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공공기관 'ESG 강화' 선언에 그쳐

2021-12-17 15:51:50 게재

실효성 있는 변화·정보공개 없어 평가 어려워

TCFD 지지 9곳 … 공시이행 기업은행 한 곳뿐

주요 금융 공공기관들이 'ESG 강화'를 밝혔지만 선언에만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실효성 있는 변화나 정보공개가 이뤄지지 않아 평가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일례로 TCFD(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전담협의체)에 공식적인지지 선언 기관은 9곳이었지만 실제 TCFD 권고안에 따른 정보공개를 이행한 곳은 기업은행 한 곳뿐이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금융 공공기관의 ESG 관련 정보공개가 상당히 부족하다며 ESG 공시강화와 이에 대한 모니터링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금 운용 권한이 있거나 정책금융 역할을 하는 금융 관련 공공기관은 민간 금융사 못지않게 자산배분 기능을 통해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며, 이런 변화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이나 ESG 관련 이행사항에 대한 정보공개와 공시 확대가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관리·감독하는 곳 없어 = 경제개혁연구소는 16일 '금융 관련 공공기관의 ESG 경영현황' 보고서를 통해 "대부분의 금융 공공기관이 ESG 경영 강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실효성 있는 변화나 이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특히 기후변화 대응, 기후위기 감독을 주요 과제로 제시하면서도 실제 위험관리 차원에서 기후위기를 관리·감독하는 공공기관은 확인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번 보고서는 국회 장혜영 의원(정의당, 기획재정위원회)이 지난 10월 국정감사 때 금융 관련 공공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투자 포트폴리오를 기초로 탄소집약도 등 지표를 산정한 공공기관은 한 곳도 없었고, 기후변화 관련 스트레스 테스트를 수행했다고 답변한 기관은 기업은행이 유일했다. 사학연금,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한국투자공사 등은 TCFD(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전담협의체)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를 선언했지만 11월까지 TCFD 권고안에 따른 정보 공개를 이행한 곳은 기업은행 1곳뿐이다. 기후변화에 관련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제로 진행했다고 보고한 곳도 기업은행뿐이다. 스트레스 테스트란 예외적이지만 발생 가능성이 있는 사건에 대해 금융시스템이 받게 되는 잠재적 취약성 및 손실을 측정함으로써 안정성을 평가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금융기관이 투자한 회사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입을 경우 금융시스템이 받게 되는 잠재적 손실을 측정하고 재무 건전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국민연금 TCFD지지 선언 불참 = 금융 관련 공공기관의 ESG 관련 국제협약 가입 및 지지 선언 현황을 보면 TCFD 지지 선언이 10곳으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아직 TCFD 지지 선언을 하지 않은 상황이다.

'CDP(탄소공개프로젝트)'에 가입한 곳은 공무원연금, 기업은행 2곳, '탈석탄'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기관은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3곳으로 나타났다. 기업은행은 올해 4분기 탈석탄 선언 예정이라고 답변했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않았다. 다만 기업은행은 UN EPFI(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 및 UN PRB(책임은행원칙)에 가입한 가운데 올해 9월에는 국제연합(UN)이 주도하는 '탄소중립 은행 연합'(NZBA)에도 유일하게 가입했다.

대부분의 금융 공공기관이 올해 들어 ESG 위원회 등의 조직을 구축했으나 운영까지 활성화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며, 관련 정보공개는 상당히 부족한 상태다. 보고서에 따르면 17개 공공기관 중에서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사학연금 등 10개 공공기관이 ESG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거나, 올해 안에 운영할 예정이다. 다양한 형태의 ESG 관련 부서를 운영하는 곳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국민연금 등 8개 기관이다.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무역보험공사 및 근로복지공단은 ESG위원회와 관련 전담 부서를 모두 운영하고 있다.

◆기업은행, 가장 적극적 = 노종화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공공 금융기관 중에서는 기업은행이 가장 적극적으로 각종 국제 협약이나 원칙에 참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주요 공공기관의 ESG 정보공개 현황을 보면 기업은행이 유일하게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다. 기업은행은 GRI 기준의 핵심적 부합 방법을 비롯해, SASB(지속가능성 회계기준위원회)를 반영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작성했고, 특히 TCFD 권고안(기본지침)을 충족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TCFD 권고안에 따른 공시를 이행한 곳 또한 기업은행 1곳뿐이었다.

노 연구위원은 "조사 대상 중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 완전한 형태의 ESG 공시를 한 곳은 기업은행 1곳"이라며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국민연금 등은 '수탁자 책임 이행 내역 공시'를 이행하고 있지만, ESG 정보공개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고, 한국투자공사는 '지속가능투자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지만, 국제지속가능성 보고기준인 GRI 등 국제표준이나 지침에 따른 것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한편 기후변화 관련 이슈를 실제로 위험관리 차원에서 적극 관리·감독하는 공공기관이 확인되지 않았다. 노 연구위원은 "기업은행만이 대출 대상인 중소기업을 상대로 기후변화 관련 스트레스테스트를 수행했다고 밝혔고,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 중심으로 기후리스크 관리를 준비하는 중으로 보인다"며 "기후위기의 시급성이나 중대성을 고려할 때, 대응이 소극적이거나 형식적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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