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심판대 오른 금융감독체계│③ 해외 주요국 감독기구
'금융감독정책(금융위원회)·집행(금융감독원)' 분리 한국이 유일 … 세계적 감독방향 역행
주요국 금융감독은 공적 민간기구 또는 별도의 정부조직으로 일원화 … 금융산업정책과 감독정책은 대부분 분리, 우리나라는 한 곳에서 맡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나뉜 우리나라의 금융감독체계는 전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다. 금융감독을 정책(금융위원회)과 집행(금융감독원)으로 나눈 곳은 사실상 한국이 유일하다. 금융산업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한 곳(금융위)에서 맡는 국가도 일본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뿐이다.
해외 주요국가들의 금융감독체계를 보면 각국의 상황에 따라 금융감독을 정부조직 또는 민간의 공적기구에서 맡는 등 다양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흐름은 정부의 영향에서 벗어나 가능한 독립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만들고 있다. 금융감독기구를 정부조직으로 두는 국가들도 대통령의 통제에서 벗어난 독립행정기구로 분류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정부의 금융산업정책이 잘못됐을 때 제동을 걸 수 있는 독립적인 감독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14일 금융감독체계 관련 전문가인 김홍범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1998년 IMF 사태 이후 통합감독을 한다고 했으면서도 감독정책과 집행을 서로 다른 두 기관이 나눠 갖는 굉장히 이상한 구조가 됐다"며 "통합된 정부조직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공적 민간기구로 통합하든지 두 기관의 기능을 하나로 합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과 같은 상태는 금융감독기관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어려운 구조이고 상당히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독립된 공적기구로 운영 = 주요국의 금융산업정책은 주로 재무부에서 맡고 감독정책과 집행은 별도의 금융감독기구가 담당한다. 금융감독기구는 행정부와 별개로 독립된 공적기구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임직원의 신분은 공무원이 아닌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와 같은 통합형 감독체계를 운영하는 국가들을 보면 독일과 스위스 프랑스 등이 정부조직과는 다른 형태인 공적 기구로 운영되고 있다.
독일 연방금융감독청(Bafin)은 2002년 5월 감독기구설치법에 따라 전 금융권역에 대한 통합감독기구로 출범했다. 정부로부터 독립된 법인격을 보유한 공법인 성격으로 재무부의 감독을 받고 있다. 직원들은 소위 '간접공무원'과 민간인(전문직원·노무직원·연수생 등)이 혼재돼 있다.
간접공무원은 중앙은행·금융감독기구·병원 등 공법인 소속 공직자를 말한다. 간접공무원과 민간인 비율은 7대 3 정도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독일은 우리와는 공무원에 대한 정의가 좀 다르다"며 "독일 연방금융감독청 직원들을 공무원으로 인식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스위스는 금융위기 이후 2009년 권역별 감독체계에서 통합감독체계로 전환했다. 금융시장감독원법에 의해 정부로부터 독립된 민간기구인 금융시장감독원이 설립됐고 연방의회의 감독을 받고 있다. 직원들은 민간인 신분으로 채용 및 근로조건은 이사회에서 정하는 규정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0년 1월 은행감독부문과 보험감독부문의 4개 기구가 합병해 중앙은행 내부의 독립기구로 출범했다. 직원은 중앙은행 직원 신분으로 민간인이며 채용 및 근로조건은 중앙은행 직원과 별도로 중앙위원회가 정한 범위 내에서 원장이 결정하는 구조다.
미국은 금융권역별로 감독기구가 분리돼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지주회사에 대한 감독·검사, 규정 제정 권한이 있다. 연방 인가를 받은 은행과 저축은행에 대한 규제 및 감독은 통화감독청(OCC), 모든 일반은행과 저축은행에 대한 건전성 및 소비자보호를 위한 감독·검사는 예금보험공사(FDIC)가 맡고 있다. FRB는 연방준비은행법에 근거한 중앙은행으로 정부기관의 승인이 필요 없는 독립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OCC는 재무부 산하의 독립 행정기구로 볼 수 있고, FDIC 역시 법인격이 있는 공사 형태지만 연방정부 산하의 독립기관으로 분류된다.
◆개혁 논의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한국 = 우리나라도 정부 부처가 아닌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 조직으로 금융위원회를 둔 것은 금융감독의 독립성을 위해서다.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을 보면 금융위원회는 정부조직법 제2조에 따라 설치된 중앙행정기관으로서 그 권한에 속하는 사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한다고 명시돼 있다. 금융위원장의 임기를 해당 법률에 3년으로 정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새 정부의 장관 인선 명단에 금융위원장이 빠진 이유다.
하지만 이 같은 법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금융위는 권한을 독립적으로 행사하기 보다는 여느 정부 부처와 다름없이 정부 정책을 충실히 수행하는 기관이 됐다. 이는 금융산업정책과 금융감독 기능을 동시에 맡고 있는 태생적인 구조에 따른 것으로, 금융산업정책은 정부 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고 금융감독은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측면에서 그 자체로 모순적인 형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금융회사의 건전성 규제수단인 주택담보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이 '전가의 보도'처럼 매번 동원됐던 것이 대표적이다.
금융감독을 집행하는 금감원은 시간이 갈수록 금융위의 하부조직처럼 바뀌면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독립적인 금융감독기능은 사실상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점은 2012~2013년 금융개혁 대상으로 한동안 논의됐지만 9년이 흐른 지금까지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나 논의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영국, 감독체계 개편 이후 끊임없이 제도 보완 = 영국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금융감독체계를 개혁한 대표적인 국가다. 금융감독기구가 금융위기를 사전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비판과 함께 기존 금융감독청(FSA)을 해체하고, 거시·미시건전성을 담당하는 기구를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산하에 두는 방식으로 개혁이 이뤄졌다.
감독기구 개편 이후에도 끊임없이 제도를 보완하고 있어서 전문가들은 "조용한 개혁이 계속되고 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영국은 FSA해체 이후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감독하는 건전성감독원(PRA)을 영란은행 산하에 설치하고, 영업행위감독을 하는 금융행위감독청(FCA)을 독립적인 민간기구로 신설했다. 소위 '쌍봉형 감독체계(Twin Peaks)'로 전환한 것이다.
영국은 EU(유럽연합)에서 탈퇴한 이후 그 전까지 EU체계에 맞게끔 운영됐던 금융감독체계를 자국에 맞는 형태로 변화시키고 있다. 최근 보고서를 통해 '쌍봉형 감독체계'가 자국에 맞는 시스템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또한 향후 수년간 감독당국이 상당한 재량권을 갖고 감독정책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감독규정 개정 작업을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해외 주요국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감독체계를 이미 개편했고 지금은 좀 더 개선하는 방향을 고민하는 단계"라며 "우리나라도 금융감독이 '금융시스템의 인프라'라는 측면에서 대대적인 개혁을 종합적인 관점에서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가 주요국가의 금융감독 방향을 보다 강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며 "앞으로 기후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할 때 금융감독의 문제를 금융개혁의 움직임 속에서 설계를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