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 사람│김동은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MBA) 객원교수
현 경제위기는 고질병, 쓴약 삼킬 때
한국, 달콤한 길이냐 힘들고 바른 길이냐 '기로'
경제학자는 아니다. 본인 표현에 따르면 비전문가다. 그런데 어떤 경제학자보다도 자신있게 말한다. 지금의 위기는 스쳐 지나가는 감기가 아니라 수십년 묵은 고질병이라고. 사람으로 친다면 비타민 먹고 조금 쉬면 될 일이 아니라 수년간 몸에 익은 생활습관 모두를 낱낱이 돌아봐야 할 때라고. 우리 경제가, 아니 세계 경제 전체가 말이다. 김동은(54)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 객원교수 이야기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같은 세계적인 오피니언 리더가 위기의 종언을 고하고 있는 이 때 일개(?) 객원교수가 하는 말치고는 당차다.
그런데 그의 고질병론을 인정한 이가 바로 조 순 전 경제부총리다. 조 전 부총리가 누군가. 한국 현대 경제학의 한 맥을 세운 이로 평가받는 경제학계의 멘토다. 김 교수가 얼마 전 펴낸 '한국경제의 디스토피아:깡통 걷어차기' 뒷표지에는 "김 교수와 바른 경제에 관해 여러 차례 세미나를 열어 의견을 교환할 때마다 해박한 지식과 깊은 연구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는 조 전 부총리의 추천사가 선명하다. 조 전 부총리가 인정한 그의 위기론을 들어봤다.
쉬운 선택을 너무 많이 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파이낸스센터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현 위기를 고질병이라고 보는 이유를 묻자 강의 이야기부터 풀어놨다.
"MBA에 공부하러 온 학생들에게 요즘 사는 게 어떤지 물어봐요. 행복한지도 묻고. MBA 공부하러 올 정도면 다들 엘리트들인데 한목소리로 힘들다고 해요. 해가 갈 때마다 그 정도가 심해지죠. 살벌해지고 치열해졌다는 느낌이에요. 이게 우리가 노력을 덜한 탓일까요? 그건 아니라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그 이유를 봐야 한다는 거죠."
그가 보기에 세계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정책당국자들이 쉽고 달콤한 길을 택해온 탓이 크다. 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71년 닉슨 미 대통령은 금본위제를 폐지했다. 금본위제를 고수하려면 달러를 찍어낼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금을 확보해야 하는데 베트남 전쟁을 치르느라 많은 비용을 치른 미국으로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미국은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무제한으로 달러를 찍어내는 달콤한 길로 한 발을 뗐다. 이후 이어진 대대적인 규제 완화, 기준금리 인하 등은 거품 경제의 시작을 알렸다.
거품 덕택에 마치 경제가 잘 나가는 듯 착시효과가 있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세계 경제의 권력이 미·유럽 등 선진국에서 아시아권으로 넘어가면서 선진국의 무역적자는 늘어만 갔다. 수출 부진과 수입 급증에 따른 무역적자와 복지지출에 따른 재정적자, 즉 쌍둥이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국들은 또한번 쉬운 길을 택한다. 산업 경쟁력 강화, 기술개발, 재정적자폭 축소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이 아니라 빚을 통한 내수부양, 금융산업 성장, 통화량 조절 등의 대책만 내놨을 뿐이었다. 김 교수는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40년간 계속된 '쉬운 선택'이 누적되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진단했다.
비단 선진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경제성장이 더뎌지는 상황에서 경기 부양 차원에서 금리를 내리고 양적완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여전히 낙수효과를 믿으며 대기업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세계적으로 기업 이익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사상 최고치를 달리고 가계소득과 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진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도 달콤한 길이냐, 어렵고 힘들지만 올바른 길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정상적 자본주의로 가야
김 교수는 대안으로 '백투밸런스(back to balance)', 즉 균형을 이야기했다.
"지금 우리나라와 세계가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정상적 자본주의라고 볼 수 없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변질된 자본주의 쪽에 쏠려 있죠. 진자에 비유한다면 너무 오른쪽으로 쏠려있던 자본주의를 가운데로 끌고 와서 정상적인 자본주의로 돌려놔야 합니다."
그 길이 쉽지는 않다. 지금까지 정책당국자나 사람들이 달콤하고 쉬운 길을 택해온 이유는 고통을 감수하기 싫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무슨 일을 당할지는 몰라도 당장은 편하게 살겠다는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달콤함에 길든 이들이 쓴약을 마실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김 교수는 80년대 현대중공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할 때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당시 한국 사람들의 엄청난 노동량에도 놀랐지만 그들이 열심히 일하는 배경에 '희생정신'이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그때는 내가 희생하면 내 나라와 자식들이 잘될 거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제대로 된 보답을 받지 못했다면서 나를 위해서만 살겠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나를 위해서 산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세계 1위 자살률, 이혼율 국가죠. 무조건 희생하고 고통을 감수하라는 건 아니지만 공동체적인 공통 목적을 향해 간다는 마음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당국자들이나 대중들이나요."
<△1960년 출생 △미국 플로리다공과대 졸업, 컬럼비아대 MBA 석사 △현대중공업 엔지니어, 모건스탠리 아태지역 외환 담당, 보험중개회사 마시앤드맥레넌 한국 지사장, ACE 손해보험 한국 지사장 △(현)마시 코리아(MARSH KOREA) 부사장, 연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MBA)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