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기업의 비밀│(40) 지에프아이

소화용 마이크로캡슐 제조 세계 유일 … 원천기술 확보

2021-12-01 11:18:53 게재

작은 불씨도 스스로 감지해 초기 진화

패드 필름 등 브랜드 '이지스' 제품 다양

대기업 ESS 화재 후 방지용으로 장착

지난해 발생한 화재는 3만8659건이다. 하루 평균 106건의 화재가 난 셈이다. 화재로 입은 재산피해액은 5903억원에 이른다. 화재는 늘 작은 불씨에서 시작한다. 작은 불씨를 스스로 인지해 자동으로 진화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 망상(妄想)에 빠졌다. 4년간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해법을 모색했다. 가지고 있던 돈이 바닥날 무렵 허황된 생각은 신기술로 탄생했다. 대량생산체계를 갖췄다.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를 겪은 대기업의 소방수로 나섰다.
이상섭 지에프아이 대표가 지난달 27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소화용 마이크로캡슐 제조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김형수 기자


바로 '소화용 마이크로캡슐'을 개발한 이상섭 지에프아이(GFI) 대표다.

지에프아이의 마이크로캡슐은 머리카락 1개 굵기인 150~200마이크로미터(μm) 크기의 작은 알갱이다. 이 알갱이 속에 소화약제가 들어가 있다. 소화약제는 일명 '젖지 않는 물'로 불리는 미국 3M사의 노벡(Novec 1230)이다. 노벡은 기화성이 매우 강해 완벽히 밀봉해야 한다.

지에프아이는 기밀융합방법을 찾았다. 화재에 잘 반응하는 물질로 노벡을 알갱이 안에 가둔다. 기계도 자체 개발해 대량생산체계를 갖췄다. 캡슐 크기를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

마이크로캡슐 개발과정에서 소화약제 캡슐화제조기술 등으로 17건 특허를 획득했다. 4건 특허도 출원한 상태다. 재난안전제품인증, 녹색기술인증, 방재신기술(NET) 인증 등을 확보했다.

3M도 놀랬다. 지에프아이의 마이크로캡슐을 믿지 않았다. 3M도 시도했지만 실패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3M은 2년간 자체 검증을 하고나서야 마이크로캡슐을 인정했다. 관련 내용은 3M 홈페이지에 자세히 소개됐다.

"소화용 마이크로캡슐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지난달 27일 경기 김포에 위치한 회사 본사에서 만난 이상섭 대표 말에는 자신감이 우러났다.

이 대표 자신감은 마이크로캡슐의 효능과 기술력에 근거하고 있다.

마이크로캡슐은 작은 불씨의 열기에 즉각 반응해 터지면서 불씨를 끈다. 알갱이 속에 액체 상태로 있던 소화약제는 노출 즉시 기화돼 화재 이후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소화약제로 인한 오염 우려가 없고 친환경적이다. 국제연합(UN)에서도 친환경 소화약제로 인정했다.

무엇보다 설치가 간편하고 센서 등 기계식이 아니라 전원도 필요없다. 사람의 개입없이 캡슐이 스스로 터져 불씨를 끈다. 가격도 저렴해 경쟁력을 갖고 있다.

"기존에 스프링클러나 소화기, 화재알림 시스템 같은 소방 관련 기술과 차원이 다른 새로운 기술이다. 오작동 없이 초기에 작은 불씨를 진압하는 완벽한 화재진압기술이다."

제품 브랜드명은 '이지스'(AEGIS)다. 이지스는 제우스가 아테나신에게 준 방패 이름이다. 벼락에도 끄떡없는 완벽한 방패다. '이지스'는 어떠한 불씨도 완벽히 막아내는 스마트 안전방패라는 의미인 셈이다.

이지스 제품은 이미 다양하게 개발됐다. 패드형 필름형 테이프형 와이어형 블록형 커버형 등 용도에 따라 다양하다.

3×2㎝ 크기의 작은 스티커 하나엔 8만개 정도의 마이크로캡슐이 들어 있다. 이 스티커 하나면 각 가정에 있는 전기분전함을 충분히 감당한다. 가정 기업 병원 전통시장 지하상가 지하철역사 요양시설 등의 콘센트 분전함 모터박스 등에 스티커를 붙여놓기만 하면 된다. 소비자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자동소화 멀티탭, 자동소화 콘센트 등은 출시해 판매를 시작했다.

이지스 신기술은 2013년 이 대표의 망상에서 시작됐다. 그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화학소재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 '로스쿨'을 졸업했다. 현지에서 로펌을 운영한 전형적인 문과 출신이다.

"러시아에 있던 2013년 산드라블록 주연의 영화 '그래비티'를 보다가 '우주선 화재는 어떻게 끄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는 언론보도에서 접한 마이크로캡슐을 떠올렸고, 캡슐에 소화약제를 집어넣는 방법을 고민했다. 대기업에서 '고분자 합성수지' 영업을 한 경험 덕이다. 러시아 대학교수와 국내 전문가들을 찾아 제조와 대량생산 방법을 모색했다.

2014년 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했다. 수년이 지나 기계를 개발하고 제품을 내놓았지만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적자만 쌓였다. 2017년에는 5억8000만원 적자를 기록했다. 매출은 고작 1억7000만원이었다. 벌어놓은 돈 30억원과 지인들의 50억원이 개발에 들어갔다. 적자 속에서도 생산설비 성능을 높였다.

기회가 왔다. ESS 화재를 경험한 대기업이 화재방지용으로 이지스를 선택했다. 매출이 급성장했다. 올해 매출은 366억원, 순이익은 135억원으로 예상된다. 7명이던 직원도 30명으로 늘었다. 소문이 나면서 대기업 직원이 지에프아이로 이직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지스가 소중한 목숨과 재산을 지키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이제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문과 출신 이 대표는 "인류 안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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