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퍼스트 시대, 반도체가 기술경쟁의 핵심
선진국 공급망 재편 대비해야
"인력양성이 기반조성의 시작"
"메모리 반도체 R&D도 계속해야"
정부가 13일 발표한 'K-반도체 전략'은 격화하는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 반도체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종합대책이다.
미국 중국 EU 등이 추진하고 있는 세계 반도체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국내기업들이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략이 계획대로 실행되면 국내에는 세계 최대 규모이자 최첨단 수준의 반도체 공급망이 갖춰지게 된다.
◆'산업의 쌀' 반도체 공급망 재편중 = 반도체는 우리나라 수출의 20%를 차지하며 9년째 수출 1위를 유지하는 등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공급난이 심화하고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패권 경쟁이 격화됐다.
실제로 미국은 올해 1월 자국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보조금, 연구개발(R&D) 지원 등이 포함된 국방수권법을 발효했다. 3월에는 반도체 제조시설에 약 500억달러(56조500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대표 등을 불러모아 미국내 반도체 투자를 독려했다.
중국은 '제조2025'를 통해 반도체 기업의 공정 난이도에 따라 세제 혜택을 주는 등 반도체 내재화 노력을 추진 중이다. EU도 글로벌 반도체 점유율 20% 달성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중이다. 반도체가 '전략무기'로 부각되면서 반도체 경쟁이 기업 중심에서 국가 간 경쟁으로 확대된 것이다.
각국 정부의 정책 변화에 발맞춰 주요 기업도 대규모 투자계획을 속속 내놓고 있다. 대만 TSMC는 3년간 1000억달러 투자를 발표했고, 인텔은 파운드리 분야 진출을 위해 200억달러의 투자 계획을 내놨다.
이 가운데 한국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시장점유율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지만 시스템반도체에서는 후발주자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팹리스 점유율은 2% 미만이며, 파운드리 점유율도 대만과 큰 격차를 보인다. 올해 1분기 파운드리 점유율은 TSMC가 55%, 2위인 삼성전자는 17%였다.
이런 가운데 최첨단 미세공정에 쓰이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TSMC가 싹쓸이 할 수 있다는 소식도 위기의식을 높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EUV 장비는 TSMC가 50여대, 삼성전자가 10여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조·공정 기술력 높지만 기반기술은 부족 = 이런 가운데 국내 반도체 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심으로 제조·공정 기술력은 높지만, 소재와 장비 등에선 아직 미국 일본 등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로 국내 반도체 업계가 소재 부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소재뿐 아니라 반도체 장비 시장도 같은 상황이다. 세계 반도체 장비시장에서 20위권 안에 드는 국내기업은 2개에 불과하다. 반도체 장비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장비기술은 미국과 일본 등이 장악하고 있다"며 "주요 5개 업체가 80% 이상을 장악한 독과점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 되면서 장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반도체 기술력에서 장비가 차지하는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덧붙였다.
반도체 설계를 하는 팹리스와 최근 주목받는 패키징 분야도 국내가 뒤처지고 있는 분야다. 팹리스 분야에서 한국은 수년째 세계시장점유율이 1.5%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다. 패키징에서도 첨단 분야는 대만이 선도하고 있다.
반도체 분야 인력부족과 중소·중견 기업의 우수인재 영입도 해결해야할 과제다. 2019년 기준 반도체 산업 인력부족은 연간 약 1500명 수준이다.
◆종합 반도체 강국 실현 가능할까 = 정부가 종합 지원책 'K반도체 전략'을 발표함에 따라 한국이 앞으로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반도체 업계와 전문가들은 정부와 업계가 힘을 합쳐 이번 대책을 실현해 나간다면 희망이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했다.
반도체 기업과 협회가 그간 정부에 꾸준히 요청해왔던 핵심 요구사항인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확대와 전문인력 양성 등이 지원책에 포함된 점에 반도체 업계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자동차 업계에선 이번 대책이 장기적으로 국내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기여할 수 있겠지만, 당장의 반도체 품귀 현상을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반도체 지원 대책이 일회성에 그쳐선 안 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이고 속도감있게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양대 박재근 융합전자공학부 석학 교수는 "시설투자 결정에서 실제 제품 양산까지 최소 5∼10년의 장시간이 소요되는 반도체산업 특성상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바뀌어도 연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반도체특별법' 법제화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선 국회가 '반도체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면서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히 풀고, 반도체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이 강화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학계에선 인력양성 중요성을 강조했다. 범진욱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지난 11일 한국과총이 개최한 반도체 대응전략 관련 토론회에서 "반도체 산업 기반조성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인력양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학생들을 보면 반도체가 중요하고 전망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너무 어려워 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교과과정에서 (반도체 기초가 되는)수학과정이 축소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관심이 쏠리고 있는 시스템반도체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강점이 있는 메모리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미래 기술지향적 연구개발과 현재 의 주력 산업을 뒷받침할 인력양성을 위한 연구개발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며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R&D를 위한 정부 투자가 절실해지고 있는 상황이며 많은 반성과 전략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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