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도서관 역사를 찾아서│ ⑥ 도서관 분야, 남은 과제

새로운 도서관운동 모색해야 … 사서 '조직적 활동' 필요

2022-03-24 11:23:26 게재

2000년대 '기적의 도서관' 사회적 인식 변화 이끌어내 … 교육 강화해 개인과 사회 변화 주도할 사서 키워야

정선애 위원(이하 직함 생략): 지난 100년 간 도서관의 역사를 얘기해 보자. 엄대섭 선생은 1953년 국내 최초로 읍 단위에 경주읍립도서관이 설립하고 무보수 촉탁직 관장으로 운영했다.

사회 지도적 인사들이 '관우회'라는 모임을 조직하고 도서관을 지지했다. 처음에는 읍사무소 회의실에 도서관을 설치했다. 경주가 시로 승격되고 도서관 건물 건립을 건의했지만 무산되자 도청에 찾아가 설득해 1959년에 경주시립도서관을 건립, 이전했다. 경주가 신라의 도시라는 특성을 살려 '향토자료실'을 운영하고 어린이들에게 문화재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교육을 했다. 지금 봐도 상당히 혁신적 운영이다.



■ 역사 속 도서관운동을 돌아보며

이용훈 회장(이하 직함 생략): 엄대섭 선생의 운동은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 '지금은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든다.

해방 이후 정말 열심히 도서관운동을 해 왔고 그 결과로 지금은 외형적으로 도서관은 성장했지만 도서관운동 측면에서는 성장했는지 잘 모르겠다.

최진욱 사서(이하 직함 생략): 도서관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는 도서관 관계자들에게 1960년대 마을문고 운동, 1970년대 양서협동조합에 대해 얘기하면 처음 듣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1960년대의 고민과 지금의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다. 도서관운동이 연결이 안 되는 측면이 있다.

송재술 관장(이하 직함 생략): 2000년대 이후 도서관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사서의 수도 크게 늘었다. 과거엔 책을 살 예산이 없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예산이 없어서 책을 못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금의 양적 성장은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도서관운동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변화한 상황에 맞는 새로운 도서관운동을 모색해야 한다.

■ 2000년대 이후, 도서관은 달라졌다

송승섭 교수(이하 직함 생략): 자연스럽게 2000년대 이후의 도서관에 대해 얘기하면 좋겠다. 우선, 도서관의 성장에 대해 얘기하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얘기해 보자. 가장 큰 변화는 공공도서관이 늘어나고 도서관 건축이 굉장히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2003년 각 지역에 어린이도서관을 지어주는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가 큰 역할을 했다.

제도적으로는 2007년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가 발족하고 전국 도서관 운영평가를 하면서 도서관들이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기반이 됐다.

원로 문헌정보학자 이용남 전 한성대 총장은 문재인정부에서는 국립중앙도서관장, 국회도서관장에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전문직 관장이 취임한 점, 주류 문헌정보학이 아닌 '진보 도서관학 운동'이라는 책의 출간, 한국도서관사연구회 창립 등을 의미 있는 변화로 꼽았다.

이용훈: 2000~2010년에는 도서관이 성장할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제도적 기반이 만들어졌다. 또 기적의 도서관은 사회 여러 분야가 함께 공동으로 도서관에 관심을 갖고 헤쳐 나갔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도서관은 공부방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목적에서 어린이도서관을 건립했다. 이용자들이 어린이도서관을 경험하면서 성장하면 도서관의 변화를 요구하고 만들어낼 것이라고 봤다.

방송이라는 강력한 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최진욱: 당시 어린이도서관이 만들어지면서 시민들이 도서관을 개인 공부를 하는 독서실이 아니고 자료를 이용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송승섭: 정기용 건축가가 기적의 도서관에 참여해 도서관 건축을 변화시킨 것도 중요하다. 이용자 친화적인, 다양한 공간들이 생겨났다.

과거의 도서관들은 그 기준이 '열람석을 얼마나 두느냐'였다. 열람석이 많아야 도서관장의 직급이 높아졌다. 오늘날의 건축은 빈 공간이 많아서 당시 기준으로 보면 사치스러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경제력이 갖춰지고 여유가 생긴 요즘엔 공간을 문화적 감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변화 중 하나다.

■ 도서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최진욱: 공공도서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은 아파트 분양 광고를 볼 때다. 주변 편의 시설과 환경을 소개하면서 공공도서관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알리고 있다.

이용훈: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경제력 등의 역량을 갖추면서 도서관은 사회와 함께 성장해왔다. 공공도서관은 사회가 공동으로 만들어 운영하는 도서관이기에 성장하는 절대적 조건들이 있다.

우선, 민주주의가 있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것이 '공공(public)'의 핵심이다. 다음으로 경제력이 중요하다. 도서관 운영에는 돈이 많이 든다. 또 GNP가 3만~4만달러는 돼야 도서관이 시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 전까지는 먹고 살기 바쁘지만 이제 경제적 여유가 있으니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송승섭: 도서관의 여러 역할 중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역할도 있다. 도서관 선진국 북유럽에서 가장 발전한 도서관 중 하나는 교도소도서관이다. 북유럽은 교도소도서관에 엄청난 비용을 투자한다. 왜 그럴까. 죄수들을 교화하는 공간으로 도서관을 활용하는 거다. 미국은 흉악범죄 재범률이 50%에 가까운 데 노르웨이의 경우 15% 내외에 불과하다. 도서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역할의 중요성을 드러낸 사례 중 하나다.

이용훈: '창조도시'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들이 얼마나 창의적 생각을 하고 창조적 활동을 통해 공동체의 경제적 발전을 이뤄나가는가에 대한 개념이다. 특정 도시에 도서관이 잘 돼 있다는 것은 민주적으로, 경제적으로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하고 격차도 줄일 수 있다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최근 도서관 마케팅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도서관이 이와 같은 사회적 역할을 하는 데 제대로 알리는 데에는 소홀했다. 사서들이 조직적 활동을 통해 도서관에 대해 알리는 활동을 할 필요가 있다.

■ 사서들은 '지적 자유'를 지켰나

송승섭: 도서관 분야 남은 과제에 대해 얘기해 보면, 대체로 최근엔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에 대해 '양적으로는 발전됐는데 질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양적 발전 중에서도 시설만 완성됐다.

특히, 도서관에는 사서가 굉장히 중요하다. 1970년 '도서관학의 사회학적 기반'을 펴낸 제시 세라는 사서 교육을 강조했다. 사서는 도서관을 물리적 건물보다는 사회적 지식체계로 보고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역량이 필요한데 여전히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최진욱: 최근 TV 광고를 보면 한 작은도서관 운영자가 시골에서 지역 주민들을 위해 도서관을 운영하는 모습이 나온다.

작은도서관 운영자는 공공도서관과는 달리, 사서 자격증을 갖고 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가 자격증은 없을지 몰라도 1970~1980년대 시민사회운동으로 시작된 양서협동조합, 주민도서실의 도서관 정신은 그와 같은 도서관 활동가들이 구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용훈: 공공도서관은 시민혁명, 시민운동에서 촉발됐다. 처음부터 있었던 것도, 운동에서 그친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3년 도서관법을 만들어 도서관을 제도화했다. 모두에게 공공의 서비스를 제공할 사회적 책무를 사서들이 부여받았다면 사서들이 역할을 잘 했어야 했는데 과연 그랬는지 물어볼 때다.

엄대섭 선생은 1960년대 마을문고 운동을 하면서 '과정'이라고 했다. 공공도서관이 많아지고 제대로 서비스를 하게 되기까지 과정 중에 하는 운동이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공공도서관이 제 역할을 못하자 비슷한 도서관운동은 계속됐다. 한때 대학에 생활도서관 운동이 있었다. 대학 도서관들이 사회 비판적 책을 안 빌려주니까 학생들이 스스로 책을 모았다. 제도권 내 도서관들이 정말 '지적 자유'를 지켰을까.

송승섭: 도서관을 사적 단체가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도서관계의 요구에 의해 도서관법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법을 만들고 나니 지원과 함께 통제가 따라왔다. 도서관이 제도에 편입되면서 관료화가 되고 도서관 정신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정선애: 교육과도 관련이 된다. 한국전쟁 이후 도서관이 몇 개 없었고 사서에 대한 교육이 없었다.

대학에서도 도서관 역사나 철학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송재술: 대학에서는 분류, 목록 등 기능적 측면을 주로 다루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진짜 정보서비스에 대해서는 거의 배우지 못했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에 공공도서관 현장 움직임이나 도서관운동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계는 지금도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최진욱: 그런데 학생들은 현장 도서관 얘기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공공도서관이나 작은도서관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얘기하면 학생들이 집중하는 것이 느껴진다.

송승섭: 사서 교육과정이 다른 국가에 비해 약한 측면이 있다. 미국은 학부 과정을 마친 학생들이 대학원 과정에서 문헌정보학을 선택해 공부한다.

또 교육 과정이 변화해야 하는데 전공심화 과정이 없다. 4년제 대학 학생들은 60학점 정도 이수하면 졸업하고 사서자격증을 받는다. 도서관 역사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갖고 반성적, 성찰적 역사를 배워야 하는데 전공에서 한국도서관사를 대부분 다루지 않는다.

■ '레드 콤플렉스' 영향도

이용훈: 한국전쟁 이후 분단 상황도 도서관이 처한 환경을 말할 때 중요하다. 지적 자유란, 도서관이 넓은 사상의 범주를 다루는 모든 책을 갖추고 다양한 이용자들이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시민들은 자신의 인식을 넓히고 타인을 이해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분단 이후 절반의 사상에 대해서는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상황이다.

예전에 도서관에 불온자료실이 있었다. 월북 작가 책 등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책들이 거기 꽂혀 있었고 제한해서 열람을 했다.

송승섭: 사실 '레드 콤플렉스'가 도서관에 많은 영향을 줬다. 1980년대 대학에 소위 운동권 서클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게 사회과학서적을 읽으려면 거기에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이적 표현물 문제는 계속 존재한다.

정선애: 국가보안법과 지적 자유는 사실, 배치되는 개념이다.

이용훈: 사서들이 이 문제를 인식하고 좀 더 고민했다면 도서관을 다르게 경영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사서라면 재량권을 어느 정도 발휘할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또 사서들이 국가보안법과 같은 사회적 현안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도서관 현안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다른 현안에도 관심을 갖고 우리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송승섭: 미국의 경우, 사서들이 주류에 반하는 여러 진보적 활동들을 많이 한다. 미국도서관협회 개인회원들은 한국도서관협회 개인회원에 비해 회비를 많이 내고 그만큼 목소리를 낸다. 미국도서관협회 회장 선거에서는 개인회원들만 투표권을 갖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도서관협회 선거에서 단체회원들이 투표권을 가지며 규모에 따라 투표권의 수를 더 부여한다. 그러다 보니 사서들이 스스로 주체적 운동성을 갖기가 쉽지 않다.

이용훈: 사서도 직장인인데 모든 것을 걸고 운동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2000년대 들어 꽤 활동이 자유로워졌고 사회운동의 폭이 넓어졌다. 사서들이 너무 우리 영역 안에만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

■ 공부 잘하는 학생이 사서가 된다?

최진욱: 요즘 문헌정보학과 대학생들은 사서직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한다. 가끔 '이렇게 공부만 한 학생들이 사서직 공무원이 되면 시민들에게 서비스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송승섭: 이 문제는 풀기가 쉽지 않다. 정규직 사서로 채용하는 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사서들에겐 사서직 공무원만큼 좋은 일자리가 없다.

최근 사서교사를 많이 뽑으면서 사서교사 지망생들도 늘고 있다. 그러니까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사서가 되는 거다. 문헌정보학을 하고 사서가 되려면 사람과 주변의 여러 다른 학문에 대한 관심이 많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용훈: '왜 문헌정보학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책 읽기를 좋아해서'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서는 책을 다루는 직업이라기보다는 사람에게 서비스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사서들이 사람 만나는 것을 안 좋아한다. 현장에서 사람과의 관계는 쉽지 않다.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중요하며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

최진욱: 이용자 대면 서비스를 힘겨워 하는 사서들을 종종 봤다.

이용훈: 요즘 수요자 관점, 시민의 관점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시민 관점에서는 도서관 서비스의 접점에 실력 있는 사서가 있는 게 제일 좋다.

그렇다면 고참 사서들이 시민들에게 대면 서비스를 하는 게 맞다. 경험이 쌓이면 앞으로 나서야 한다.

그런데 공공도서관의 경우 대부분 신참 사서들이 대면 서비스를 전담한다. 대학도서관의 경우 고참 사서들이 연구자들에게 서비스를 하지 않으면 그 조직은 살아남기 어렵다. 요즘은 시민들이 굉장히 똑똑하고 요구도 많다.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체계를 갖춰야 한다.

정선애: 그런데 시민들은 좋은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면서도 젊은 직원이 대면 서비스를 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경력이 있는 사서가 대면 서비스를 하면 '왜 나이 먹은 여자가 데스크에 있냐'는 민원이 들어오기도 한다.

이용훈: 사실, 도서관 서비스의 수준을 만드는 것은 절반이 이용자의 몫이다. 이용자의 수준과 서비스 수준은 맞물려 있다. 어느 한쪽만 성장할 수는 없고 함께 가야 한다.

■ MZ세대 사서들이 온다

송재술: 앞서 도서관운동이 단절됐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단절이라기보다는 환경이 변화했다는 데 주목해 본다. 1990년대 전국사서협회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자치구별로 사서가 1~2명, 시골 지역에 나홀로 사서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의 시에 100명이 넘는 사서가 있는 곳도 많다. 처음 서울의 자치구 공공도서관에 왔을 때 가까이 있는 다른 구와 교류를 확대할 생각이었다. 막상 우리 자치구 안에서 해결해야 할 일에 치이다 보니 타 자치구와 교류가 쉽지 않다.

정선애: 서울의 경우 각 지역 간 소통이 어려운 것은 구에서 도서관을 직접 운영하지 않고 민간에 위탁하는 환경도 영향을 준다. 민간 위탁 공공도서관은 구에서 지시하는 업무들이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위 도서관과 소통을 하는 노력까지 하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같은 지역 내에서도 여러 공공도서관들을 각각 다른 기관에 위탁해 서로 협력하기보다는 견제하고 경쟁하게 만든다.

이용훈: 사서들은 공공의 재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제일 중요한 건 '시민이나 이용자를 위해 이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니 이런 지원을 해 주세요'라는 자세다. 분명히 '무엇을 하겠다'라고 얘기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일한 사서들이 얼마나 될까.

송재술: 대의를 위한 운동은 줄었지만 노동자로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열악한 근무조건을 개선하고 권리를 찾기 위한 노동조합 활동도 활발히 나타나고 있다.

MZ세대의 경우 '공공도서관 휴일 개방'을 문제 삼기도 한다. 예전에는 공공도서관이 일요일에 문을 열고 서비스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서도 있다.

개인의 삶과 일에 대한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MZ세대 사서들과 어떻게 앞으로의 도서관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도 중요한 지점이다.

["우리나라 도서관 역사를 찾아서" 연재기사]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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