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국산화율 20% … 반도체 강국 장애물"

2021-05-14 11:08:15 게재

국내 반도체 장비 존재감 미미

정부정책 소재·부품에 치우쳐

과감하고 지속적인 투자 절실

세계 반도체산업이 슈퍼사이클(대호황)을 맞았다. 수요는 급증하지만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정부도 13일 반도체 강국 실현을 위해 'K-반도체 전략'을 내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장비'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높지 않다. 반도체 제조 글로벌 선두권을 달리면서 반도체 장비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산업이 장치산업이라는 점에서 '장비' 경쟁력 없이 반도체 강국이 가능하겠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가 지난해 4월 발표한 글로벌 반도체 장비시장 규모는 2019년 기준 597억5000만달러(한화 약 67조원)이다. 올해는 반도체 초호황에 힘입어 8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급성장하는 반도체 장비시장에서 미국(어플라이즈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네덜란드(ASML) 일본(도쿄일렉트론) 등 4개사 비중이 60%를 차지한다.

이들 기업들은 반도체산업에서 '슈퍼 을'이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이들 4개사에 원할한 장비공급을 받기 위해 고개를 숙인다.

반면 반도체 장비시장에서 우리나라 존재감은 매우 미미하다. 국가별 반도체 주요 장비 기업별 시장점유율(2017년 기준)은 미국 44.7%, 일본 28.2%, 네덜란드 14.1%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3.6%에 불과했다. 주목할 점은 네덜란드는 ASML 단 하나 기업으로 14.1%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2020년 우리나라 반도체 장비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61% 늘어난 161억달러(약 18조3000억원)로 대만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하지만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다. 2020년 우리나라 반도체 장비 수입액은 138억1000만달러(약 15조5000억원), 수출액은 41억7000만달러(약 4조7000억원)로 높은 수입의존도를 보이고 있다.

반도체장비 국산화율은 20% 수준이다. 국내 반도체산업이 철저히 외국기업 손 안에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 반도체 장비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반도체 장비 경쟁력없이 반도체 강국이 가능하겠냐"면서 "제조장비는 여전히 기업 생산력을 좌우하는 핵심요소로 정부가 국내 장비경쟁력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반도체 소재 국산화율은 50%, 장비는 20% 수준이다. 부품 국산화율은 0%다.

반도체장비는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자본집약산업으로 장비의 안정적 확보가 생산을 좌우한다.

반도체 전 공정 장비인 극자외선(EUV)노광 장비의 경우 네덜란드 ASML이 세계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빅3(TSMC, 삼성전자, 글로벌 파운드리)의 생산 로드맵도 ASML에 달려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반도체 장비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가 우선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만태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금까지 정부의 반도체정책은 소재와 부품에 치우쳐 있었다"면서 "산업의 균형발전을 위해 장비에 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 선임연구원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인 지금이 투자의 적기"라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대만과 ASML도 초기에는 엉성했지만 지속적인 투자로 '슈퍼 을'이 됐다"며 "중소벤처기업들이 반도체 장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과감하고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호소했다.

ASML은 EUV 노광(실리콘 웨이퍼 위 반도체 회로 선폭을 빛으로 새기는 공정)장비 개발을 위해 회사가 무너질 위기에도 뚝심 하나로 수년을 버텼다.

2006년 처음 EUV 장비를 개발했을 때 가동성은 10% 미만이었다. 생산성은 시간당 웨이퍼 1장에 불과했을 정도로 사업성도 없었다. 하지만 지속적인 투자와 인내로 ASML은 EUV 노광 장비시장에서 100%를 점유하고 있다.

강창진 세메스 대표는 "반도체공정이 미세화되면서 장비역할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면서 "수요가 있는 장비에 대해 정부가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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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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