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금융스캔들 의혹 '그린실' 감사인 조사

2021-07-09 10:42:19 게재

영국에서 잘나가던 금융 스타트업체 몰락

캐머론 전 총리가 고문, 소프트뱅크 투자

에너지 기업 GFG얼라이언스도 조사받아

대형 금융스캔들 의혹이 일고 있는 '그린실 캐피탈'에 대해 영국 규제당국이 감사인 조사에 착수했다.

대형 금융스캔들 의혹을 받고 있는 그린실의 파산으로 그린실의 금융지원을 받아왔던 철강기업인 리버티 스틸은 영국 내 자산 매각을 포함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사진은 영국 북부 스톡스브릿지에 위치한 '리버티 스틸'의 철강공장 표지판. 사진 연합·AFP

9일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영국 재무보고위원회(FRC)는 지난달말 그린실 캐피탈의 2019년 재무제표 감사업무를 수행한 회계법인 사페리 챔니스(Saffery Champness)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사페리는 영국에서 매출 상위 20위권의 회계법인이다.

FRC는 사페리와 함께 그린실의 가장 큰 고객 중 한명인 인도계 영국인 부호 산지브 굽타가 소유하고 있는 와일랜즈(Wyelands) 은행에 대해 2019년 회계감사와 관련해 글로벌 빅4 회계법인 중 하나인 PwC를 조사하고 있다.

그린실은 올해 3월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으며 이번 조사는 이와 관련이 있다. 그린실은 자금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보험사들이 보험 보장 갱신을 거부하면서 문을 닫게 됐다.

굽타와 그의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영국 글로벌 광산업 및 에너지기업인 GFG얼라이언스(GFG Alliance)는 이번 조사로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

금융 스타트업 그린실 캐피털 파산 과정에서 영국 재무부에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가 지난 5월 런던의 자택으로 돌아오고 있다. 사진 연합·로이터

올해 5월 영국의 중대사기조사실(SFO)은 GFG 회사들을 대상으로 그린실과의 자금조달 계약을 포함한 사기 및 자금세탁 혐의에 대한 조사를 착수했다고 밝혔다. GFG는 어떠한 위법행위도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린실과 GFG의 자금 거래 과정의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린실은 '공급망 금융(supply chain finance)'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면서 성장했다. 일종의 무역금융으로 납품(수출)업자에게 물품대금을 할인해서 먼저 지급하고 나중에 주문(수입)업자에게 돈을 받아 차익을 얻는 투자 상품이다. 기존 금융회사들이 하던 서비스를 그린실이 온라인으로 처리하면서 그린실은 전도유망한 핀테크 기업으로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특ㅎ 그린실 캐피탈의 창업자인 그린실은 찰스 왕세자로부터 여왕 훈장을 받으면서 유명세를 탔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는 15억달러를 투자한 이후 추가로 4억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상장을 추진할 당시 그린실의 기업가치는 40억달러로 평가됐다.

하지만 공급망 금융은 코로나 사태 등으로 납품업체의 부도가 잇따르면서 위기를 맞았고 그린실은 악화된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GFG 회사들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2016년 굽타가 설립한 와일랜즈 은행과 함께 그린실에 의지했다. 와일랜즈는 굽타가 아내와 함께 소유한 웨일스 국가 부동산의 이름을 붙인 은행이다.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 조사에 따르면 와일랜즈는 굽타 사업에 자금 지원 역할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린실 파산과 관련해 고문을 맡았던 캐머런 전 영국 총리가 감독당국과 민간 금융회사를 상대로 그린실을 지원하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관계 스캔들로 사태가 번지고 있다. 그린실이 파산 하기 전에 캐머런이 정부의 코로나19 기업 대출 기관에 그린실을 포함시키도록 요청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영국 중앙은행은 그린실을 구제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캐머런은 또 영국 고위 관계자들에게 그린실이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린실은 파산신청 이전에 자금 2억달러를 미리 빼돌렸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크레딧 스위스는 그린실 펀드를 공동으로 운용했는데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고 그린실이 은행을 설립한 독일에서는 고객들이 예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린실의 실패로 굽타가 소유한 회사들이 흔들리면서 와일랜즈의 재무상태를 우려한 영국 중앙은행은 지난 3월 고객 예금을 상환하라고 명령했다.

앤드류 베일리(Andrew Bailey)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영국 국가범죄수사청도 와일랜즈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PwC는 이해 상충 가능성을 이유로 2019 년 11월 와일랜즈 감사인에서 물러났다.

사페리는 2015년부터 그린실의 감사를 맡았다. 1855년 런던에 설립된 사페리는 기업과 개인에게 재정, 세금 및 사업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합산 수수료 수입 45억달러를 올린 250개 이상의 회사로 구성된 넥시아 인터내셔널(Nexia International)에 속해있다.

그린실은 대차대조표의 규모와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중견 감사인의 서비스 가능범위를 능가했고, 지난해 그린실은 새 감사인을 구하기 위해 입찰을 진행했지만 대형 회계법인은 참여를 거부했다. 딜로이트, KPMG, BDO 등 주요 회계법인들은 이해상충이나 평판 상의 문제로 사페리를 대신해 그린실의 감사인으로 입찰하는 것으로 거절했다.

한편 PwC가 와일랜즈 감사를 그만둔 후 새 감사인이 된 마자르(Mazars)는 그린실의 2020년 4월에 종료 회계연도 감사에서 6950만파운드의 손실을 보고했다. 또 최근 회계장부에서 특수관계자 거래의 식별에 있어 내부통제상의 결함을 확인했다. 와일랜즈는 인수자를 찾지 못할 경우 문을 닫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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