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세제실장 인사, 파격 또는 정치논리

2018-03-21 10:37:24 게재
재정금융팀 성홍식 기자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우리나라 조세정책을 총괄하는 요직이다. 이 세제실장 자리가 장기간 공석이었다.

최영록 전 세제실장이 사의를 표하고 송별회를 가진 것이 지난달 23일이었다. 인사가 한 달 가까이 지체되자 기재부 안팎에서는 온갖 루머가 돌아다녔다. 재산·사상 검증설부터 정치실세 개입설까지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기재부는 20일 김병규 재산소비세정책관을 임명했다고 밝혔다.

김병규 신임 세제실장의 등장은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세제실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기재부 인사 관행에 따르면 '후보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행정고시 34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전임자인 최영록 전 실장은 행시 30회. 같은 세제실 내에 이미 선배가 2명이나 버티고 있던 터였다. 더구나 김 실장은 세제실장으로 가는 '정규 코스'로 여겨졌던 조세총괄정책관이나 조세총괄과장을 거치지도 않았다. 깜짝 놀랄만한 파격인사인 셈이다. 민간회사로 비유하자면 부장도 거치지 않은 고참급 과장을 임원으로 승진시킨 셈이다.

파격인사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기재부는 "보유세 개편, 가상화폐 과세 등 당면 개혁과제 방안을 마련하는데 적임자"라고 발탁이유를 설명했다. 실제 김 신임실장은 세제실 출신이면서도 예산실 교육예산과장을 맡는 등 재정분야 거시적 시각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 초 재산소비세정책관을 맡아 가상화폐(암호화폐)와 보유세 관련한 현안을 직접 챙겨왔다. 발탁인사인만큼 보수적인 세제실 분위기를 활력 있게 바꿀 것이란 기대도 있다.

하지만 기재부 안팎에선 '깜짝인사'의 정치적 배경을 의심하는 기류가 더 크다. 김 신임실장이 역량 있는 인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관례를 깨면서까지 발탁할만한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의문표가 붙는다. 더구나 유력 후보군이었던 한명진(행시31회) 안택순 전 조세총괄정책관(32회)도 조직 내 신망이 탄탄한 인물이다.

일각에선 '지역·인맥인사의 발호 조짐'을 경계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한 전 국장은 전남 보성, 안 전 국장은 전남 함평이 고향이다. 반면 김 신임실장은 경남 진주 출신이다. 실제 김 실장은 지난해 대선 직후 꾸려진 인수위에 파견 근무한 경력이 있다. 더구나 최근 공직인사에서 PK인사들이 약진을 거듭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정부의 전신인 참여정부 시절을 돌이켜보자. 당시 참여정부는 '부산파'와 '호남파'가 양대세력을 이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사추천(정찬용 인사수석·호남)과 인사검증(문재인 민정수석·부산) 기능을 분리해 쏠림현상을 막으려했다. 하지만 1년도 못돼 인사와 검증라인 모두 부산파의 입김이 강화되면서 인사편중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물론 이번 세제실장 인사에 정치적 입김이 작용했다는 확증은 없다. 하지만 인사가 미뤄지고, 발탁과 탈락 이유가 석연치 않자 온갖 루머가 횡행하는 상황이다.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끈도 고쳐 쓰지 말라고 했다. 인사 문제가 촛불정신을 계승한 정부의 발목을 잡는 일이 있어선 결코 안된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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