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 우수 대부업체' 자금공급 확대 필요 … 잔액 500억원뿐

2023-11-10 11:02:52 게재

대부업권 조달금리 낮추면 저신용자 신용대출 여력 커져

제도 시행 2년 지났지만 은행들 신규 공급 사실상 중단

은행 '상생금융' 방안에 포함될까 … 당국 "여러 대안 검토"

9일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감독원을 방문해 불법사금융을 강하게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불법사금융에 대해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짓밟고, 인권을 말살하고, 가정과 사회를 무너뜨리는 아주 악랄한 암적 존재"라며 "강력히 대응해 주시기를 당부한다"고 관련부처에 지시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불법사금융 근절을 강조했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취약계층이 제도권 금융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저신용자들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대부업체들의 신용공급 확대 없이 서민들의 불법사금융 이동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는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은 불법사금융이라도 이용하지 않을 경우 당장 생계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2021년 법정 최고금리를 연 24%에서 20%로 인하한 이후 대부업체의 저신용자 자금 공급이 위축될 것에 대비해 우수 대부업체들을 대상으로 은행 차입을 허용하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10일 금융당국과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우수 대부업체들의 은행 차입 잔액은 지난달말 기준 500억원에 그쳤다. 제도 시행 후 2200억원 까지 늘었던 규모가 급격히 감소한 것이다. 은행 차입금은 12·18개월 만기에 분할상환하는 구조로 변동금리(3개월)가 적용된다.

제도 시행 이후 은행들로부터 조달한 차입금의 상환이 꾸준히 이뤄진 반면 신규 대출이 일어나지 않으면서 잔액은 계속 줄고 있다. 6월말 1447억원이던 잔액은 러시앤캐시(아프로파이낸셜대부)의 폐업으로 더 급격히 감소했다.

이복현 금감원장과 입장하는 윤석열 대통령 |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불법사금융 민생현장 간담회에 이복현 금감원장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우수 대부업체에 대한 은행권 자금 공급 계획을 발표할 당시 금융당국은 최고금리 추가 인하(24→20%, 2021년7월)시, 현재 비용 구조하에서는 저신용자 대상 대출 감소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 대부업 신용대출 이용자 약 98만명(8조원) 중 약 31만1000명(2조원)이 탈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같은 우려는 2년이 지난 지금 현실화됐지만 이를 막기 위한 정부 대책은 점차 실효성이 사라지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서민금융 우수 대부업체 제도는 대부업권 조달금리를 낮춤으로써 저신용층의 신용공급이 이뤄지도록 하자는 취지인데, 취지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권이 준비 중인 상생금융 방안에 대부업체 대한 자금공급 확대 방안이 포함될지도 관심이다. 은행들이 올해 최대 규모의 이자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윤 대통령은 '은행 종노릇'이라는 발언을 통해 고통받는 서민들을 위한 은행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은행들이 여러 노력을 해 온 것은 알지만 과연 반도체나 자동차만큼 다양한 혁신을 통해 60조원의 이자수익을 거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질타했다.

은행권에서 상생금융 방안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은행은 이자 캐시백, 통신비 지원 등의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일회성·시혜성 정책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대부업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직접 저신용자들에게 대출해주기 어려운 구조 하에서 대부업체를 통한 간접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상생금융을 위한 중요하다"며 "시혜성 정책이 아닌 대부시장이 살아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서 취약계층의 불법사금융 이동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집계하는 은행의 서민금융지원 목표와 이행실적을 산정할 때 대부업체에 대한 간접 융자 등을 포함시켜달라는 것도 대부업권의 요구다.

한편 윤 대통령은 "서민과 불법사금융과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서민생계금융을 확대하고 개인파산 및 신용회복 절차를 정비할 것"이라며 금감원·국조실·법무부 등 정책당국에 지시했다.

그는 "팬카페나 게임 커뮤니티에서 대리 입금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10만원의 소액을 빌려주고 수고비·지각비라는 갖은 명목으로 연 5000% 이상의 높은 이자를 요구하며 협박, 폭행, 이런 불법을 일삼고 있다"며 "옷가게를 운영하던 30대 여성은 지인의 연락처를 담보로 100만원을 빌렸다가 연 5200%의 살인적 금리를 요구받고 성 착취를 당한 사건도 있었다"며 불법사금융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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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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