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의 '대미 금융전쟁' 실현 가능할까

2016-04-26 11:14:56 게재

"시스템 흔들 가능성 적어"

미국 달러는 전 세계 기축통화다. 미 달러의 몰락을 점치는 이들이 많지만, 조만간 현실화할 가능성이 낮은, 어디까지나 설에 불과하다. 헝가리가 최근 동유럽국가 중 처음으로 위안화 표시 국채(딤섬본드)를 발행했지만 달러패권을 위협하기엔 턱도 없다.
20일(현지시간) 사우디를 방문한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살만 국왕과 회담하는 모습. 중동의 역학관계와 9·11테러연계설 등 최근 불거진 사안으로 전통적 우방인 양국 관계가 삐걱거리면서 두 정상의 표정이 다소 경직돼 있다. 사진 연합뉴스


그러나 가능한 시나리오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산유국이 미 달러로만 석유를 거래하겠다는 약속(석유달러 시스템)을 파기하면 달러패권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 정부가 2001년 9/11테러사건과 사우디가 연계된 의혹을 담은 보고서를 공개하려 하자, 사우디가 즉각 '7500억달러(863조원)에 이르는 미 국채보유분을 매도, 석유달러 시스템을 끝낼 수 있다'고 위협하는 것도 그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석유달러 시스템에서 사우디는 석유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미 국채나 미 증시에 재투자한다. 따라서 금과 연동되지 않는 미 달러가 가치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사우디가 미 국채와 달러, 미 주식을 대량 매도하면 금융시장에 큰 혼란이 생기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 사우디의 대미 금융전이 다른 투자자, 투자국의 동참을 이끌 수도 있다.

현재의 석유달러 시스템은 국가간 거래로, 현재의 시스템이 정착하기까지 수세대가 걸렸다. 석유달러 시스템을 물려받은 현재의 세대들은 과거 외환거래 시스템이나 운용메커니즘을 완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1971년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 정책을 포기했을 당시엔 전자거래가 불가능했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시장이었다.

금융전문블로그 '글로벌인텔허브'(GIH)는 "일단 사우디의 대미 금융전이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사우디의 정치, 경제적 내부사정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가장 중요한 정치적, 경제적 동맹관계를 끊어낸다는 것은 사우디 스스로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또 사우디가 여전히 국제원유시장에서 독보적 지위를 점하고 있지만 많은 경쟁요소들 때문에 이전만 못한 상황이다. 사우디산 원유는 미국에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우디를 대체할 산유국도 많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우디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있다.

비산유국들은 맹렬한 기세로 대체에너지 발굴과 확보에 나서고 있다. 산유국이면서도 석유수입국인 미국도 마찬가지다. 다만 대체에너지가 전면에 부상하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 내 석유산업계의 집요한 로비 때문이다. 말 그대로 1년 내 석유를 대체할 백여가지의 대체에너지가 미국에 존재한다. 가장 강력한 후보는 토륨원자로다. 현재의 우라늄 핵발전보다 효율적이고 안전한 대체에너지다. 토륨은 원자로 노심의 용융이 없어 유출사고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데다 자연에 풍부하게 존재한다. 심지어 핵폐기물을 소모하는 장점까지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같은 대체에너지를 활용하지 않는가. 쉐브론과 엑슨모빌 등 초대형 석유기업들이 벌어들이는 돈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미국 안팎의 조세회피처를 통해 막대한 세금을 회피하기도 하지만, 합법적인 수준에서는 낼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세금을 미 정부에 납부한다. 즉, 석유는 수익성 좋은 사업이자 워싱턴 정가에도 긴요한 사업이다.

하지만 사우디가 실제 미 국채 보유분을 전량 매도할 경우 무슨 일이 발생할까.

GIH는 "사우디의 미 국채 헐값매각으로 시장이 단기간 출렁일 것은 분명하지만 장기적인 시스템 붕괴 상황을 몰고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GIH는 "만약 사우디가 미 국채를 일시에 대량매도한다면,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돈을 찍어 시장에 나온 국채를 사들이면 된다"며 "연준은 미 달러를 무한정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현재까지 미국이 발행한 국채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질 위험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증시다. 사우디는 미 증시에도 큰 규모의 투자를 하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사우디 왕자 알왈리드 빈 탈랄의 씨티그룹 투자다. 그는 1991년 당시 씨티은행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사우디 왕자의 막대한 투자로 쇠약해가는 거대은행이 체력을 완전히 회복, 세계 선도의 금융기관으로 복귀하면서 그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이 커졌다. 그같은 투자로 알왈리드 왕자는 고수익을 얻었고, 사우디 왕가의 개인적 재산 축적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하지만 사우디 왕가는 미 주식에 대해 베일에 가려진 비밀스런 투자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규모가 상당할 것이라는 추측만 나돌 뿐 실상이 밝혀진 바 없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사우디 왕가의 미 자산 보유현황을 공개하지 않는다. 억만장자 왕자들과 사우디 정부 산하의 자선단체가 지배하는 막대한 미 자산 규모는 그들의 정치적인 필요에 따라 공개 여부가 결정된다.

올 1월 블룸버그통신은 사우디 왕가가 미 국채를 매도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다.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금융청(SAMA)이 보유한 외국국채 보유고는 2015년 1080억달러(124조원) 감소했다. 사우디중앙은행은 나라별 국채를 밝히지 않았지만, 2015년 11월 현재 총합 4230억달러(486조원) 규모의 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미 금융시스템에 해를 끼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GIH는 "사우디가 보유한 미 자산을 대량 매도한다고 해도 금융시장의 혼란은 일시적일 것"이라며 "연준이 지난 13일 미 최대 은행 중 한 곳인 JP모간에 보낸 서한에서 '만약 미국 금융시스템을 붕괴시킬 무언가가 생긴다면, 그건 바로 JP모간일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그같은 이유"라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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