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전 항쟁지에서 '대동세상' 재현
17일 광주 금남로에서 5.18 전야제
과거·현재·미래 관통하는 과제 제시
광주시민들이 5.18민주화운동 항쟁지 옛 전남도청 앞 광장 등에서 42년 전 대동세상을 재현했다. 계엄군 총탄에 시민들이 무참히 쓰러졌던 금남로에선 5.18 전야제가 열렸고, 5.18민주묘역에선 오월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제가 거행됐다. 시민들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2년 만에 정상 개최된 전야제에서 대동세상을 모처럼 만끽했다.
◆"이제야 제대로 된 행사" = 17일 오후 7시 전야제가 열리는 금남로는 시작 전부터 북적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금남로를 뒤덮었고, 시민들도 노래를 흥얼거렸다. 도로 양편에 삼삼오오 마주 앉은 시민들은 이야기꽃을 피우며 전야제를 기다렸다. 마침내 대규모 풍물패 길놀이가 시작되면서 추모열기가 한층 달아올랐다. 시민들은 "이제야 제대로 된 5.18 행사를 치르게 됐다"며 박수로 환호했다. 올해 전야제 주제는 '오월, 진실의 힘으로! 시대의 빛으로!'이다.
완전한 진상 규명과 헌법 전문 수록 등을 촉구하고,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와 불평등, 기후위기, 세대 간 갈등을 해결하는 시대의 빛으로 승화해야 한다는 의지를 담았다.
이런 열망을 담은 전야제 1부는 열흘간의 항쟁을 극으로 표현했다. 극단 토박이와 바람꽃, 놀이패 신명 등이 횃불 행진과 깃발 등으로 숭고한 항쟁의 순간을 그려냈다. 1부 절정에 이르러서는 도청 사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시민군과 광주시민들의 처절한 울음 등을 총체극으로 표현했다.
전야제 2부에선 도청 사수를 위해 장렬히 산화한 자식들을 기리는 오월 어머니들의 노래로 막을 열었다. 오월 어머니 15명은 풀리지 못한 한과 울분, 처연함과 비통함을 승화시키는 노래 '5.18 어매'를 합창했다. 3부에선 미래 세대에게 넘겨진 5.18 과제를 공연으로 묘사했다. 오후 9시까지 열린 전야제에는 주최 측 추산 5000여명이 참석했다.
전야제 시작 전 금남로에선 오월 시민난장이 열렸다. 난장은 주먹밥과 헌혈 참여 행사 등을 통해 1980년 5월 광주시민이 만든 대동세상을 재현했다.
전야제에 앞서 국립 5.18민주묘역에선 추모제가 열렸다. 1~2부로 진행된 추모제는 제례에 이어 추모시 낭송 퍼포먼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헌화 및 분향 순서로 진행했다. 박해숙 유족회장은 "다시는 불법적인 권력 찬탈을 위해 국민들의 목숨이 희생되는 비극을 용서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 계승사업 이어져 = 5.18정신을 계승하는 다양한 행사도 함께 열렸다. 올해 광주 인권상 수상자 미얀마 출신 인권운동가 신시아 마웅(Cynthia Maung·63)이 17일 광주를 방문했다. 마웅은 이날 광주 5.18기념문화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5.18은 미얀마에서도 젊은 세대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한 계기"라며 "광주의 지원과 연대로 미얀마 인권 수호와 민주주의 증대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광주 인권상 시상식은 18일 5.18민주광장에서 열린다. 마웅의 광주 인권상 수상을 계기로 (사)아시아여성네트워크는 오는 6월 30일까지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한 저항의 1년'을 주제로 상설 전시회를 연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 상황을 되짚어보고, 군부독재가 물러날 때까지 저항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는다.
황정아 아시아여성네트워크 대표는 "미얀마 투쟁 1년이 지난 현재, 대도시 일부에선 군부의 강제 진압으로 시민군의 활동이 줄었지만 외곽에서는 무장투쟁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군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인터넷 사용을 제한하면서 과거 고립됐던 광주의 오월을 연상케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들불열사기념사업회는 제17회 들불상 수상자로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을 선정했다. 이 이사장은 여순항쟁 진실규명과 여수지역 시민운동을 개척하고 정착시킨 활동가이다. 들불상은 1980년 전후 들불야학을 운영하고, 5.18때 주도적 역할을 했던 열사들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2004년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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