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기계의 일자리 전쟁 | ①고용시장에 몰려온 '기술 쓰나미'

디지털·로봇기술 기하급수적 발전 … '일의 미래'가 불안하다

2015-06-19 10:45:21 게재

제조·서비스업 모두 위험 … 의료·법률·금융·교육 부문 일자리 대체가능성 높아

지난 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세계로봇대회에서 우리나라 연구팀이 만든 인간형 로봇 '휴보(사진)'가 1위를 차지했다. 로봇강국인 미국과 일본을 제쳤으니 분명 국내 로봇업계의 쾌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디지털기술과 로봇 발달 등으로 인해 사람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또 한번 높아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기계와 인간이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한다. 취업난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이 사람이 아닌 로봇이나 인공지능과 경쟁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토마스 프레이 미국 다빈치연구소장은 "(기술발전으로) 2030년 일자리 20억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간과 기계의 일자리 '3차대전' = 인간과 기계의 일자리 경쟁사는 이미 오래됐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으로 수공업체제가 붕괴되면서 영국 섬유노동자들은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운동을 벌였다. 기술발전으로 인해 당시 수많은 직업이 사라졌지만 옛 직업을 대체하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면서 또다른 경제적 기회가 생겨났다. 그래서 기술혁명은 장기적으로 고용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는 게 일반적인 결론이었다.

최근의 디지털기술과 로봇 등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는 불확실하지만 분명한 것은 고용시장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리라는 것이다. '일의 미래' 저자인 린다 그래튼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저서에서 "1차, 2차 산업혁명은 노동 전반에 대 변혁을 일으켰다"면서 "현재 진행 중인 정보통신혁명과 수명증가는 또 한 번 일대 전환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승민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미래사회연구실장은 "기술발전으로 인한 고용시장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더 심각해질 것"이라면서 "이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고 확언했다.

제조업 중심 한국, 기계로 인한 일자리 감소 더 심각 = 제조업 중심인 우리나라는 로봇 등의 발전이 더 빨리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로 꼽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로봇밀도는 2013년 기준 437대로 세계 1위다. 2위 일본(323대) 3위 독일(282대)보다 훨씬 많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중심인 자동차와 IT업종이 상대적으로 자동화하기 쉬운 업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다 로봇보유국이 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스파이어리서치는 우리나라의 제조업용 비제조업용 로봇이 내년까지 20만1700대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의 보스턴컨설팅그룹은 한국을 2025년까지 로봇 도입에 따른 노동비용 절감 효과가 가장 높은 국가로 꼽았다.

기술발달로 인한 고용시장의 변화는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업은 물론, 지적인 노동력 시장에서도 나타난다. 과거 산업용 로봇이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모방하고 확장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인간의 고유능력으로 여겨졌던 지적 능력을 상당 부분 흉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지난해 기술 및 기술전략·정책 전문가그룹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복잡한 전문지식과 상호작용이 필요한 의료, 법률, 금융, 교육 등의 영역에서 기술에 의한 고용 대체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고용 없는 성장에서 고용을 줄이는 성장으로? = 기술혁명이 고용시장에 몰고 올 격변 때문에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는 유례없는 도전에 직면할 전망이다. 기술발전과 생산성 향상을 강조하는 것이 경제성장은 물론 사람들이 잘 사는 길이라고 믿어 왔지만 최근 상황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발전으로 인해 고용 없는 성장을 넘어 고용을 줄이는 성장까지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회 예산정책처 장인성 경제분석관은 "낮아지는 성장잠재력을 제고하기 위해서 기술발전 등으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도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문제의식이 나타나면서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책목표 또한 추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장 경제분석관의 2012년 연구에 따르면 생산성 증가율이 높았던 산업일수록 고용증가율이 낮은 경향이 관찰됐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에는 기술충격 때문에 장단기적으로 고용이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발전으로 인한 일자리 대체 효과가 뚜렷한 선진국에서는 대비하기 위한 방안이 나오기도 한다.

영국 브리스톨대 앨런 윈필드 교수는 로봇과 자동화에 따른 실업 위기를 대비해 자동화세금을 부과하자고 제안했다. 기계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위한 지원금을 쌓아두기 위해서다.

[관련기사]
-[인간과 기계의 일자리 전쟁 - ①고용시장에 몰려온 '기술 쓰나미'] 기술혁명, 일자리를 덮친다
-기술혁명에 대기업부장이 치킨집 사장으로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김형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