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주치의제도 없는 보건의료정책은 거짓
우리 국민은 의료서비스를 이용해야 할 때, 어느 병원 또는 어느 전문의를 찾아가야 할지에 대해 혼란을 경험하는 일이 빈번하다.
아플 때 먼저 주치의에게 진료와 상담을 받는 선진국 의료이용 관행과는 사뭇 다르다. 즉, '의료'라는 넓고 위험한 정보과학기술의 바다 앞에서 타야 할 배와 목적지를 정할 때, 우리 국민은 위험부담을 안고 스스로 결정을 하고 있어서, 주치의를 보유하는 선진국 국민과 비교하면 불리하다.
선진국 국민의 주치의 보유율은 네덜란드 100%, 독일 92%, 영국 89%, 뉴질랜드 89%, 호주 88%, 캐나다 84%, 미국 80% 등으로 조사(Commonwealth Fund 2007년)된 바 있다.
그렇지만 우리 국민은 주치의를 두지 않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 보유율은 13.9%에 불과하다(한국의료패널 2012년). 주치의란, 아프거나 의학적 도움이 필요할 때 진료 목적으로 방문하는 의사를 의미하며, 이를 국가(또는 보험자) 차원에서 장려하여 제도화한 것이 주치의제도이다.
주치의를 두지 않은 채 자유롭게 의료이용을 할 때의 위험성을 일반 국민은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그 결과가 다른 요인들과 함께 복합적으로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뚜렷하게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국내에서 갑상선암은 최근 10여 년 동안 발생률이 가파르게 증가하여 선진국에 약 10배 수준에 달했다. 세계 어느 나라도 무증상인 경우 검진을 권하지 않는데, 국내에서는 주치의 조언에 의하지 않고 개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검진을 받음으로써 불필요하게 갑상선 암이 진단되고 있다.
그런데 이를 보건의료체계의 문제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경우는 드물다, 즉 의료기관의 민간소유 비중이 세계 최고(>90%)인 상태에서 주치의제도 부재와 건강검진 상업화가 과다진단의 배경이라는 사실을 좀처럼 인지하지 못한다.
국내에서 메르스 사태가 발생(2015)했을 때, 첫 번째 환자가 스스로 판단하여 10일간 4개 의료기관을 경유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전파시킨 것이 시발점이 되어, 전 세계에게 가장 빠르게 메르스 바이러스가 확산되었는데, 이를 감염병 관리체계 부실에 의한 것으로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주치의제도 부재 속에서 낮게 책정된 행위별수가제로 3분 진료가 만연한 가운데, 의사 1인당 진료건수와 국민 1인당 의사방문 건수가 세계 최고 수준인 국내 보건의료체계의 왜곡이 원인임을 바르게 지적하는 경우는 드물다.
국민 의사 정부 모두에게 이익
국내에 주치의제도를 도입하면 많은 편익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 입장에서, 첫째, 아플 때 어느 의료기관, 전문의를 찾아가야 할 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둘째, 아프지 않을 때라 해도 건강증진/질병예방 상담을 받으며, 적합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셋째, 진료기록이 체계적으로 일관성 있는 관리가 가능해져서, 중복진료, 중복투약, 중복검사 등을 막을 수 있다.
의료인 입장에서, 첫째, 환자-의사 관계의 지속성이 향상 되므로 신뢰관계 속에서 양질의 일차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둘째, 만성질환자의 건강관리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셋째, 의뢰-회송체계의 확립으로 일차의료 전문의와 특정분야 전문의 또는 병원 사이에 협력관계구축이 가능해 진다.
국가 차원에서, 첫째, 보건의료체계의 효율성과 형평성이 크게 개선된다. 둘째, 환자의 합리적인 의료이용으로 의료자원이 효율적으로 쓰이게 되며 무상의료 실현이 쉬워진다. 셋째, 노인인구와 만성질환의 급증에 따른 의료비 증가에 잘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의료비 지출을 적정수준에서 안정화시키어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화시키고 예측 가능하게 해준다.
건강은 개인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숙제가 아니며 의료서비스는 흥정으로 사고 파는 물건이 아니다.
국가는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해야 하고 그 보장은 평등해야 한다는 헌법정신은 이제 주치의제를 도입하라는 전국민적 요구로 구체화 되고 있다.
더욱이 노인인구와 만성질환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주치의제도는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다. 아울러 국가의 정책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제도이다.
올 해 대통령 선거에서 대선 후보들 모두가 보건의료정책에 주치의제도 도입을 공약으로 포함시킬 수 있도록 범국민운동을 전개하자.
이재호 가톨릭대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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