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은 모르는 손바닥 위 디지털 신세계

아이들은 왜 모바일 게임에 빠져들까?

2015-06-02 23:26:32 게재

집, 학교, 학원. 강남 청소년들의 하루 일과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그 속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짜릿한 또 하나의 세상이 존재한다. 엄마들은 모르는 손바닥 위의 디지털 신세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는 PC방보다 24시간 열려 있는 스마트 폰 세상의 유혹은 실로 위협적이다. 모바일 게임에 빠져드는 아이들, 그 이유는 뭘까. 학생과 학부모의 사례를 소개하고 그에 따른 전문가 조언을 들어봤다.


 

도움말 위주원 상담사(강남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

<청소년들의 말말말>

“저는 학원을 다섯 군데나 다니고 있어요. 자유학기제라 학교에서 시험을 보지 않아 지금 풀어지면 나중에 성적이 떨어진다고 엄마가 학원을 더 늘리셨거든요. 솔직히 좀 힘들어요. 엄마와 말도 안 통하고. 그나마 스마트 폰이 있어서 위안이 되죠. PC 게임은 컴퓨터로 접속하니까 엄마 눈치가 보이는데 스마트 폰 게임은 아무 때나 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편해요. 학원 숙제 할 때 문제집 아래에 감춰두고 소리를 묵음으로 하면 게임하는 줄도 모르시니까.”

-김○○(중1·강남구 역삼동)

 
“PC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다가 기분이 좀 언짢은 일이 있었어요. 그때부터 친구들과 같이 하기보다는 주로 혼자 하는 게임을 더 즐기게 됐죠. 시험 기간에는 엄마가 스마트 폰을 가져가시기 때문에 PMP나 MP4로 게임을 해요. 휴대용 공유기로 접속하면 되니까. 사실 저희 엄마는 기계에 대해 잘 모르시기 때문에 오히려 저는 여러 모로 편하죠. 밤에 이불 속에 들어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게임하는 시간이 제일 행복해요.” 
-문○○(중3·강남구 대치동)

 
“고등학생이 되니까 공부 스트레스가 많아요. 마땅히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통로도 없고 스마트 폰은 늘 손에 들고 다니니까 자연스럽게 게임을 하게 됐죠. 학원 스케줄이 빡빡하다보니 PC방을 갈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는데다, 요즘은 롤처럼 스마트 폰 게임도 흥미진진한 게 많아서 제법 할 만 합니다. 어른들은 자꾸 게임중독을 걱정하는데 저희는 중독이 아니에요. 그저 잠시 머리를 식힐 뿐이죠. 하루 종일 공부만 할 순 없잖아요. 기계도 아닌데.”  
-이○○(고1·강남구 삼성동)


“초등학교 때 정말 가까웠던 친구와 절교하고 난 뒤 친구를 사귀는 게 두려워졌어요. 그러다보니 보이지 않게 ‘은따’가 된 기분이 들었죠. 우연히 스마트 폰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클로버와 보석을 주고받으며 친구가 많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한 게임, 두 게임 점점 게임하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그래도 저와 함께 하는 친구가 있기 때문에 전 외롭지 않아요.”
-이○○(중1·서초구 방배동)

 
“쉴 때는 딱히 할 게 없어요. 애들과 농구하려고 전화를 하면 다들 학원 때문에 시간 맞추기가 어렵고, 엄마는 쉬는 시간에 책을 보라고 책이 얼마나 재밌는 줄 아냐고 말씀하시는데 솔직히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말이에요. 누가 쉴 때 책을 봐요. 게임을 하지. 몇 번 스마트 폰 게임하다 걸려서 엄마에게 폰을 뺏긴 적도 있지만 애들이 공 기계를 빌려줘서 그걸로 게임을 해요. 와이파이만 되면 스마트 폰이 없어도 게임하는데 전혀 문제는 없으니까.” 
-정○○(중2·서초구 반포동)


<엄마들의 말말말>

“얼마 전에 롤 게임으로 아이와 전쟁을 치렀어요. 정말 징그럽게 싸웠죠. 밖에서 PC방을 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일단 집에서는 PC게임을 안 하고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애가 너무 잠잠하니까 그것도 이상하더라고요. 친구 엄마가 스마트 폰 게임을 하는지 지켜보라고 해서 슬쩍 아이 방 문을 열면 책상 위에 스마트 폰은 있는데 공부는 하고 있는 것 같고…. 공부에 방해된다고 나가라고 하니까 조용히 문 닫고 나오는 수밖에요.” 
-박○○(중2 학부모·강남구 개포동)


“중2 때 아이에게 최신 스마트 폰을 사준 뒤부터 성적이 자꾸 떨어졌어요. 알아서 하겠거니 생각했는데 학년이 올라가도 역시나 스마트 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더군요. 하루는 새벽에 잠이 깨서 물을 마시러 나왔는데 아이 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방문을 열어보니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스마트 폰 게임을 하고 있었죠.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더군요. 곧바로 스마트 폰을 압수하고 게임 금지령을 내렸죠.”
-유○○(중3 학부모·강남구 일원동)


“중학교 때까지 공부도 곧잘 했던 아이가 고1 때부터 스마트 폰 게임에 빠지더니 성적이 뚝 떨어졌어요. 요즘은 화장실 갈 때나 밥을 먹을 때에도 스마트 폰 게임을 해요. 아이 말로는 공부할 땐 공부하고 그 외에 시간에만 하는 거라는데 도대체 그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죠. 이번에 중간고사 성적도 신통치 않아 이참에 스마트 폰을 없애고 수능 폰으로 바꿔줬어요. 스마트 폰 게임을 못하게 됐으니 성적이 오르길 기대해봐야죠.”
-신○○(고2 학부모·서초구 잠원동)
 

게임에 빠지는 원인은 따로 있다? 
이렇듯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가 게임을 하기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거나 갈등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이 게임에 빠지게 되는 원인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위의 사례처럼 인간관계의 부재로 인한 여러 갈등 원인이 청소년들을 모바일 게임에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는 것.
강남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 위주원 상담사는 “대부분 교우관계의 어려움이나 가족과의 소통 부족, 대체가능한 적절한 취미의 부재 등의 원인으로 게임에 빠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자녀가 게임에 빠졌을 때에는 ‘그 원인이 무엇이었을까’에 관심을 가지는 태도가 중요하다. 특히 모바일 게임의 경우 PC 게임에 비해 접속이 훨씬 더 쉽기 때문에, 남학생뿐 아니라 여학생의 경우에도 많이 빠져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보상과 자율 균형 있게 지도해야 
PC 게임과 달리 모바일 게임은 강제적 셧다운제(심야시간대 16세 미만 청소년에게 제공을 제한하는 것)가 적용되지 않는다. 지난 5월 1일 여성가족부는 현재와 같이 PC 온라인 게임에 대해서만 셧다운제를 적용하고 모바일 게임에 대한 셧다운제 적용은 2년간 유예한 것.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녀의 모바일 게임 접속을 효과적으로 제한하고 지도하는 방법이 더욱 절실해진 상황이다.   
위주원 상담사는 “단순히 사용 제한에 초점을 맞춰 강압적이고 일방적으로 모바일 게임을 차단시킬 경우 자녀와의 갈등을 피할 수 없다. 자녀가 자발적으로 사용시간을 줄여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논의해 사용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 이후엔 가족 구성원 모두의 휴대폰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사용하지 않도록 시도해보는 것이 도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사용시간을 줄이기보다는 자녀가 자유롭게 스마트 폰을 사용하되, 모바일 게임 시간을 정해서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또,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목표를 수정해 사용시간을 단계적으로 줄여가는 것이 효과적이며, 이 과정에서 적절한 보상과 자율을 균형 있게 사용한다면 더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피옥희 리포터 piokh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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