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52 개도 사람길
천제단에서 굽어보는 남해바다 섬에 설레다
여수의 섬 개도 화산마을에는 마녀목이 있다. 빗자루 타고 다니는 마녀가 아니다. 말(馬과) 소녀(女의)의 우정이 깃든 나무라 해서 마녀목(馬女木)이다. 400년 느티나무….
조선시대 많은 섬들처럼 개도는 국영 말목장이었다. 개도 목장의 사육사 이돌수에게는 무남독녀 외딸 복녀가 있었다. 어린 복녀는 아버지를 도와 말들을 관리했다. 말들 중에서 검은 점박이 백마 한 마리가 유독 복녀를 잘 따랐다.
어느 날 점박이 백마가 바위에 부딪쳐 앞다리를 다쳤다. 백마는 절룩이며 풀도 먹지 않았다. 이돌수는 감목관에게 보고하고 폐마하려 했다. 폐마란 말을 죽인다는 뜻이다.
복녀는 자신이 치료해 살려보겠다고 애원했다. 문책을 당할 것이 염려스러웠지만 딸의 간청을 뿌리칠 수 없어 열흘간 말미를 주기로 했다. 복녀는 왕대나무의 속을 파 부목으로 만들어 백마의 다리를 고정시켜주고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백마는 3일이 지나자 풀을 먹기 시작하며 눈물을 흘렸다. 복녀는 백마 곁에서 자면서 약이 되는 풀을 먹였다. 일주일째 부목을 풀었고 열흘이 되자 백마의 부상은 씻은 듯이 나았다. 백마는 건강해 지자 복녀는 백마의 목을 안고 울었다. 백마도 기뻐서 함께 울었다. 그 후 백마는 더욱 복녀를 따랐고 둘은 우정이 깊어졌다.
그러나 한 달 후 장군이 탈 말을 고르려 감목관이 섬으로 왔다. 복녀의 점박이 백마와 진갈색 말이 뽑혔다. 복녀가 울며 간청했지만 감목관은 매정하게 백마를 몰고 가버렸다. 복녀는 식음을 전폐하고 울다 병이 났다. 병은 나날이 깊어져 갔다.
그렇게 다섯 달이 지났다. 복녀는 피골이 상접했다. 어느 날 복녀는 무엇에 이끌린 듯 목장의 마굿간으로 갔다. 거기 점박이 백마가 안장을 찬 채 상처투성이로 서 있었다. 복녀 부녀는 백마를 끌어안고 울었다. 하지만 아비 이돌수가 말 먹일 풀을 뜯으러 갔다 돌아 와보니 복녀와 백마 둘 다 죽어 있었다.
백마는 진중을 탈출한 뒤 여러 달 동안 산 넘고 강을 건너고 다시 바다를 헤엄쳐 개도까지 왔다. 그 사이 상처가 나고 피로가 쌓여 목장에 돌아왔을 때는 죽기 일보직전이었다. 쇠약해진 복녀와 백마는 기쁨에 겨워 떨어질 줄 모르다가 부둥켜안고 함께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던 것이다.
이돌수는 백마와 딸을 나란히 묻어 준 뒤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 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녀목이라 불렀다. 비극적이지만 심연보다 깊은 우정의 나무다.
개도에는 마녀목 전설 외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개도의 천제봉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이 남아 있다. 반역을 꿈꾸던 애기 장수 설화도 전한다. 애기 장수가 태어나면 3족이 멸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날개를 달고 태어난 아들을 제 손으로 죽여야 했던 부모의 슬픈 이야기다.
개도에는 백섬백길 16코스 개도 사람길이 있다. 7.4㎞의 사람길은 3개의 코스로 구성돼 있는데 배성금 절벽이 있는 2코스가 가장 인기가 많다. 천길 낭떠러지를 눈앞에서 조망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은 압도적이다.
놀라운 것은 낭떠러지가 바로 앞인데도 마음은 더없이 평온해 진다는 점이다. 직접 가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절벽을 지나 산길을 오르면 천제단이다. 천제단에서 굽어보는 남해 바다와 섬들의 풍경은 선경을 방불케 한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