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국민의힘 쇄신 막는 1198억원
2004년 3월 24일. 그해 4.15 총선을 불과 22일 앞두고 제1야당 한나라당 지휘봉을 잡은 박근혜 대표는 국회 앞 ‘호화당사’를 버리고 여의도 허허벌판에 천막당사를 지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역풍으로 존폐위기에 몰려 있었다. 막대한 불법 대선자금 수수로 ‘차떼기당’이란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총선에서 50석도 어렵다고 봤다.
박 대표는 천막당사를 통해 쇄신의 진정성을 알리려 했다. 승부수는 통했다. 한나라당은 121석을 얻었다. 박 대표는 1년 뒤에는 당이 보유한 천안연수원을 국가에 헌납했다. 한나라당이 2002년 대선 당시 수수한 불법자금을 웃도는 금액이었다. 천막당사와 연수원 헌납으로 빈털터리가 된 한나라당은 마침내 국민으로부터 용서 받았다. 2007년 대선에서 10년 만에 정권을 탈환했다.
2026년 6.3 지방선거를 30일 앞둔 국민의힘의 상황은 2004년 3월의 한나라당보다 나을 게 없다. 국민의힘이 배출한 윤석열 전 대통령은 불법계엄으로 탄핵됐다. 그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 와중에 국민의힘은 ‘절윤(윤석열과의 절연)’은커녕 ‘윤 어게인’에 끌려 다니고 있다.
국민의 외면은 당연한 결과였다. 4월 마지막주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21%를 기록했다. 민주당(46%)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4월 28~30일, 무선전화면접,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3.1%,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지방선거 참패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2026년의 국민의힘은 천막당사도, 연수원 헌납도 하지 않고 있다. 이 정도가 되면 의원들 입에서 “국민의힘 간판으론 도저히 안되겠다. 벌판으로 나가 새로 시작하자”는 얘기가 나올 법 한데 106명 의원 누구도 보따리 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박근혜 탄핵심판 과정에서 이뤄진 2017년 ‘바른정당 모험’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는 잊혀진 역사일 뿐인 것 같다. 왜 일까. 정권은 빼앗겼지만 가진 게 많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2024년 선관위에 신고한 회계 내역을 보면 중앙당 재산이 무려 1198억원에 달한다. 민주당(657억원)의 두 배 가까이 된다. 1198억원 중 토지(642억원)와 건물(215억원) 등 부동산이 857억원이다. 재산이 1000억원대에 달하고 수백억 ‘호화당사’에서 지내니 “야당이라 춥고 배고파서 못 살겠다. 열심히 해서 정권을 되찾자”는 얘기가 나올 리 없다. 의원 누구도 막대한 재산을 포기하고 허허벌판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2026년 국민의힘에게서는 2004년 한나라당이 보여준 쇄신의지도, 헝그리정신도 찾기 어렵다. 1198억원 재산을 깔고 앉아 무위도식하는 ‘배부른 돼지’가 떠오른다면 지나친 비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