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수술 교육교부금…‘세수연동’ 깨고 교육대전환 이끌까
내년 국세수입 500조 돌파·교부금 100조 육박 전망 … ‘방만 교육재정’ 우려 커져
기획처 “학령인구·물가 반영하되 장기추세선 보장” … 교육계 “특수성 외면” 반발
대한민국 교육재정의 근간을 흔드는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정부가 1972년 도입 이후 50년 넘게 유지돼 온 현행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부금) 제도의 전면개편을 공식화하면서부터다. 이미 재정 당국과 교육계 간 전례 없는 대격돌이 현실화하고 있다.
발단은 반도체 호황과 심각한 인구구조의 불균형이다. 반도체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로 국가 세수 규모는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정작 이 돈을 쓸 유치원과 초·중·고교 학령인구는 유례없는 속도로 급감하고 있다. ‘늘어나는 세수’와 ‘줄어드는 아이들’ 사이의 괴리가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교육재정 개편 당위성에 힘이 실리는 추세다. 정부는 오는 8월 말 내년도 예산안 발표 시점에 맞춰 개편안의 최종 윤곽을 드러낸다는 방침이다.
◆“칸막이 재정 한계 달했다” = 20일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내년도 우리나라 국세수입은 500조원을 돌파할 것이 유력하다. 최근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장기 추세선을 상회하는 대규모 세수 증가분이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반도체 초호황에 따른 법인세와 소득세 호조가 전체 세수 규모를 견인하는 모양새다.
문제는 현행 법령상 내국세의 일정 비율(20.79%)과 교육세 일부를 시도교육청에 의무 배정하도록 규정된 교부금 산식이다. 세수가 늘어나는 만큼 교육교부금도 자동으로 불어나는 구조다. 올해 추가경정예산(추경) 기준 국세 대비 내국세 비율(약 88%)을 내년도 전망치에 단순 대입하더라도 내년도 교부금 재원은 산술적으로만 91조5000억원을 넘어선다. 지난해 교부금은 76조4000억원(올해 추경까지 합산) 이었다. 여기에 교육세 증가분까지 더해지면 내년도 교육교부금 총액은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교부금의 혜택을 받는 학령인구는 매년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제도 도입 당시인 1972년의 연간 출생아 수는 100만명에 육박했으나 지난해 출생아 수는 25만명 선으로 4분의 1 수준까지 줄었다.
이처럼 재원은 넘쳐나는데 쓸 곳은 줄어들다 보니 지방교육청들은 돈을 다 쓰지 못해 기금으로 쌓아두거나 태블릿PC 무상 배포, 현금성 입학축하금 등 선심성·방만 예산 집행으로 비판을 자초했다. 국가재정 전체가 건전성 기조를 유지하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에서 유독 초·중등 교육 예산에만 ‘칸막이’를 쳐두고 예산을 독점하는 구조가 국가재정의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기획처 “성장률·물가 반영해 81조 보장” = 재정당국인 기획예산처는 이번 기회에 50년 묵은 ‘내국세 연동구조’를 완전히 깨뜨리겠다는 구상이다. 내국세 비율에 맞춰 기계적으로 예산을 배정하는 대신, 실제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학령인구 추이를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합리적 방식으로 제도를 바꾸자는 취지다.
다만 기획처는 교육계 반발을 의식해 교육 예산의 절대적 규모를 급격히 축소하지 않겠다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박홍근 장관은 청와대 하반기 업무보고를 통해 “향후 장기 추세선에 근접하는 정도로 교부금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새로운 원칙을 내놨다. 지난 20년간 교부금이 연평균 6.5%씩 성장해 온 추세를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이 기준을 올해 추경 기준 교부금(76조4000억원)에 적용하면 내년도 교부금은 약 81조5000억원 수준에서 묶이게 된다. 늘어나긴 해도 현행 연동제를 유지할 때보다 약 20조원은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
기획처는 장기 추세선을 적용하더라도 학생 인구 감소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학생 1인당 교부금은 오히려 늘어난다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 국가데이터처의 인구 중위추계 기준 만 3세부터 17세까지의 학령인구를 적용하면 학생 1인당 교부금은 올해 1342만원에서 내년 1489만원으로 10.9%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재정 산식을 바꾸더라도 학생 1명에게 돌아가는 교육 혜택은 더 두터워진다는 논리다.
반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등 교육계는 여전히 연동제 유지를 고수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단순히 전체 학생 수가 줄어든다고 해서 교육 비용이 선형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교육계는 수도권 신도시 개발에 따른 학교 신설 수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과밀학급 해소나 노후 학교 건물 리모델링 등 여전히 돈 쓸 곳이 많다고 항변한다.
◆대학가 “고등교육 투자는 OECD 최하위권” = 교부금 개편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최근 가장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곳은 대학가(고등교육계)다. 기획예산처가 교부금 개편을 통해 절감된 재원을 고등교육(대학)과 평생교육, 영유아 교육 등 그동안 재정지원이 부족했던 분야에 균형적으로 재투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학생 1인당 초등 및 중등 공교육비는 OECD 평균 대비 각각 155.1%, 179.2%에 달해 압도적인 상위권이다. 반면 학생 1인당 고등교육 공교육비는 OECD 평균의 68.5%다.
OECD 회원국 중 초·중등 교육보다 고등교육 투자 비중이 낮은 나라는 한국과 그리스 단 두 곳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의 고등교육 재정 지출 비중 역시 0.6%로 OECD 평균(0.9%)을 크게 밑돈다.
대학들은 지난 10여 년간 이어진 등록금 동결로 자체적인 재정여력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호소한다. 반면 AI 대전환 시대를 맞아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하고 전문 인력을 확보하며 첨단 융합학과를 신설해야 하는 등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투자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는 최근 성명을 통해 “이번 교부금 개편이 국가 교육재정의 균형 있는 운영과 미래 인재 양성체계의 대전환을 이끄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안정적인 공공재원 확보를 위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을 촉구했다.
◆“미래교육 재설계로 나아가야” = 정부 안팎에서는 이번 논의가 초·중등 교육계와 고등 교육계 간의 감정적인 예산 다툼, ‘제로섬 게임’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초·중·고교 교육과 대학 교육은 단절된 영역이 아니라 국가 인재 양성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로 연결돼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이번 교부금 개편 논의의 초점이 단순히 “초·중등 예산을 얼마나 깎을 것인가”를 넘어서서 “정체된 국가교육 재정체계를 AI 시대와 인구 소멸이라는 미래 환경에 맞게 어떻게 합리적으로 재배치할 것인가”로 전환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당초 정부는 지난 13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구체적인 개편 윤곽을 공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교육계와 이견이 워낙 커 발표를 한 차례 미뤘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50년 넘게 공고하게 유지돼 온 제도를 한순간에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라며 “예산안이 최종 편성되는 8월 말까지 교육 당국과 교육계 전문가들과의 끊임없는 소통과 조율을 거쳐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최종 개편안을 도출해내겠다”고 밝혔다. 결국 8월 말 발표될 정부 예산안이 대한민국 미래 교육의 향방을 가를 중대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