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그만! 릴레이 인터뷰│③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사업본부장

"몰아치기식 대책 한계 … 학대사건 정밀한 '복기'부터"

2016-04-08 10:57:17 게재

2003년 영국의 '빅토리아 클림비 보고서'는 아동학대 관련 보고서 중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보고서다. 영국 의회는 2000년 2월 25일 만 8살의 나이에 이모할머니의 학대로 사망한 빅토리아의 죽음 이후 2년여에 걸쳐 사건을 정밀하게 복기하고 아동학대 관련 전반적인 체계에 어떤 허점이 있었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도출해 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보고서가 하나 있다. 2013년 10월 24일 울산 울주에서 계모에게 맞아 숨진 8살 서현이 사건을 재조명한 '이서현 보고서'다. 보고서를 집필하게 된 계기나 의도는 비슷하지만 클림비 보고서와 가장 큰 차이는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단체들이 자원봉사식으로 나서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점이다. 매년 끔찍한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터져나오지만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이 사건들의 뒷배경을 살펴보고 거기서 시사점을 도출해 보려는 시도는 한 번도 없었다.

"최소한 최근 몇년간 일어난 아동학대 사망사건만이라도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차분하게 되짚어 봐야 합니다. 정교하게 들여다 보기만 하면 어디서 어떻게 펑크가 나서 그런 일이 벌어졌고 그래서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알 수가 있죠. 그런 되짚기 없이 사건 터졌다고 허둥지둥 대책을 내놓으니까 자꾸 손쉬운 안만 나오는 겁니다."

최근 정부 차원에서 내놓은 아동학대 종합대책에 대한 평가를 묻자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사업본부장이 한 이야기다. 7일 서울 마포구 본부에서 만난 그는 정부의 대책이 과거에 비해 예방과 조기개입 등에 초점을 둔 부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과거 사건이나 과거 대책에 대한 철저한 되짚기나 반성 없이 나온 데 대해 우려했다. 국제구호개발단체(NGO)인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하는 김 본부장은 2년 전 '이서현 보고서'를 낸 민간진상조사위원회의 사무국장을 맡아 보고서 집필을 총괄했다.

"서현이 사건이 났을 때 정부 차원의 리뷰가 필요하다고 민간단체들이 수도 없이 주장했지만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죠. 오죽 답답했으면 민간단체들이 나서서 진상조사를 했겠어요."

당시 진상조사 비용은 위원들이 각자 알아서 자비로 충당했고, 2개월 동안 현업과 조사활동을 병행해야 했다. 영국 정부가 전문가들을 동원해 2년 동안 체계적으로 클림비 사건을 조사한 것과 비교된다.

아동학대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기 위해 기존 사건들에 대한 철저한 리뷰가 필요하다는 근거가 될 수 있는 사례는 또 있다. 지난 2월 미국은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국가전략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는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로 '과거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죽은 아이와 가해자의 특징은 무엇인지, 가족적 환경은 어땠는지, 기관의 대응은 어땠고 왜 더 빨리 발견되거나 알려지지 않았는지, 아이를 살릴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는지, 이런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시스템 전체에 걸쳐 도입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과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어 이 보고서는 시급하게 취해야 할 일로 최근 5년간 일어난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모두 되짚어 봐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과거에서 배우는 것 없이 그때그때 대처하는 식으로 대책을 내놓다 보니 현장에선 우스꽝스런 일도 벌어진다. 최근 아동학대 사건이 연이으면서 비판여론이 높아지자 정부는 신고가 들어왔던 사례들을 다시 전수조사하라는 지시를 일선의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에 내렸다. 그런데 정작 아보전 상담원들은 피해자들의 주소를 수집하는 것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간기관인 아보전이 피해자들의 이전된 주소를 알아낼 방법이 없는 탓이다.

아동학대 대응과 관련해 해외사례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해외 아동학대 보고서가 모두 국회의 주도하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빅토리아 클림비 보고서는 영국 하원의 보건위원회에서, 최근 나온 미국의 아동학대 국가전략보고서는 미 국회가 통과시킨 법에 근거해 설립된 위원회에서 작성됐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동학대 예방이나 대응과 관련해 국회의 역할이 너무 작습니다. 아동학대 관련 업무가 정부의 여러 부처에 걸쳐져 있는데 현재로선 각 부처간의 협업이 유기적으로 되고 있지 않는 상황이에요. 이 때 나설 수 있는 곳이 바로 국회죠. 해당 부처가 속해 있는 각 상임위 위원들이 공동으로 위원회 등을 열어서 각 부처가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20대 국회가 구성되는대로 각 상임위 위원들에게 이런 방안을 제시하며 아동학대 대응에 국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호소할 예정이다.

"아동학대란 가장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가장 잔혹한 범죄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대 당해 도움을 청할 곳도 없는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발견할 방법은 그들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이 사회적으로 많아져야 합니다. 일선에서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는 119 소방관, 교사, 의사 등 모든 사람들이 아동학대 징후를 발견할 수 있는 눈이 되어줘야 하고 그러려면 소관 부처들도 이런 문제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아동학대 예방교육 등을 책임감 있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동학대 그만! 릴레이 인터뷰'연재기사]
- ①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 본부장 아동학대예방시스템은 '가분수' … 현장인력 늘려야 2016-03-25
- ② 여승수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장 아동학대, 국가적 대응 필요 … 컨트롤타워 만들어야 2016-04-01
- ③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사업본부장] "몰아치기식 대책 한계 … 학대사건 정밀한 '복기'부터" 2016-04-08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김형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