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유니콘 급속성장, 작년 2배 늘어
모바일결제·전자상거래·신속배달 등 두각 … 도시화·디지털화 속도, 투자 몰려
#. 태국 첫 유니콘 기업인 플래시익스프레스는 의뢰인의 자택이나 사무실까지 '문앞에서 문앞까지'라는 기치를 내걸고 택배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억5000만달러의 자금을 조달하고 인근 나라인 라오스에 진출하는 등 해외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지역내 스타트업, 지난해 32조원 유치
동남아시아 국가의 신흥 스타트업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 싱가포르 미디어기업인 '딜스트리트아시아'에 따르면, 2021년 동남아시아 각국의 신흥기업이 조달한 자금은 257억달러(31조9330억원)로 전년도의 2.7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들 가운데 지난해 새롭게 유니콘 기업으로 분류된 기업은 모두 25개사에 이른다. 유니콘은 기업가치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넘는 비상장 기업을 말한다.
동남아 각국의 유니콘은 2020년까지 모두 21개사 정도였는데, 지난 한해만 기존 규모를 넘어서는 스타트업이 유니콘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CB인사이츠'가 올해 1월 발간한 '벤처 리포트 2021'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현재 전세계 유니콘기업은 959개로 전년도(569개)보다 390개나 늘었다.(10일 현재 CB인사이츠 홈페이지는 41개를 추가해 1000개로 추산함)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별 유니콘은 △미국 494개 △아시아 295개 △유럽 117개 △남아메리카 27개 △기타 26개 등으로 분석됐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170개로 가장 많고, 인도(55개)와 한국(11개) 등이 뒤를 잇는 가운데 아세안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 국가가 46개에 달했다. 디지털화가 상대적으로 뒤처진 일본은 6개에 불과했다.
동남아시아 유니콘의 업종 다양화도 두드러진다. 지난해 자금을 조달한 968건 가운데 301건이 모바일 결제 등 핀테크 분야였다. 전자상거래(EC)가 114건으로 뒤를 이었고, 교육 및 의료 관련도 각각 50건, 게임 관련 자금조달 건수도 40건을 넘어섰다.
이전까지 동남아시아 유니콘은 싱가포르 차량공유기업인 '그랩'과 인도네시아의 '고젝' 두곳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했다. 실제로 2020년 두 회사는 모두 94억달러의 자금을 모으는 저력을 발휘했다. 특히 그랩이 지난해 4월 나스닥 상장을 선언하고(12월 상장), 5월에는 고젝도 인도네시아 전자상거래 기업인 '토코페디아'와 경영통합과 함께 상장 계획을 발표하면서 전세계 투자자금이 동남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그랩과 고젝으로 자금이 몰리는 사이에 투자자들 사이에서 '다음 그랩, 다음 고젝'을 찾는 움직임이 빨라졌다"면서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이외의 국가에서도 유니콘이 생겨나는 기회가 조성됐다"고 분석했다.
젊은 중산층 확대, 국가적 스마트시티 개발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핀테크와 전자상거래, 차량공유업체 등 다양한 분야의 유니콘이 성장하는 데는 빠른 경제성장과 함께 도시화와 디지털화가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지난해 6월 발표한 '아세안 주요국의 디지털경제 동향'에 따르면, 아세안 각국은 2025년까지 3450만명이 새롭게 도시로 이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싱가포르와 태국은 상대적으로 인구의 고령화가 빨라지고, 베트남과 미얀마 등을 중심으로 중산층이 새롭게 출현해 향후 아세안의 인구구조와 밀집도는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각국은 다양한 형태와 방식의 스마트 도시 계획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필리핀의 '디지털 필리핀 이니셔티브'와 싱가포르의 '스마트 네이션 이니셔티브' 등이 대표적이다. 아세안 10개국은 이런 식으로 2025년까지 35개의 스마트시티를 조성할 계획이다.
각국은 특히 데이터센터(DC) 유치와 건설에 사활을 걸고 경쟁하고 있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인도네시아에 DC를 세우기로 결정했고, 베트남 대기업인 FPT텔레콤이 호치민에 DC를 건설하기로 하는 등 데이터 허브를 노린 국가와 도시간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 부동산 서비스업체 쿠시만앤웨이크필드는 동남아 지역의 DC시장 성장률이 2024년까지 연평균 12.9% 수준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아시아·태평양지역 12.2% △유럽 11.1% △북미 6.4% 등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도시별로는 △자카르타 21.8% △하노이 14.5% △마닐라 14.2% 등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도시화와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과정에서 모험적인 스타트업과 유니콘이 생겨나는 토양이 마련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 물류 및 택배기업인 'J&T익스프레스'는 창업 5년 만인 2020년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5개국에서 중국 업체를 밀어내고 택배 분야 1위에 올랐다. 택배 배송에 평균 4~5일 걸리던 동남아시장에서 익일 배송서비스를 도입해 고객을 사로잡았다. 이 업체의 현재 기업가치는 최대 200억달러(약 24조원)까지 추산하고 있고, 이르면 올해 나스닥 상장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싱가포르 팻스냅은 인공지능(AI)으로 전세계 특허와 과학논문을 분석해 테슬라와 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 1만곳에 신제품 전략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비전펀드는 지난해 팻스냅 등에 잇따라 출자하기도 했다.
IT업계에서는 동남아 인구가 6억7000만명으로 유럽과 북미보다 많으면서 평균 연령이 30세 안팎으로 젊다는 점을 주목한다. 전자상거래와 모바일앱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많기 때문에 테크사업이 번창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는 평가다.
실제로 이 지역은 다른 곳에 비해 인터넷과 SNS 이용시간이 길어 갈수록 데이터 소비량이 늘어날 전망이다. 영국 조사회사 위아소시알에 따르면, 필리핀의 인터넷 이용시간은 하루 약 11시간으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도 각각 9시간, 7시간에 이른다.
베트남 스마트폰결제업체 M서비스의 구엔 만 톤 부회장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이미 베트남에서는 지방까지 스마트폰이 널리 활용되고 있지만 앞으로 10년간 모바일 혁명은 계속될 것"이라며 "베트남의 모바일 결제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정부가 자국 IT기업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해외 투자자들이 중국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에서 동남아 지역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기회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중국 알리바바가 싱가포르 물류기업 '닌자반'에 출자한 것을 비롯, 중국 대기업들도 동남아 스타업에 자금을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싱가포르 국영투자회사인 테마섹홀딩스펀드는 지난달 말레이시아 중고차 등 전자상거래 업체 '카섬'에 투자하기도 했다.
산업기술진흥원은 보고서에서 "아세안의 혁신적인 기업들이 디지털화를 견인하고, 지역경제에 실질적인 탄력을 줄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연평균 6%에 달하는 GDP 성장과 젊은 중산층의 확대, 인터넷 보급 확산 등으로 아세안의 모바일 금융서비스와 전자상거래 등은 한국의 관련 기업에도 기회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동남아, 올해도 5% 이상 성장 가능성
동남아시아 각국은 올해도 5%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어서 유니콘의 성장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올해 동남아 각국의 성장률이 평균 5.1%로 지난해 3% 수준을 크게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으로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등지에서 생산차질을 빚으면서 주춤하기도 했지만 빠르게 경제활동이 정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발효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도 이 지역에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한중일과 함께 아세안 10개국 등 15개 국가가 참여하는 RCEP의 출범으로 역내 상품과 인력, 자본의 이동이 더 활발해 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세계 GDP의 30%를 차지하는 새로운 자유무역지대의 창설은 동남아 국가의 수출을 증가시킬 수 있다.
이미 이 지역 국가의 수출은 지난해부터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의 지난해 11월 수출액은 1122억링깃(32조1340억원)으로 전년도 동기에 비해 32%나 증가했다. 말레이시아 수출의 40% 안팎을 차지하는 전기 및 전자제품과 석유 및 화학제품의 수출이 늘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도 지난해 11월 수출이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24.2% 늘어나 10년 만에 최고 수준을 보였다.
하지만 동남아 유니콘이 계속 승승장구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세계적인 유동성 잔치가 막을 내리면서 주식 등 자본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상장한 지역내 최고의 유니콘기업 '그랩'의 주가는 최근 상장 직후의 절반 수준까지 하락하는 등 동남아 테크기업에 대한 기업가치 평가도 언제든 떨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