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빗썸’ 검사로 전환…“시장질서 완전히 흩뜨린 중대 사안”
미보유 비트코인 지급 경위와 시스템 집중 확인
금융시장과 연동성 커졌지만, 투자자 불안은 확산
금융회사와 동일 수준으로 규제 강화 필요성 커져
대주주 지분 제한, 금융권 진입 허용 가능성 높아져
금융감독원이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의 비트코인 오지급 사태와 관련해 10일 본격적인 검사에 착수했다. 7일 현장 점검에 나선 지 사흘 만에 검사로 전격 전환한 것이다.
1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전날 오후 6시쯤 빗썸에 검사 착수를 사전 통지하고 인력을 더 투입해 이날부터 검사에 돌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속하고 집중적인 사실 규명과 문제점 확인을 위해 검사 전환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빗썸 사태에 대해 “시장질서를 완전히 흩뜨린 중대 사안”으로 보고 있다.
전날 이찬진 금감원장은 “가상자산거래소의 정보시스템이 가진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며 “오입력이 가능한 전산시스템에 관해 집중적으로 우려하고 있으며 가상자산거래소 정보시스템 자체의 근본적 문제가 노출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원장은 “오입력된 데이터로 거래가 실현됐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금감원 검사는 빗썸이 보유하지도 않은 비트코인을 지급한 경위와 해당 거래가 가능한 시스템 구조를 확인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코인시장 충격이 금융시장으로 번지는 구조 = 빗썸이 보유한 비트코인은 약 4만2000개(작년 3분기 기준)로 회사 보유분 175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고객이 위탁한 물량이다. 하지만 빗썸은 이벤트 과정에서 고객에게 62만개의 비트코인을 지급했다.
미보유 코인을 지급했고, 실체가 없는 ‘유령 코인’인데도 거래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빗썸 등 가상자산거래소들의 ‘중앙화 거래소(CEX)’ 운영 방식 때문이다. 고객이 입금한 코인을 자체 지갑에 보관한 뒤 매매가 이뤄질 때마다 블록체인에 직접 기록하지 않고, 장부상 잔고만 변경하는 방식이다.
이번 빗썸의 비트코인 오지급 사태는 마치 거래소들이 코인을 발행할 수 있는 발권력이 있는 것처럼 투자자들이 인식하게 만들었고, 코인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을 키우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한때 비트코인 가격은 개당 12만달러를 넘어섰지만 최근 6만달러로 반토막이 나면서 전 세계 코인 투자자들의 공포감은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빗썸 사태가 여기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
코인시장은 갈수록 금융시장과의 연동성이 커지고 있다. 코인시장 붕괴는 단순히 코인 투자자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금융시장의 패닉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견한 미국 공매도 투자자 마이클 버리는 비트코인 가격 하락이 기업의 피해로 이어지는 ‘죽음의 소용돌이’로 심화할 수 있다고 최근 경고했다.
미국 등 주요국에서는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금융시장에서 코인 시장으로 막대한 자금이 유입돼 있는 상태다.
국내에서도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을 통해 ETF와 스테이블 코인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금융시장과의 연동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상자산 시장의 규제 수준을 금융회사에 준할 정도로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상자산 시장은 자본시장과 비슷하지만 규제 수준을 놓고 보면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고 봐야 한다”며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부분들을 충분히 보완할 필요성이 있고, 이는 규제 강화가 아닌 규제 정상화”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가상자산 2단계 법안을 통해 금융회사에 준하는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를 가상자산거래소에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가상자산거래소의 대주주 의결권 지분을 15~20%로 제한하는 방안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가상자산업계와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법안 마련이 지연되고 있지만 빗썸 사태가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은행과 보험은 비금융사 지분을 15% 이상, 증권은 20% 이상 소유할 수 없다. 이 같은 금산분리 기조 하에서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의 지분을 제한하지 않을 경우, 가상자산거래소는 지금과 같이 비금융사업자 중심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구조가 상당히 위험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현재 금융권이 진출할 수 없도록 막혀 있는 장벽을 허물어서 경쟁 체제를 형성할 경우 투자자보호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하고 있다.
◆오지급 비트코인 매도한 투자자 민·형사 책임지나 = 빗썸 사태는 또 투자자 피해와 다양한 법적 분쟁을 촉발시켰다. 오지급 비트코인 대부분을 회수했지만 1788개는 시장에서 매도됐다.
금융당국은 오지급 코인을 매도한 이용자를 86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빗썸은 매도된 비트코인 중 상당 부분을 원화나 다른 코인 형태로 회수했다. 하지만 비트코인 125개(약 130억원) 상당은 되찾지 못했다. 일부 투자자는 이미 은행 계좌로 30억원 가량을 출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빗썸은 매도 고객들을 상대로 반환을 설득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이 반환을 거부할 경우 빗썸의 법적대응이 불가피하다.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을 통해 빗썸이 승소할 경우 ‘원물 반환 의무’에 따라 비트코인을 사서 돌려줘야 한다.
사고 당일 오지급된 비트코인 1788개가 빗썸 거래소에서 매물로 쏟아지면서 1개당 9500만원대였던 비트코인 가격은 한때 8111만원까지 급락했다. 10일 오전 기준 1억300만원으로 상승한 만큼 8000만원대에 팔았다면 2000만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이찬진 금감원장이 코인을 팔아 현금화한 투자자들에게 ‘재앙적인 상황’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점유이탈물 횡령’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2021년 12월 대법원은 알 수 없는 경위로 15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이체 받은 뒤 이를 자신의 계정으로 옮긴 혐의(횡령과 배임죄)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가상자산의 경우 관련 법률에 따라 법정화폐에 준하는 규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4년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으로 규제 체계가 갖춰지는 등 법원이 다시금 판단을 할 수 있는 변화가 생겼다.
한편 빗썸도 투자자에 대한 배상 책임이 발생했다. 비트코인의 시세 급락으로 코인 담보 대출(렌딩) 서비스 이용자들이 강제청산을 당했기 때문이다. 렌딩 서비스를 이용하던 계좌 64개에서 담보 가치 하락에 따른 강제청산이 발생한 것으로 금융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빗썸은 고객 손실을 전액 보상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사고 시간대인 지난 6일 오후 7시30분~7시45분 비트코인을 저가에 매도한 이용자를 대상으로 매도 차액 전액과 10% 추가 보상을 지급하겠다는 방안도 밝혔다. 다만 보상액 산정 기준이 될 시세 등을 어떻게 정할지를 놓고 투자자들과 또 다른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