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바꾼 이재명의 '외로운 결단', 약일까 독일까

2021-12-01 11:28:27 게재

재난지원금 접은 후 국토보유세도 여지 남겨

숙의 통한 합의 보다는 '개인적 판단'에 의존

주변 조언 귀기울이기 앞서 "성공경험 중시"

'과정' 중심 소통보다 '결과' 중심 실용 선택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후보 앞에는 '돌진형' '돌파형' 등 강한 단어들이 수식어로 따라붙는다. 난관에 맞닥뜨려도 강력한 추진력으로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얘기이고 이를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때 보여줬다는 설명도 같이 나온다. 이는 스스로 인정하고 강점으로 내세우는 부분이다. 한편에서는 이 후보가 융통성이 없고 독선적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자신의 생각만 밀어붙이고 주변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그에게서 새로운 면모가 발견됐다.

기업형 메이커 스페이스 'N15' 살펴보는 이재명 후보│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3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 위치한 기업형 메이커 스페이스 'N15'를 방문해 류선종 대표(검은마스크)의 안내를 받으며 공간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먼저 만난 현장은 이 후보가 전격적으로 제안한 '전국민재난지원금 철회'였다. 지난달 18일 이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야당이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반대하고 있다. 정부도 신규 비목 설치 등 예산 구조상 어려움을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며 "우리가 각자의 주장으로 다툴 여유가 없다. 지원의 대상과 방식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했다.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 논의는 추후에 검토해도 된다"고 했다.

여론조사에서도 다수가 전국민재난지원금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제시됐고 행정부(기획재정부), 국가경제정책연구기관인 KDI(한국개발원), 야당(국민의힘, 정의당, 국민의당)이 모두 반대하는 상황이었다. 당 내부에서도 반대의견이 적지 않았다. 청와대도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암묵적 반대로 이해됐다. 이 후보는 고집하기도 어려웠고 고집한다해도 달성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 당의 부담을 덜어준 게 이 후보의 결단이었다.

두 번째는 최근에 나온 '국토보유세 철회 가능성'이다. 이 후보는 지난달 29일 채널A 방송에 출연해 국토보유세에 대해 "다만 불신이 많고 오해가 많기 때문에 국민 동의를 전제로 추진할 것"이라며 "증세는 국민들이 반대하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답다" = 여당에서는 이 후보의 의견 철회를 현실성을 고려한 유연함으로 해석했다. 박용진 의원은 "합리적이고 적절한 의견이 있으면 반영하고 수정하는 것이 좋은 일이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고 했고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역시 "국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더 나은 공약이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굉장히 환영할 일"이라고 했다.

이 후보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성호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재명 답다"고 표현했다. 정 의원은 "철학과 원칙은 분명하지만 정책을 집행함에 있어서는 현실 여건에 맞게 유연하게 한다"며 "고심 끝에 이재명 후보는 재난지원금 지급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하였다"고 해석했다.

◆과정이 결과를 만든다 = 지도자는 '고독한 결단'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무엇이 '결단'을 하게 만들었는가다.

선대위 핵심관계자는 "이 후보는 스스로 결단해야 바뀐다"면서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어서 결단하는 게 아니다"고 했다. 결과는 '바뀌는 것'이지만 과정이 다르다는 얘기다. 쟁점에 대한 조언이나 토론과 숙의 과정을 거쳐 판단하고 수용하기 보다는 자신의 판단에 의존해 결정한다는 설명이다. 거기엔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의 성공경험이 토대로 앉아있다.

여당 핵심관계자는 "이 후보는 실용성 측면에서 정책을 보면서 그때그때 판단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이에 맞춰 자신의 스탠스를 바꾸기도 한다"며 전략적이고 기민한 결정과 행보를 높이 평가했다.

◆개인기냐, 집단지성이냐 = 이 후보의 실용주의가 '결과주의' '성과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토론과 설득을 위한 절차를 중시하는 민주주의가 '시간 낭비'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책을 쉽게 내놓고 쉽게 거둬들인다는 것 뿐만 아니라 국민의 뜻이라는 이유로 후퇴한다는 것도 적절치 않다"면서 "정책을 내놓을 때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많은 경우의 수 등을 고려한 다음에 내놓아야 하고 그래서 이를 토대로 충분히 국민들과 반대하는 쪽을 설득하려고 해야 한다. 국민 여론조사에 따라 정책을 정하는 것은 포퓰리즘"이라고 했다. 그는 "성과주의는 결과로 말하겠다는 것인데 민주주의는 과정이며 이 과정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면 결과도 좋지 않게 된다"면서 "성과주의로 한두 개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지만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낳기 어렵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라고 했다. "180석 가까운 의석으로 민주당이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밀어붙이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 대화와 타협의 과정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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