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심판대 오른 금융감독체계│① 효율성 떨어지는 감독구조
금융위·금감원 업무 중복 … 책임 미루고 잠재적 갈등 가능성 상존
감독기능 금감원에 전부 이관 또는 위원장·원장 겸임 등 절충안도 … "코로나 등 현안 이후 논의될 듯"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오랫동안 논란이 돼온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2일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 등 급한 현안이 마무리되면 감독체계 개편과 관련해서 논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당시 윤 의원은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밝혔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검토할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틀 후 윤 의원은 인수위 기획위원회 상임기획위원으로 발탁됐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박근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도 출범 때 거론됐던 사안이지만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이 양적긴축과 함께 빠른 속도로 금리를 인상하고, 급격한 물가상승과 전 세계적인 공급망 사태 등으로 금융위기에 대한 경고음이 나오면서 윤석열 정부에서 금융감독체계의 개편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금융감독시스템은 금융위원회(감독정책)와 금융감독원(집행)으로 나누어진 이원화된 구조다. 하지만 금융위가 감독정책뿐만 아니라 금융산업정책을 함께 맡으면서 상대적으로 산업정책에 중점을 뒀고, 그 결과 감독기능이 약화 내지 희생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한 현행과 같은 이원화 구조에서는 감독대상인 금융회사들에 대한 업무 중복과 기관 간 판단 차이 또는 협조 미흡 등으로 인한 감독집행상의 혼란이 발생할 수 있어서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금융사고가 터지면 양 기관이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등 책임소재의 불명확성도 문제가 되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하는 일에 비해선 작은 정부, 효율적 정부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이 지향하는 정부의 방향을 고려하면 현행 금융감독체계는 비효율적인 구조이며, 가장 먼저 손을 대야할 개혁 과제 중에 하나로 포함될 필요성이 있다.
◆금융회사 감독업무·제재 놓고 이견·갈등 = 현행 금융감독체계에서 외부에 가장 잘 드러난 대표적인 비효율 사례는 금융회사에 대한 제재조치다. 2019년 해외금리 연계 DLF와 라임 펀드 등 부실 사모펀드 사태가 잇따라 터졌지만 금융당국의 제재는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금감원은 라임펀드 판매 증권사(신한금투, KB증권, 대신증권)에 대한 제재를 2020년 11월 의결했지만 1년이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는 부당권유금지 위반 등 자본시장법 위반사항에 대한 제재를 확정했다. 다만 최고경영자의 내부통제기준 위반에 대해서는 유사 사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아직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행정조치의 신속성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게 금융권 안팎의 평가다. 그동안 금감원의 판단을 대체로 수용했던 금융위가 법률적 검토를 처음부터 다시 하기 시작하면서 제재 심의 기간은 더욱 길어졌다.
은행 등 금융회사에 대한 제재는 1차적으로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하지만, 중징계와 과태료는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서 최종 결정된다. 불공정거래 등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은 금감원이 사전조치를 통보하고, 증선위 자문기구인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를 거쳐 증선위 또는 금융위 의결로 확정된다. 회계기준 위반 사건의 경우 증선위 자문기구인 감리위원회를 거쳐 증선위 또는 금융위가 의결하는 구조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제재에 대한 의견이 첨예하기 갈리면 그 후유증도 크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이 대표적이다. 증선위는 제재조치안을 놓고 금감원과 갈등을 빚었다. 증선위는 금감원의 중징계 조치안에 문제가 있다며 보완을 요청했지만 금감원이 거부하자 '재감리 명령'이라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 같은 사례는 외부로 드러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금융감독정책 관련 시행령과 감독규정의 제·개정 권한을 갖고 있는 금융위와 감독·검사의 집행권한이 있는 금감원이 세부적인 내용을 놓고 이견과 갈등이 표출되는 경우는 현장에서 종종 발생한다.
특히 금융위와 금감원의 수장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이 같은 갈등이 증폭되면서 즉각적으로 표출될 수 있다. 두 기관의 수장이 협력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더라도 잠재적 갈등 가능성이 내재돼 있는 '불안한 동거' 형태가 이어지는 구조다.
박선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의 금융감독기구는 머리와 손발이 분리된 기형적 구조"라며 "양 기관의 역할 혼선, 협력부재, 감독기능 비효율의 주원인"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감독규정 제·개정권과 법규 제·개정권을 금융위가 독점해 금융환경 변화에 신속대응이 미흡하고 감독실무와 경험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산업정책에 휘둘리는 감독정책 = 감독체제 개편의 필요성을 언급할 때 가장 많이 제기되는 이유는 '금융감독의 독립성'이다. 1997년말 외환위기가 터지고 국제통화기금(IMF)이 금융감독체계를 독립된 민간조직으로 분리시킬 것을 요구한 이유는 관치금융에 의해 금융감독정책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감독체제는 2008년 2월 이후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 전신)의 금융정책기능이 금융위로 이관되면서 금융위가 금융산업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모두 행사하는 구조가 됐다. 2019년과 2020년에 터진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는 금융감독기구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을 때 어떤 문제가 촉발되는지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2015년 금융위는 사모펀드 적격 투자자 기준을 투자금 5억원에서 1억원으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펀드산업을 육성한다며 전문사모집합투자업자에 대한 최소자본요건도 40억원에서 20억원, 다시 10억원으로 대폭 완화했다. 금융위의 규제완화가 사모펀드 관련 안전판을 모두 제거해 버렸고, 금융산업의 활성화라는 명분에 금감원의 규제 목소리는 힘을 잃었다.
지난달 금융 분야 교수들로 구성된 '금융감독 개혁을 촉구하는 전문가 모임'(금개모)가 금융 분야 학자 및 전문가 321명의 서명을 받아 차기 정부의 핵심과제로 '금융감독 개혁'을 들고 나온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금개모는 성명을 통해 "현재 금융위는 금융산업정책과 금융감독 권한을 모두 보유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금융감독을 정부 정책의 하위 수단으로 종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이제는 금융감독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휘둘려 금융감독의 기본 원칙까지 저버리는 구조적 문제점을 청산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기재부 개편과 맞물려 진행 … "공론의 장 마련해야" =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전체적인 정부 조직개편과 맞물려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국내 금융정책과 국제금융정책이 각각 금융위와 기획재정부로 나눠져 있는 만큼, 기재부를 어떻게 손대느냐에 따라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측에서 발의한 금융감독체계 개편 법안 모두 금융정책 기능을 감독기능과 분리해 기재부로 이관하고, 금융감독 기능은 금융감독원에 옮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추진력은 떨어지겠지만 기재부 개편과 별개로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법안을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금융감독기구를 완전히 독립된 공적 민간기구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를 통해 지도감독을 받는 금융감독원을 설립할 것인지 등으로 나뉜다. 일각에서는 전면적인 개편이 어려울 경우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을 1명이 겸임하는 과거 금감위 구조로 되돌아가는 절충안도 거론되고 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금융감독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모델이 있을 수 있고 어떤 것이 가장 효율적인 감독체계에 부합하는지 고민하고 논의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