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청봉 주인은 누구일까
산은 강처럼 그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지역과 지역을 나누는 경계선 역할을 해왔다. 산이 높고 험할수록 산이 나누는 지역의 단위도 자연스럽게 시ㆍ군ㆍ구, 시ㆍ도, 국가로 점점 넓어진다. 지역 사이의 경계선은 산의 능선과 그 일부분인 봉우리를 따라 이어진다
유명한 산은 자연적·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관광자원으로서 높은 가치를 갖고 있는데, 그 가치들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바로 주봉(主峯)과 정상표지석이다. 주봉과 정상표지석이 행정구역의 경계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를 두고 맞닿아 있는 지자체 사이에서 봉우리에 대한 관할권, 산 또는 봉우리 명칭을 행정구역 명칭으로 사용하는 행위, 지자체 이름을 새긴 정상표지석을 설치하는 행위 등을 두고 갈등을 빚는 경우가 있었다.
설악산 대청봉(1,708m)은 태백산맥에서 가장 높고 남한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서 강원도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다. 대청봉을 중심으로 속초시와 양양군, 인제군이 맞닿아 있는데, 최근 인제군이 설악산 대청봉 일대 지번 경계를 직권으로 정정하며 속초시, 양양군과 갈등을 겪고 있다. 대청봉을 둘러싼 세 지자체 사이의 갈등은 양양군이 2013년 대청봉 지번을 양양군 서면 '오색리 산1-24번지'에서 '오색리 산1번지'로 변경한 때, 그리고 양양군이 2016년 양양군 '서면' 명칭을 '대청봉면'으로 변경하려고 하였을 때도 있었다.
이와 같은 대청봉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세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봉우리는 점(点)이 아니라 면(面)이다. 즉 봉우리는 정상표지석이 세워진 산의 가장 높은 곳의 좁은 부분이 아니라 산에서 뾰족하게 높이 솟은 부분 일대를 의미한다. 대청봉은 정상표지석의 위치와 상관없이 이미 양양군 서면 오색리 산1번지, 속초시 설악동 산41번지, 인제군 북면 용대리 산12-21번지에 골고루 속해 있다. 따라서 세 지자체 모두 대청봉을 독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각자 대청봉을 시·군의 제1경(景)으로 내세워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둘째, 대자연이 만든 행정구역의 경계가 이미 명확하게 존재한다. 대청봉을 기점으로 동쪽으로는 화채능선이, 서쪽으로는 서북능선이, 북쪽으로는 공룡능선이 이어져 있다. 그리고 서북능선과 화채능선 남쪽인 남설악은 양양군의, 공룡능선 동쪽인 외설악은 속초시의, 공룡능선 서쪽인 내설악은 인제군의 행정구역에 속해 있다. 이처럼 설악산이 자연적으로 정해준 경계가 이미 명확하여 세 지자체가 그에 따라 행정구역 경계를 협의, 확정하면 된다. 인위적인 경계를 만들기 위해 서로 다툴 필요가 없다.
셋째, 대청봉의 행정구역에 대한 다툼에 실익이 없다. 지자체는 대청봉의 소유자나 점유자가 아니라는 점, 봉우리는 점이 아닌 면이라는 점, 세 개의 능선이 시작되는 대청봉의 지형적 특성을 고려할 때 어느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대청봉을 독점하는 것은 법적, 행정적으로 불가능하고 이치에 어긋난다. 세 지자체 모두 어느 한 지자체가 대청봉을 독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현재의 갈등을 유지해서 특별히 이득을 보는 지자체도 없다. 대청봉이 어느 지자체의 행정구역에 속하는지가 탐방객에게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설악산은 높고 면적이 광대할 뿐 아니라 지세가 가장 가파르고 험한 산이라 당일 산행이 매우 어렵다. 대청봉과 중청대피소 사이의 탐방로 거리는 600m에 불과하지만, 악천후가 심해 그 짧은 구간에서도 사망사고가 발생하곤 한다. 현재 대청봉 인근의 행정구역 경계 일치에 대한 지자체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중청대피소 개축 절차가 무기한 중단된 상태이다. 대청봉의 행정구역 다툼은 실익이 없지만, 행정구역 경계를 일치시키는 것은 중청대피소의 개축, 즉 탐방객의 안전과 직결되므로 큰 실익이 있다.
대청봉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봉우리인 지리산 천왕봉도 함양군과 산청군 경계에 있다. 그럼에도 천왕봉은 언제나 평화롭다. 대청봉의 일출처럼 조화롭고 아름다운 소식이 머지않아 국민에게 전해지길 기원해 본다.
길세철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