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기계의 일자리 전쟁 | ② 논란 한복판에 선 디지털 혁명
산업·고용지도 바꿔 … '축복인가 저주인가' 글로벌 논쟁중
기술의 일자리 파괴 vs 새로운 경제효과 창출 속도경쟁 에 희비 갈릴 듯
디지털 기기와 최근 로봇기술에 이르기까지 첨단ICT 기술혁명은 3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다.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1, 2차 산업혁명에 버금가거나 능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변화든 승자와 패자가 갈리며 사회적 고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무인자동차, 인공지능, 로봇공학, 3D프린팅 등 새로운 기술이 과연 축복인지, 아니면 저주인지를 놓고 세계적으로도 논쟁이 활발하다.
◆'로봇혁명의 역설' … 기존 세대는 수혜얻지만 젊은 세대 일자리는 앗아가 = 최근의 기술혁명에 대해 가장 도발적인 예측을 내놓은 학자 중 한 명은 제프리 삭스 미 콜럼비아대 교수다. 삭스 교수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로봇기술을 일자리를 빼앗는 주범으로 지목하고 "로봇은 생산량을 늘리고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가져다 주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일자리를 없애고 경쟁력 없는 노동자들을 빈곤에 빠트린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 삭스 교수가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로봇혁명 때문에 가장 피해를 볼 수 있는 층은 젊은 세대다. 로봇혁명에 따른 일자리 파괴 효과는 처음부터 빠르게 나타나지 않으므로 기존 세대는 기술과 부를 축적하면서 로봇이 가져오는 생산성 향상같은 수혜까지 모두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로봇혁명에 따른 일자리 파괴 효과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시기가 오면 젊은이들은 기술을 축적할 기회를 얻지도 못하는 열등한 지위에 처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로봇혁명에 따른 생산성증대 효과로 새로운 경제적 효과가 나타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거나 사회적 부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겠지만 이는 이미 실업자가 되어버린 계층이 더이상 재기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갈 만큼 긴 시간이 흐른 후의 일이라는 점이 문제다.
◆전방위로 확산되는 디지털 기술 = 삭스 교수가 이런 경고를 한 것은 디지털 기술과 로봇의 활용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인간이 할 수 없는 극한노동이나, 대체가 손쉬운 단순노동에만 활용되는 등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산업용 로봇이 수행할 수 있는 일이 정밀화되는 것은 물론 상당수의 지적 노동도 대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요즘 로봇은 시각인식·인공지능·다관절 등 첨단 기능을 갖춰 사람의 섬세한 동작을 보면 그대로 따라하는 수준까지 개발됐다. 프랑스 클레온의 르노자동차 공장에선 덴마크의 유니버설로봇사가 만든 스마트로봇이 자동차엔진 제조 작업을 맡고 있다. 엔진에 스크루를 설치하는 작업은 사람들도 제 위치를 찾아 넣기 힘들 정도로 까다로운 일이지만, 이 로봇은 6개의 관절로 연결된 127cm의 팔을 쭉 뻗어 작업을 수행한다. 부품이 제 위치에 제대로 조여졌는지 확인하는 일도 로봇의 임무 중 하나다.
이 로봇은 인간과 협업도 가능하다. 기존 로봇은 작동 범위 내에 인간이 들어갈 경우 안전사고 위험이 높았다. 그러나 르노자동차의 스마트로봇은 음파와 카메라 등을 이용해 사람을 인식, 작업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는 식으로 안전사고를 예방한다.
3D 프린팅은 보석 가공·금형·플라스틱 모델 성형 등 제조업에서 숙련 노동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영국의 BAE시스템스는 2013년말 토네이도 전투기의 금속 부품을 3D 프린터로 제조했다.
인공지능의 초기 형태인 지능형 알고리즘은 빅데이터와 맞물려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 계산과 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에서 벗어나 분석과 예측까지 가능하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음성 비서 서비스인 '코타나'는 지난해 아카데미 수상자 24명 가운데 20명을 정확히 맞혔다. 영화와 배우의 빅데이터를 검색엔진으로 분석한 결과다. 앞선 해에는 21명을 적중했다.
자동차·휴대전화 같은 첨단 제조업 분야 외에도 기사작성이나 법률서비스·경리·회계 등 일정 수준의 지적 분석 패턴을 수반하는 전문직 일자리도 기계로 대체되고 있다.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미 신문사 LA타임스는 지진 속보 기사를 로봇이 담당하고 있다. 미국 UCSF 등 5개 대학병원에서는 환자들이 복용할 약을 로봇이 조제한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리처드 프리먼 교수는 "기술의 발달로 사무직뿐만 아니라 의사·변호사·회계사 등 전문직도 일자리를 위협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은 속도의 문제? = 러다이트 운동 이후 길고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인간과 기계의 일자리 전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논란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기술발전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런 기술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고 주장하고, 그 반대 측면을 보는 사람들은 일자리의 파괴 효과를 더 중요하게 본다.
카네기멜론대학 로보틱스연구소 소장인 일라 노어바크시 박사는 지난 4월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2008년 미국의 부동산시장 붕괴 이후 뉴욕시 건축가의 30%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건축 분야의 최첨단 소프트웨어가 도입돼 건축가의 상당 업무를 대체한 데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노어바크시 박사는 "경기침체와 불경기로 기업들이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면서 노동력을 기계로 다시 대체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경기침체가 종료된다고 해도 이미 전환된 자동화를 노동자로 대체하는 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스캇 앤더스와 마크 뮤로 선임연구원은 '제조업 실업을 로봇의 탓으로 돌려선 안된다'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대다수가 수긍하는 로봇과 실업의 상관관계에 의문을 던진다. 로봇이 인간노동력의 대체재라면, 자동화에 많은 투자를 하는 나라의 제조업 실업률이 높아야 하지만 로봇의 시간당 생산량이 미국의 3배인 독일의 경우 미국보다 실업률이 낮았다(1993~2007년 독일의 제조업 실업률은 19%, 같은 기간 미국의 실업률은 33%). 한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역시 미국에 비해 제조업 실업률이 낮았다.
어느 쪽이 맞을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장 암울한 시나리오가 무엇일지는 알 수 있다.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경제적 효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일자리 파괴에는 가속도가 붙는 경우다.
장인성 국회 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기술발전에 따라 일자리가 지고 뜨는 것은 항상 있었던 일"이라면서 "관심을 둬야 할 부분은 한 직종이 사라질 경우 그 직종의 종사자가 다른 직종으로 옮겨가기 위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데 과연 기술발전의 속도가 그만큼의 시간을 기다려줄까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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