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새로운 수령의 등장과 김정은주의
최근 북한에는 '김정은주의'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그리고 김정은을 '수령'으로 지칭하기 시작했다. 김정은주의와 김정은의 수령 지칭은 김정일시대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현상이다. 김정일은 생존 시 수령으로 호명된 적이 없다. 사후인 2012년 '영원한 수령'으로 추대되며 김일성과 함께 '선대 수령님들' '위대한 수령님들'로 지칭됐다. 김정일의 이름을 붙인 '주의'도 존재하지 않았다. 김정은 시대 들어 김일성-김정일주의가 공식화됐을 뿐이다.
김정일은 생전에 김일성만이 북한의 유일하고 영원한 수령이고, 유일한 수령인 김일성만이 독자적인 혁명사상을 창시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김정은은 집권과 함께 김정일주의를 공식화하며 김정일을 수령으로 추대, 혁명사상을 수립할 수 있는 주체로 위치지웠다.
북한에서 수령은 혁명의 지도사상과 지도이론을 창시하는 사명을 갖고, 후계자는 수령의 혁명사상을 고수관철, 발전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이에 수령인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창시하고 후계자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김일성주의를 확립하고 고수해왔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김정은도 김정일주의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후계자의 역할을 담당해왔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김정일은 혁명사상을 창시할 수 있는 수령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후에 수령으로 추대함으로써 기존의 논리구조를 따랐다.
집권 10년, 새로운 수령과 김정은주의 등장
그런데 지금 김정은은 후계자로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고수, 심화발전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혁명사상인 김정은주의를 등장시켰다. 그리고 혁명사상을 제시할 수 있는 존재인 수령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북한의 이러한 시도가 김정은 집권 10년,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첫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등장했다는 것은 대내외적 어려움 속에서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주민들의 충성을 독려하며 과거와 다른 미래를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새로운 수령과 김정은주의는 그 위상을 이어갈 수 있을까? 과거 북한에서 수령은 절대권력이자 무오류의 존재였고 김일성주의는 정치·경제·군사·사회·문화 전반에서 강력한 통치성을 가진 이데올로기였다. 수령과 김일성주의가 절대적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는 김일성의 항일투쟁 역사와 이를 바탕으로 한 신격화, 그리고 보상체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수령과 김정은주의가 등장한 지금은 과거와 같은 보상을 돌려주기는 힘들다. 그리고 김일성과 김정일을 신격화했던 수많은 역사적 일화를 김정은에게 적용할 수도 없다. 그래서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방식이나 통치담론은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여왔다.
2017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자책하는 최고지도자의 모습을 연출했다.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을 했다"며 공식 석상에서 밝혔다. 그동안 북한에서 최고지도자는 자신의 잘못이나 부족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거나 눈물을 보인 적이 없다. 그런데 김정은은 인민을 생각하며 안타까워하는 최고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김정은은 집권 이래 인민을 위한 정치로서 인민대중제일주의를 강조해왔고, 지난 1월 조선노동당 제8차 당대회에서 조선노동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기본 정치방식으로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명시했다.
추측컨대 김정은 시대의 수령은 절대적 권한과 무오류성을 가진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민을 먼저 생각하고 인민에 헌신하는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한 우상화작업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수령의 지위나 임무도 달라질 수 있다.
인민대중제일주의 구체화하는 수준일 듯
김정은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김일성주의 같은 체계화된 이데올로기를 제시한다기보다 기존에 강조해왔던 이민위천 위민헌신 등 담론적 차원에서 김정은주의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우고, 인민대중제일주의를 구체화하는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있다. 북한 주민이 새로운 수령과 김정은주의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존재로서 수령, 현실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집권 10년째 등장한 새로운 수령과 김정은주의가 북한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동력이 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