일반손해보험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48% 수준에 불과하지만, 성장 잠재력만큼은 독보적이다. 현재 국내 시장은 상위 3개 손해보험사가 전체 마켓의 70%가량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 이 상품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91년 미국 AIG사의 약관이 당시 보험감독원의 인가를 받으면서다. 이후 1997년 IMF 외환위기, 2004년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 제정,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이 시장 확대의 촉매가 됐다.

이처럼 보험업계가 요동치는 핵심 배경은 바로 ‘상법 개정’이다. 정부의 법 개정에 따라 지난해 7월부터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가 전격 시행됐으며 올해 7월부터는 상장회사의 경우 이사 총수의 3분의 1 이상을 독립이사로 선임하도록 의무화됐다. 임원 개인이 짊어져야 할 법적 리스크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셈이다.

◆임원 상속인까지 보호 = 임원배상책임보험은 기본적으로 임원명부에 등재된 등기임원은 물론, 등기임원은 아니지만 통상 임원의 직책을 갖고 실질적인 경영 역할을 수행하는 집행임원까지 폭넓게 보호한다. 특히 임원이 사망하더라도 보장 책임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해당 임원의 상속인(배우자 등)이나 자산관리인, 법적대리인까지 보호 대상에 포함된다.

기업 합병·분할 등 구조조정이나 자산운용 등 경영상 오판으로 주가가 하락해 주주 소송이 제기되는 경우는 물론, 부당해고나 차별대우 등 종업원에 의한 소송, 상품·서비스 결함으로 인한 소비자 소송 등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특허권 침해 등 경쟁사와의 분쟁, 자본시장법이나 공정거래법 위반과 관련한 행정기관의 소송 대응 비용도 보장한다.

보험료는 기업의 재무 상황과 재무제표 분석, 업종별 리스크 등을 종합 평가해 산출된다. 대기업 등은 보험사 재보험사에 위험을 재분산하는 구조를 취한다. 계약은 1년 단위 선납 및 갱신 형태로 진행된다.

주목할 점은 이 보험이 타 금융 상품과 달리 ‘한번 선택한 보험사를 웬만해서는 갈아타지 않는’ 독특한 락인(Lock-in)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보험료 산정 과정에서 고객사인 기업의 핵심 영업비밀과 내밀한 재무·경영 정보가 보험사에 고스란히 제공되기 때문에 보험사를 변경할 경우 기업 비밀이 외부로 유출될 위험성이 높아 기존 계약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지배적이다.

◆대기업·상장사 편중 심해 = 과거 글로벌 M&A 시장에서도 임원배상책임보험은 결정적인 방패막이 역할을 해왔다. 지난 2008년 스위스 제약 거두 로슈(Roche)가 자회사 제넨텍(Genentech)을 100%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려 하자, 제넨텍 소액주주들은 로슈와 제넨텍 이사회를 상대로 미국 델라웨어 주법원에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로슈가 제시한 인수 가격(주당 89달러)이 제넨텍의 미래 가치를 심각하게 저평가했다는 이유였다.

당시 거대 주주 세력과 소액주주 분쟁 사이에 낀 제넨텍 이사회의 유일한 무기는 임원배상책임보험이었다. 소송 부담을 던 이사회가 끈질기게 버틴 끝에 주당 6달러의 인수 가격 인상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보험사가 제반 법률 비용을 전액 책임지기로 확약한 인프라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경영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소액주주 소송의 법률 비용 중 무려 80%를 보험사가 대신 지급하거나 기간제 근로자의 부당해고 소송에 따른 화해(합의) 비용을 보험으로 해결한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의 임원배상책임보험 가입률은 2003년 31.6%에서 2023년 기준 70% 이상으로 크게 뛰어올랐다. 그러나 시장의 고속 성장세 뒤에는 대기업과 대형 상장사 위주로 편중돼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사는 가입 여부를 의무 공시하지만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소송 위험에 대한 인식 부족과 비용 부담으로 인해 가입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일각에서는 임원배상책임보험이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나 과도한 소송 남발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 가입 시 적정한 자기부담금을 설정하거나 경영 리스크에 따라 보험료를 정밀하게 차등화하면 경영진의 책임의식을 견고히 유지하면서 도덕적 해이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며 “중소·중견기업들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대중화를 이끌기 위해 금융당국 차원의 ‘표준약관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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