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기계의 일자리 전쟁│③ 기술, 양극화 부추길까
중산층 일자리에 타격 … 능력 이하 일하는 '불만족 노동자'↑
평범한 기술 가진 인력, 저임금 노동으로 밀려날 듯
기술선진국, 후발국 못 따라오게 '사다리 걷어차기'
기술발전이 축복이냐 저주냐 논란이 많지만 노동자들은 축복보다는 저주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부정하기 어렵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기술은 노동보다는 자본생산성을 높이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을 소유한 쪽이 더 많은 몫을 가져간다는 뜻이다.
물론 기술발전으로 인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불평등 확대가 기술발전 탓은 아니라는 반론도 꾸준히 제기된다. 그러나 최근의 논의는 기술혁신으로 인한 양극화 현실을 외면하기보다는 차라리 직시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준비를 하자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노동분배율 감소 = 기술혁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다양한 연구에 따르면 여러 방향으로 양극화가 진행중이다. 가장 눈에 띄는 양극화는 자본을 보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 확대다. 55~60%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노동분배율은 최근 전세계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메사추세츠 공대(MIT) 브린욜프슨, 맥아피 교수가 쓴 '제2의 기계시대'에 따르면 1947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은 평균 64.3%였지만 이 비율은 21세기 들어 하락중이다. 2010년 3분기에는 57.8%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일본은 1980년대 55%대에서 50%대로, 스웨덴은 60%대에서 55% 아래로 내려왔다. 중국의 노동분배율 하락은 더욱 두드러져 1990년대 60%에 육박했던 노동분배율은 50% 밑으로 추락했다.
이는 컴퓨터나 자동화분야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노동에 대한 대가가 줄어들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해석된다.
이승민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미래사회연구실장은 "산업현장에 적극적으로 도입되는 기술은 노동에 비해 자본생산성을 증가시키는 속성을 가질 것"이라면서 "기술적 진보가 고용인에게 보다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 극소수 슈퍼스타의 시대 도래 = 자본과 노동 사이의 불평등만 심화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기술의 저주 앞에서 절망을 겪겠지만 특히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층은 소위 중산층이다. 기계가 빼앗을 일자리는 굳이 기계를 쓰지 않아도 싸게 부릴 수 있는 저임금 노동보다는 중간 수준의 임금을 받는 일자리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MIT 데이비드 오터 교수는 "기술이 임금수준 측면에서 중간계층의 일자리를 파괴시킬 것이며, 그 이유는 기술이 중간계층이 많이 담당하고 있는 일상적인 일을 많이 대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봇과 자동화 기술은 자동차 휴대전화 같은 첨단 제조업은 물론, 법률서비스 경리 회계 등 중산층 일자리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평범한 중간 수준의 기술을 가진 노동자가 기계로 대체되면 그들은 좀 더 낮은 수준의 일자리로 이동하게 된다. 이 경우 낮은 수준의 일자리 경쟁이 심해지면서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비정규직이나 시간제 일자리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고용계약에서 고용주의 협상력이 높아지면서 노동자의 작업환경도 열악해질 수 있다.
반면 극도로 창의적이며 재능있는 소수는 유례없는 파워를 지니게 될 전망이다. 브린욜프슨 교수는 정보통신기술(ICT) 혁명으로 인해 극소수의 슈퍼스타가 거의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경제가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추세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최강식 조은애(산업연구원)의 2013년 연구에 따르면 미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숙련도에 따른 격차가 확대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간 부의 양극화도 심해질 듯 = 나라간의 불평등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19세기초에 선두그룹에 들어간 나라들이 계속 성장가도를 달렸듯이 첨단기술혁신에서 우위를 점하는 나라가 또한번 새로운 시대에 경제적 강자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말 영국 과학기술연구재단은 '로봇경제의 비전' 보고서에서 "역사적으로 보면 기술혁신을 통해 이득을 얻는 나라와 해당기술의 지배에 놓이게 되는 나라들로 구분된다"면서 "앞서 나간 국가들이 새로운 신기술이 개발되면 경제적 이득을 챙기고, 이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네트워크 등을 바탕으로 시장지배력을 동시에 획득했고 후발국은 선발국의 행태를 답습하기 시작해 치열한 제로섬 게임이 시작된다"고 분석했다.
향후 로봇 등 신기술이 좌우하게 될 미래사회에서도 국가 간 권력싸움이나 부의 양극화가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도 심화될 전망이다. 신기술을 가진 국가들은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후발국들이 이를 공유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각종 양극화의 심화에 따라 세계적으로 정부는 딜레마적인 과제를 풀어야 할 전망이다. 기계로 인해 일자리를 빼앗겨 능력 이하의 일을 하는 불만족스러운 노동자들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고 이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일은 큰 도전이다. 그렇다고 기술발전을 외면할 수도 없다. 한번 뒤처지면 영원히 추락할 수밖에 없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야 한다.
정 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ICT와 불평등' 보고서에서 "ICT혁신은 수많은 사람들을 도태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시점"이라면서 "다행히 우리나라의 기술변화에 따른 격차 확대 속도가 아주 빠르지는 않아 보이므로 이제부터 중장기적으로 노동자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기술변화에 따라갈 수 있게 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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