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운전 증가세’ 처방·일반약이 96%
마약 중심 경찰 단속, 현실 못 따라가
기준 없는 사후 판단…책임은 개인 몫
약물운전의 대부분은 불법 마약이 아니라 처방약과 일반 의약품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단속과 제도는 여전히 마약 중심에 머물러 있다. 무엇이 위험한지에 대한 기준은 없고 판단은 사후에 이뤄지면서, 약물운전 관리가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박미정 감정관이 이끄는 연구팀은 ‘경찰학 연구’ 최신호에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약물운전 감정 1046건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다르면 의료용 마약류 55%, 비마약류 약 성분 41%, 불법 마약류 4%로 나타났다. 약물운전의 대부분이 합법적으로 처방되거나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약물에서 발생한 셈이다.
약물운전 자체도 빠르게 늘고 있다. 감정 건수는 2023년 248건에서 2025년 539건으로 2.2배 증가했다. 다만 증가가 실제 위험 확대인지, 단속 및 감정 의뢰 증가에 따른 통계 확대인지는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가장 많이 검출된 약물은 수면제 성분인 졸피뎀으로 3년간 370건이 확인됐다. 이어 알프라졸람(144건), 플루나이트라제팜(126건) 등 중추신경 억제 약물이 다수 검출됐다. 졸피뎀은 국내에서 가장 널리 처방되는 수면제로, 처방 규모 자체가 큰 만큼 높은 검출 빈도로 이어지는 구조라는 분석이 나온다.
비마약류에서는 항정신병약과 항우울제 계열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쿠에티아핀은 108건으로 가장 많이 검출됐으며, 항히스타민제 등 일부 감기약 성분도 확인됐다.
반면 불법 마약류는 메스암페타민 28건, 대마 19건 등 전체의 4%에 그쳤다. 약물운전의 대부분이 합법 약물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단속 대상과 실제 위험 사이의 괴리가 뚜렷하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단속과 판단 구조다. 약물운전은 음주운전과 달리 혈중알코올농도처럼 명확한 기준이 없다. 약물 종류가 490종에 달하고 개인별 반응 차이도 커 단일 기준 설정이 어렵다.
약물운전 판단은 단일 수치가 아니라 운전자 행동 관찰과 진술, 검체 채취, 감정 결과 해석을 종합해 판단하는 구조다. 경찰은 사고 발생이나 의심 신고가 있을 때 운전자 상태를 확인하고 현장 평가와 간이검사, 정밀검사를 거쳐 판단한다.
검사 체계도 한계를 안고 있다. 혈액 검사는 사고 당시 영향을 가장 정확히 반영하지만 현장에서 확보가 쉽지 않고, 소변 검사는 채취가 용이하지만 사고 시점 상태를 직접 반영하기 어렵다. 간이검사는 일부 약물만 확인할 수 있어 보완 수단에 그친다.
이 같은 불일치는 책임 문제로 이어진다. 약물운전은 ‘무엇을 복용했는가’가 아니라 ‘운전이 가능한 상태였는가’를 기준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약물이 검출됐다고 해서 모두 운전 능력 저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복용 시점과 용량, 개인별 반응에 따라 위험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일반 의약품에 대해서는 단속의 법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처방약과 비처방약을 포함한 기준 설정을 둘러싼 제도적 공백도 지적된다.
연구팀은 합법적으로 처방된 약물을 단순 검출 여부만으로 판단할 경우 치료 목적 복용까지 문제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약물 특성과 개인별 반응 차이를 반영한 기준 정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약물운전 대응이 마약 단속 중심에서 일상 약물 관리 체계로 전환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복약 단계에서 운전 가능 여부를 명확히 안내하고 약물별 위험 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 단속 강화만으로는 사고를 줄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도로교통공단에 기준 마련 연구를 의뢰한 상태다.
결국 약물운전 문제는 제도 설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준은 없고 책임은 개인에게 집중되는 구조 속에서 약물운전은 여전히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