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그만! 릴레이 인터뷰│② 여승수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장

아동학대, 국가적 대응 필요 … 컨트롤타워 만들어야

2016-04-01 11:32:03 게재

"예전보다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게 사실이죠. 아동학대를 의심하고 신고하는 건수가 많아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입니다. 지난해 한 여론조사에서 훈육 차원의 체벌에 대한 찬성률이 70%가 넘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여전히 아이의 권리에 대해 무지한 어른들이 많다는 뜻이죠."


지난 달 24일 서울 무교동에 위치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본부에서 여승수 복지사업본부장(51·사진)을 만났다. 여 본부장은 여전히 갈 길이 먼 아동학대 문제를 이야기하며 1998년 '영훈이 사건'을 떠올렸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아동학대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충격적 사건이다. 당시 30대 아버지와 계모는 6살 아들 영훈이를 무참히 학대했다 들통났다. 8살이었던 영훈이 누나는 이미 살해돼 암매장된 후였다. 분명 어린 남매가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다는 마을 사람들의 신고로 현장출동한 카메라에 잡힌 영훈이는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골방에 갇혀 무서움에 떨고 있었다. 이후 시민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아동학대예방센터 등을 운영하며 심각함을 알렸고, 2000년에는 드디어 아동복지법이 만들어져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설립되는 데 이르렀다.

그러나 2013년에 다시 한번 울산 서현이 사건이 터졌다. 영훈이 사건으로부터 16년이나 흘렀지만 아이에 대한 무자비한 학대는 다름이 없었다. 다리미로 화상을 입었던 영훈이처럼 서현이의 온몸 곳곳에는 뜨거운 물에 데인 상처가 있었다. 그로부터 또 3년이 흘러 부천과 평택에서 아이들의 싸늘한 주검이 발견됐다.

여 본부장은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 근본적으로는 국민인식의 개선이 미진한 점, 또 하나는 끔찍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런저런 정부의 대책이 나오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감시하고 다룰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봤다.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대응하고 사후적으로 관리하는 전 과정에는 보건복지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경찰, 법무부 그리고 지방자치단체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요즘 사건들이 터지면서 대책을 이곳저곳에서 쏟아내는데 가장 시급한 건 역시 컨트롤타워입니다. 아동학대에 대한 전 과정을 총괄하면서 비는 구멍이 없도록 업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분명하게 책임질 것은 책임지는 곳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죠. 정부가 전국가적 차원의 문제라고 심각하게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또 몇 년 후 끔찍한 학대 사건이 안 터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 달 30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아동학대 종합대책에는 컨트롤타워 문제는 생략돼 있다.

여 본부장이 국가적 대응을 역설하는 이유는 아동학대를 근절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국민들의 인식개선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아동학대인지 인지하고, 부모가 됐을 때 자신도 모르게 학대부모가 되지 않도록 충분한 교육을 받고, 주변에서도 학대 징후가 있는 아이들을 가볍에 보아 넘기지 않는 문화가 잡힌다면 그야말로 아이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국민인식의 개선에는 홍보가 필수적이다. 아동학대사건으로 검거된 부모들이 흔히 하는 변명은 "훈육 차원에서 체벌했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아동학대사건이 처음에는 가벼운 체벌에서 시작됐고, 어떤 체벌도 아동복지법상 금지돼 있다는 사실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 아동인권에 관한 기본적인 국제 기준인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는 부모는 자녀에 대해 △'아동 최선의 이익'을 바탕으로 양육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3조) △모든 형태의 신체적, 정신적 폭력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19조)고 밝히고 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모든 종류의 잔혹하고 품위를 저하하는 벌과 인간의 존엄성을 해하고 신체의 소중함을 침해하는 어떤 종류의 체벌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최근 사건에서도 봤듯이 아동학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대물림 현상이 흔합니다. 아동학대를 이대로 둬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엄연한 권리를 가진 인격체라는 점을 알리는 등 정말 할 일이 많아요. 혼인신고 때부터 부모교육을 필수로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일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여 본부장은 아동학대 대응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현장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도 짚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6개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운영중인데 열악한 예산 등으로 인한 상담원들의 업무강도가 높은데다 일의 특성상 외상 후 스트레스 등 다양한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남지역에서 재단이 운영하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에는 학대가해부모가 찾아와 불을 지르는 바람에 직원들이 상해를 입어 문을 닫은 적도 있었다.

"아동보호기관의 상담사들은 어떤 업무보다도 중압감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순환인사로 숨통을 틔워주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그만두는 경우도 많죠. 아동학대 대응은 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한 만큼 이런 인력손실을 줄이기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국내외 58개국의 아동을 돕고 있는 글로벌 아동복지
전문기관이다. 1948년 미국 기독교아동복리회(CCF, ChristianChildren s Fund) 한국지부로 시작했다가 986년 CCF의 지원 종결 이후 국내 순수 민간기관으로 자립했다. 중증장애아동 요양시설 한사랑마을 개원, 북한아동지원사업, 해외아동지원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아동복지사업을 진행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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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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