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국민의힘 쇄신 막는 1198억원

2026-05-04 13:00:07 게재

2004년 3월 24일. 그해 4.15 총선을 불과 22일 앞두고 제1야당 한나라당 지휘봉을 잡은 박근혜 대표는 국회 앞 ‘호화당사’를 버리고 여의도 허허벌판에 천막당사를 지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역풍으로 존폐위기에 몰려 있었다. 막대한 불법 대선자금 수수로 ‘차떼기당’이란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총선에서 50석도 어렵다고 봤다.

박 대표는 천막당사를 통해 쇄신의 진정성을 알리려 했다. 승부수는 통했다. 한나라당은 121석을 얻었다. 박 대표는 1년 뒤에는 당이 보유한 천안연수원을 국가에 헌납했다. 한나라당이 2002년 대선 당시 수수한 불법자금을 웃도는 금액이었다. 천막당사와 연수원 헌납으로 빈털터리가 된 한나라당은 마침내 국민으로부터 용서 받았다. 2007년 대선에서 10년 만에 정권을 탈환했다.

2026년 6.3 지방선거를 30일 앞둔 국민의힘의 상황은 2004년 3월의 한나라당보다 나을 게 없다. 국민의힘이 배출한 윤석열 전 대통령은 불법계엄으로 탄핵됐다. 그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 와중에 국민의힘은 ‘절윤(윤석열과의 절연)’은커녕 ‘윤 어게인’에 끌려 다니고 있다.

국민의 외면은 당연한 결과였다. 4월 마지막주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21%를 기록했다. 민주당(46%)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4월 28~30일, 무선전화면접,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3.1%,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지방선거 참패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2026년의 국민의힘은 천막당사도, 연수원 헌납도 하지 않고 있다. 이 정도가 되면 의원들 입에서 “국민의힘 간판으론 도저히 안되겠다. 벌판으로 나가 새로 시작하자”는 얘기가 나올 법 한데 106명 의원 누구도 보따리 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박근혜 탄핵심판 과정에서 이뤄진 2017년 ‘바른정당 모험’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는 잊혀진 역사일 뿐인 것 같다. 왜 일까. 정권은 빼앗겼지만 가진 게 많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2024년 선관위에 신고한 회계 내역을 보면 중앙당 재산이 무려 1198억원에 달한다. 민주당(657억원)의 두 배 가까이 된다. 1198억원 중 토지(642억원)와 건물(215억원) 등 부동산이 857억원이다. 재산이 1000억원대에 달하고 수백억 ‘호화당사’에서 지내니 “야당이라 춥고 배고파서 못 살겠다. 열심히 해서 정권을 되찾자”는 얘기가 나올 리 없다. 의원 누구도 막대한 재산을 포기하고 허허벌판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2026년 국민의힘에게서는 2004년 한나라당이 보여준 쇄신의지도, 헝그리정신도 찾기 어렵다. 1198억원 재산을 깔고 앉아 무위도식하는 ‘배부른 돼지’가 떠오른다면 지나친 비판일까.

엄경용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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