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고배율 레버리지 ETF 규제 강화…SEC 제도개편 착수
작년 12월부터 3배·5배 출시 사실상 차단
단일종목·고배율 ETF 별도 규율 검토
국내도 신규상장 중단·예탁금 3천만원 상향
정부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규제 강화 방안을 발표한 가운데 미국에서도 고배율 레버리지 ETF에 대한 규제가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3배·5배 등 고배율 레버리지 ETF 출시를 사실상 차단한 데 이어 단일종목과 고배율 상품을 중심으로 ETF 제도 전반을 손질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20일 금융감독원 뉴욕사무소 등에 따르면 SEC는 지난달 30일 단일종목 전략과 고배율 레버리지 등 이른바 ‘신종 ETF’ 성장에 대응해 현행 ETF 규제 체계를 개편하기 위한 공개 의견수렴 절차에 착수했다. 신종 ETF가 일반 ETF와 다른 위험을 안고 있는 만큼 현행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SEC는 신종 ETF의 시장가격과 순자산가치(NAV) 간 차이를 줄이는 차익거래 구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상품이 투자자 보호와 시장안정성을 저해할 가능성은 없는지 등에 대해 의견을 받고 있다. 거래소의 시장감시 기능이 고위험 상품에 대해서도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점검 대상이다.
◆일반 ETF보다 엄격한 심사 검토 = ETF의 발행과 환매, 거래구조를 규율하는 ‘Rule 6c-11’을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특정 전략이나 자산군 투자 제한, 분산투자 강화, 발행인 또는 종목별 집중도 한도를 두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단일종목이나 고배율 상품처럼 위험이 큰 ETF를 Rule 6c-11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일반 ETF보다 엄격한 개별 심사를 받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복잡한 상품에 대한 SEC의 검토기간을 늘릴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견도 구하고 있다. 현행 ETF 심사기간은 통상 60~75일이지만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처럼 구조가 복잡하고 시장 영향이 큰 상품을 검토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에게 상품의 장기 손실 위험을 보다 직접적으로 알리기 위한 조치 역시 논의 대상이다.
SEC 투자자 자문위원회는 지난 2023년 단일종목 ETF를 판매할 때 기초자산과 ETF의 장기 성과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그래프로 제시하도록 권고했다. 하루 수익률의 배수를 추종하는 상품은 장기간 보유하면 기초자산의 누적 수익률과 큰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의 투자 목적이나 위험 감수 능력에 맞지 않는 단일종목 ETF를 권유한 판매회사에 대해서는 수탁자 의무 위반 등을 적용해 강하게 제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SEC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운용사들이 신청한 3배·5배 레버리지 ETF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며 관련 상품 심사를 중단했다.
디렉시온과 프로셰어즈 등 미국 ETF 운용사들은 지난해 하반기 개별 주식과 원자재, 가상자산 대상 3배 또는 5배 레버리지 ETF 출시계획을 제출했다. 그러나 SEC는 지난해 12월 9건의 신청서에 대해 검토 중단을 통보했다. 일부 운용사가 상품 구조를 변경해 다시 신청했지만 SEC는 같은 입장을 유지했다. 올해 3월에는 고배율 레버리지 ETF 발행사들에 관련 상품 출시 시도를 중단하라고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SEC가 향후 유사 상품 출시를 사실상 차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3배 레버리지 상품, 하루 급등락에 ‘전액 손실’ 위험 = SEC가 고배율 상품에 제동을 건 이유는 현행 파생상품 위험관리 규정을 구조적으로 준수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미국의 파생상품 관련 규정인 ‘Rule 18f-4’는 ETF가 파생상품을 일정 규모 이상 활용할 경우 위험관리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위험관리자를 지정하도록 하고 있다. 위험가치(VaR)를 주기적으로 산출해 한도를 지키고 스트레스 테스트와 이사회 보고 등의 의무도 이행해야 한다.
특히 파생상품을 사용하는 ETF의 위험가치가 기준 포트폴리오 위험가치의 20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기준 포트폴리오는 해당 ETF가 투자하는 시장이나 자산군을 반영하는 비레버리지 지수 또는 실제 증권 포트폴리오를 의미한다.
이 같은 규정 때문에 개별 주식 레버리지 ETF는 사실상 2배 수준으로 제한된다. 기초자산 수익률의 3배 이상을 추종하는 상품은 기준 포트폴리오보다 구조적으로 훨씬 높은 위험을 부담하기 때문에 위험가치 200% 한도를 넘을 가능성이 크다.
SEC는 일부 운용사가 실제 기초자산과 다른 기준 포트폴리오를 활용해 위험가치를 산정한 점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품의 실제 변동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벤치마크를 이용해 위험을 낮게 산출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우회하려 했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전문가들이 3배 레버리지 펀드를 수학적으로 파산하기 쉬운 구조라고 평가한 점을 지적했다. 최근 5년 자료 분석 결과 기초 자산이 하루 33% 이상 변동해 3배 레버리지 상품가격을 ‘0’으로 만들 수 있는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미국 반도체 기업 AMD 주가가 하루 만에 38% 급등하자 AMD 주가 하락분의 3배를 추종하는 ‘그래나이트셰어즈 3배 숏 AMD’ 상품이 강제 청산됐다. 3배 인버스 상품은 기초자산이 하루 33% 이상 오르면 이론적으로 자산가치가 모두 사라질 위험이 있다.
◆‘삼전닉스 레버리지 상품’ 추가 규제도 = 국내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거래가 급증해 증시 변동성이 커지자 금융당국이 지난 16일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국내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지난 5월 27일 출시된 이후 두 달도 되지 않아 시가총액이 4조4000억원에서 11조9000억원으로 늘었다. 하루 거래대금은 13조원까지 증가해 전체 ETF 거래대금의 38.2%를 차지했다.
정부는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인버스와 커버드콜을 포함한 단일종목 상품의 신규 상장을 잠정 중단했다. 기존 상장 상품에 대한 운용사와 증권사의 광고와 이벤트성 마케팅도 금지했다.
유동성 공급자(LP)인 증권사의 국내 ETF 종가 괴리율 관리 기준은 3%에서 2%로 강화하고 고의나 중과실로 괴리율 관리 의무를 위반한 증권사는 신규 종목의 LP 업무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하는 개인의 기본예탁금은 현행 1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상향된다. 주식과 채권 등 대용증권은 예탁금 산정에서 제외돼 현금 3000만원을 유지해야 추가 매수가 가능하다. 국내 상장 상품뿐 아니라 해외에 상장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기본예탁금 상향은 내달 5일, 대용증권 미인정은 내달 19일 시행될 예정이다.
11월부터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매매단위가 현행 1좌에서 20좌로 확대된다. 사전교육 시간은 기존 2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어난다.
미국이 3배 이상 고배율 상품의 출시 자체와 ETF 규제 체계 개편에 초점을 맞췄다면 국내는 현재 거래 중인 2배 단일종목 상품의 수요와 시장 영향을 줄이는 데 무게를 뒀다.
금융당국은 “시장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시장이 안정되지 않을 경우 전문가·투자자 등과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추가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투자자 진입요건을 추가 상향하거나 괴리율 관리체계를 종가 중심에서 상시관리 체계로 전환하고 괴리율 확대가 지속될 경우 상장폐지 요건에 반영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